DAY 1 세 번째 이야기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환하고 환하다
아이슬란드의 물가가 비싸다는 건 너무나 잘 아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한국에서 라면과 즉석밥 등등 기본적인 식재료를 미리 준비해 갔다. 렌터카 회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해 이미 저녁을 훌쩍 넘긴 시간.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간단한 몇 가지만 우선 구입해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산 건 그 유명한 아이슬란드의 소! 시! 지! 와 핫도그 소스.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먹은 것이라고는 허술한 기내식뿐.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옷 갈아입는 것도 생략한 채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배고픔에 부랴부랴 모든 재료를 때려 넣었다. 오늘의 메뉴는 한국의 라면, 김치와 아이슬란드 소시지를 듬뿍 넣은 퓨전 부대찌개. 손발 착착 맞는 우리 두 사람의 호흡 덕분에 식사는 금방 완성되었다. 퓨전 부대찌개와 즉석밥을 앞에 두고 아까의 사건들을 안주삼아 도란도란 아이슬란드에서의 첫 식사를 마쳤다.
텅 빈 뱃속에 밥이 들어가니 이제야 긴장이 좀 풀린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 배가 여유로워지니 마음까지 편안해지는구나. 옷도 편하게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아이슬란드의 밤을 즐겨볼까... 하는데.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우리의 시계는 밤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아직도 밖은 환하다. 사람은 하나도 없어 유령도시처럼 텅 빈 분위기다. 우리가 그렇게 앓던 ‘별이 쏟아지는 아이슬란드 낭만의 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갔던 때는 6월, 한창 한여름이다. 북유럽은 밤이 없는 백야(白夜)가 여름 내내 진행된다. 그 말인즉슨, 여기 아이슬란드는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밤이 없다는 뜻이다. 영상으로 닳을 때까지 봤던 쏟아질 듯한 별똥별과 오로라는 한겨울에만 볼 수 있는 그림이었다.
물론, 백야현상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조금 늦게 해가 지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이슬란드의 하늘은 어두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분명히 낮과 밤이 있을 텐데. 조금이라도 밤이 있지 않을까?
아니다.(단호) 해는 안 진다.(핵단호)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늘. 항상. 계속. 새도록 밝다.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아이슬란드의 하늘은 정말이지 단 한 시간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의 밤을 조금이라도 보겠다고 이작가는 새벽 2시까지 깨어있기도 하고, 정피디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새벽에 30분 정도 살짝 노을이 지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그래, 그래서 우리가 못 본 거구나.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 결국 약간의 노을조차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잠들고 일어나는 순간까지 환한 하늘을 보며 ‘백야’라는 이 특별한 경험을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환한 만큼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으니까. 한국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귀한 추억이니까.
게다가 우리는 3일 밤샘은 우습다는 방송쟁이들 아닌가. 일하며 단련된 밤샘 기술을 여기에 쏟아부으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pyYsTmGJEWY
정피디 SAYs, 2% 부족한 첫 만남
아이슬란드의 국제공항 케플라비크(Keflavík) 공항에 딱 도착한 순간! 생각보다 작은 규모와 프리한 입국 심사에 일단 불안해질 것이다.(사실은 내가 불안했다.)
하지만 문제없이 통과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방송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실 나는 도착하자마자 핫도그 가게부터 찾아 헤맸더랬다. 왜냐면, <꽃보다 청춘>의 쓰리 스톤즈가 다른 것도 다 잊은 채 먹었던 공항 내 핫도그 가게가 정말 너무 궁금했으니까. 어쩜 그렇게 맛있게 먹던지!
하지만 입국장을 나서고 공항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그런 각도가, 그런 핫도그가 나오는 곳은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장소는 입국장을 나오기 전, 공항 면세점 구역에 있는 푸드 코트였던 것이다!
결국 공항에서는 핫도그를 먹진 못했지만, 여러분들은 굳이 공항에서 집착하진 마시라. 마트에서든, 음식점에서든 핫도그는 차고 넘치니까!
또 하나 이야기하고 싶은,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
공항에서 예쁘게 사진을 찍고 싶은 당신이라면 입국장이 아닌 출국장 쪽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의외의 포토스폿을 만날 수 있다.
케플라비크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와 출국장 쪽으로 돌아 걷다 보면 저 멀리 깨진 알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조형물 뒤로는 작은 호수가 함께 있는데, 먼저 호수 앞에서 한 컷을 찍고 호수 뒤쪽의 공항과 점프샷을 찍는다면 느낌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작가 SAYs,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청각장애가 있는 한 작가의 웹툰을 보고 있다.
웹툰 속 작가의 일상을 보면 우리가 항상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의 전광판이 고장 날 경우, 마트에서 중요한 안내방송을 하는 경우, 전혀 불편함 없이 대처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큰 문제가 생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작가의 웹툰을 보며 아이슬란드의 밤이 생각났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밤이 없는 하루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한국은 여름이건 겨울이건 저녁이 되면 반드시 해가 지고 달과 별이 보인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내가 살아왔던 여름과 다른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어두워지지 않아 잠을 자는 것도 어색하고, 잠이 들어도 꼭 새벽에 한 번은 깼다. 그럴 때마다 바깥은 늘 낮이었다. 늘 여름이었다.
어떤 나라는 밤이 없고, 어떤 나라는 겨울이 없다. 중동 지역에 ‘눈처럼 희다’라는 표현은 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무엇인지를 아예 알지 못한다. 반대로 에스키모 인들의 언어인 이누이트어에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400여 가지나 존재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모든 나라마다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어떤 나라는 노을이 지는 해 질 녘이 없는 곳도 있겠지.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이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생각지도 못한 다른 상황을 마주하고, 거기에서 나는 항상 깨닫는다.
언제나 당연한 건 없다고. 당연한 걸 당연하게 보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