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14년이 흘렀구나. 이 영화를 두 번 보기까지
영화를 볼 때 눈물이 없는 편인데 오늘도 마츠코를 생각하며 눈물이 났다. 마츠코를 위해 글을 쓴다.
*스포일러 주의
'너의 고모는 시시한 인생을 살았어.'
마츠코가 살해당한 후 조카인 '쇼'는 고모의 존재를 알게 된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에게 마츠코란 차라리 없는 게 편한 큰 오점이다. 가족에겐 몸을 팔고 살인자가 되어 복역한 수치스러운 인생을 산 여자, 그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신 나간 여자, 냄새나고 더럽고 뚱뚱하고 늙은 스쳐지나갈까 두려운 히키코모리. 그녀가 인생이란 무대에서 사라지고나서야 비로소 조카 '쇼'에 의해 마츠코의 진짜 일생이 조명된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사랑했을까?
언뜻 보면 이 이야기는 어릴 적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애정결핍으로 형성된 낮은 자존감에 붙들려 조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한 팔자 사나운 비극적인 여자의 일생을 다룬 것처럼 보인다.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며 자신을 조금도 사랑한 적 없는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의 별 볼일 없는 이야기이다. 그들에게 마츠코는 잘해야 동정의 대상, 결코 이해될 수 없는 저너머 이질적인 타인에 불과하다. 그들의 삶이 마츠코와 조금도 닮지 않았았다는 안심과 더불어 그 괴리가 혐오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녀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인생의 전부는 '사랑'이다. 그녀의 삶의 목적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어떤 비극이 그녀 인생에 찾아와도 불안이나 두려움 따위 없다. 사랑만 있다면 그녀는 삶을 놓지 않을 수 있다. 오늘 '왜'냐고 울부짖고 몇 번이나 인생이 끝나도 내일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 강하다. 몇 번을 실패하고 함께 살던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해도 류시화 시인님의 시처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도 과거 기억에 의한 불안도 없다. 무언가를 원하지도 않고 사랑을 빌미로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사랑하고 사랑받는 거 영원히 그게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현재에 사랑만 있다면 기꺼이 지옥을 견디는 마음, 그게 마츠코의 본질이다.
삶이 마츠코를 속여도 사랑 앞에서 마츠코는 단단하고 일관적이었다. 합리성도 따지지 않고 억울해하지조차 않는다. 자존심도 세우지 않는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그 사랑을 받아보고 마츠코를 사랑해본 자는 안다. 약한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거. 그녀를 아는 사람은 마츠코를 동정하기보다는 그리워했다. 마츠코의 친구였던 '메구미'는 지옥까지 따라가겠다고 소리치는 마츠코를 아름답고 멋진 여자라고 말했고, 마지막 사랑이었던 '류'는 '내게 마츠코는 신이었어요.'라고 말한다.
류가 떠나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마츠코의 사랑이 무너졌다. 마츠코의 세상이 무너졌다. 다시 사랑하지 않기로 누구도 자신의 세계에 들이지 않기로 결심하며 마츠코는 더 이상 마츠코가 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삶을 방치한다. 마츠코는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에. 학교에서 억울하게 잘리고 감옥에 가고 피멍이 들게 맞고 몸 파는 일을 해도 마츠코의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사랑 하나가 비면 아니 사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사라지면 그순간 마츠코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마츠코에게 종교가 있다면 신이 있다면 구원이 있다면 그건 '사랑'이다. 죽을 때까지 마츠코는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딱 한 번이면 그녀는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행복해졌을텐데. 어쩌면 메구미의 말처럼 자신의 삶을 알아달라고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달라고 '쇼'를 자신의 보금자리로 보낸 건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마츠코를 닮아 있는 쇼는 마츠코를 만나보지 않은 걸 아쉬워하며 마츠코의 일생을 알고 싶어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마츠코를 알아간다. 그제야 지워졌던 마츠코의 존재는 서서히살아난다.
인간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주었는가로 정해지는 거야
마츠코는 인생에서 단 한 사람을 미워했다. 아니 용서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아버지의 관심과 걱정 사랑을 다 가져간 그녀의 여동생 '쿠미', 그녀는 쿠미가 불쌍하지 않았다. 자신은 아무리 애써도 가질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결코 이길 수가 없기에 여동생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 잘못한 게 하나 없는 연약한 여동생에게 심한 말을 하고 목을 조르고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사랑을 주지 않는 마츠코의 남자들처럼 마츠코는 분노와 결핍을 여동생을 원망하는 방식으로 해소했다. 이후 동생과 마주쳤을 때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동생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집을 나오는 모습은 그녀를 떠나는 남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쿠미에게는 마츠코가 전부이다. 다른 누구보다 마츠코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아무리 심한 꼴을 당해도 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가도 마츠코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미워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는다.
인생이 끝나려는 마지막 순간 마츠코는 쿠미의 머리를 자르는 상상을 한다. 쿠미의 머리를 어릴 적 사랑을 꿈꾸는 자신처럼 단발로 자르며 여전히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다. 쿠미의 사랑은 그 순간 마츠코를 구원했다.
내게 혐오스런 마츠코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인생이 몇 번이나 끝나도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는 게 사랑인 사람들에 대한 영화, 사랑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지에 관한 영화. 그럼에도 몇 번이나 운 건, 류가 마츠코를 사랑하면서도 두려움에 마츠코를 버렸기에 그게 마츠코의 전부를 앗아가는 과정이 너무 안타까워서. 또 지나치게 마츠코가 사랑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인 게 안쓰러워서. 사실 마츠코가 받고 싶었던 사랑은 쿠미에게 이미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너무 늦게 깨달아서, 내가 마츠코를 안아줄 수 없이 혼자 남겨졌다는 게 너무 슬퍼서. 내가 마츠코와 너무 닮아있는 사람이라 그녀를 이해한다는 게 너무 슬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