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자주 찾아오는 강렬한 감정을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by 스텔라

감정은 꿈과 닮았다. 정확한 앞뒤 사정을 알 수 없고 사건의 경계가 흐리다. 시작 시점과 원인은 불분명하며 인지할 수 없다. 다만 현재 여기 느낌만은 생생하게 실재하다. 감정의 세계는 즉각적이고 솔직하다. 상식이나 논리의 자리는 없다. 감정의 영역 아래 무리수란 없다. 모든 일이 자연스럽다 못해 필연처럼 느껴진다. 감정은 체면도 차리지 않고 도덕도 개의치 않는다. 피어나는 감정을 막을 길은 없다. 그러나 꿈에서 깨면 한순간에 꿈을 잊듯 감정 역시 사라진다. 극적인 감정도 시간에 따라 흐려지고 기억 속 저 너머 속으로 흐른다. 감정을 붙잡아 유지할 수 없다.


배신감이 든다. 감정만큼 밀착한 거리로 송두리째 시선을 붙잡아 한 사람의 생을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손님은 또 없으니까. 감정은 우리 집에 놀러 온 손님인 주제에 냉장고를 헤집고 안방 침대를 차지해 자다가 자기 입맛대로 인테리어를 싹 바꾼 후 인사도 없이 떠나는 무례한 손님이다.


오랜 세월 감정을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라 여겼다. 적어도 공동명의 지분 정도는 있을 거로 생각했다. 감정이 한 번 왔다 가면 나라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해 표정도 말투도 행동도 분위기도 모조리 바뀌었다. 일관성 있는 태도로 원칙과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했던 과거의 나로서는 감정만큼 두려운 걸림돌도 없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변덕스러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에도 몇십 번 타면서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느라 멀미가 날 지경임.’


감정은 인생을 평온하기 살기 위해 시급히 얻어야 할 중요한 열쇠였다. 그래서 많은 날을 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관찰하게 되었다. 감정이 나를 구성하는 불멸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아니란 걸 알게 된 후, 이 모든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다름 아닌 내가 불러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귀찮고 번거롭고 뻔뻔한 손님이라 욕을 잔뜩 해놓고는 번번이 문을 열어 그 손님을 초대하곤 다시 괴로워하는 통속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찾아오는 강렬한 감정을 만날 때마다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감정과 친해져야 했다. 무례한 손님을 곱게 내쫓는 법은 한 가지이다. 문을 걸어 잠그고 무시한다면 오히려 더 화가 나 문을 쾅쾅 부수며 몇 배 더 큰 소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그가 왜 여기에 왔고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 이해하게 된다면 조금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그에게 정중하고 친절한 손님맞이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는 조금만 머물다 우리 집을 기쁘게 나갈 것이다. 그 방법을 배우게 되면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다정한 손님으로 변모한다.




감정은 외부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과 해석에서 기인한다. 그 견해는 대부분 과거 경험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감정 원형 모듈에 대응한다.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이 현재 자극과 연결된다는 신호를 감지할 때 감정은 어김없이 발동한다. 아프거나 죄책감이 든 과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내게 효과적이었던 방어기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두렵거나 무서웠던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신나고 즐겁고 생기 넘치는 과거의 경험 역시 각각의 원형 모듈 패키지에 저장되어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 그 유사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 충동과 의지를 불러일으키도록 설레고 신나는 감정이 일어난다. 그 기분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세계의 모든 외부 대상과 자극을 우리는 취향이라고 부르고 있다.


말하자면 우린 늘 과거 속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상황을 과거 감정 원형 모듈과 연결해 과거와 유사한 감정을 자동으로 느끼게 하고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 반응을 성격이나 개인의 특성이라 여기며 반복되고 유사한 삶을 사는 것이다.


공포, 기쁨, 슬픔, 두려움, 행복. 문화도 지역도 시대도 상관없이 보편적인 감정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각자의 세부적인 원형 모듈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게다가 억울하게도 기억조차 없는 어린 시절 이런 원형 모듈의 상당수가 만들어진다. 또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한국의 청소년들은 친구와 가족, 학교, 사회의 문화적인 영향을 아주 많이 받기 때문에 의도한 적 없이 자동으로 각종 집단적 감정 원형 모듈을 장착한다. 주도해서 만든 적 없이 얼렁뚱땅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이런 감정 모듈이 평생 물밑에서 작동하고 있으니 삶은 늘 고달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은 죽을 때까지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을 들이고 다시 그것을 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무의식 기저에 작동하는 감정 원형 모듈의 존재를 알아챈다면 그 작동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또 그게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고 싶다면, 천천히 고통스럽더라도 몇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모듈을 해제하거나 변경할 수도 있다.




신기하게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완전히 다르다. 뭐 하나 해결되는 게 없더라도 누군가를 이해되면 왠지 속이 좀 시원하다. 이름을 명명하고 언제 어디서 그 감정이란 손님이 나타나는지 눈을 뜨고 관찰한다. 그의 행적을 좇아 과거를 엿보고 무의식 속 기제를 하나씩 꺼내 읽어 이야기가 완성되면 어쩐지 무서웠던 손님은 가련하게 느껴지고 귀찮고 불편했던 그 감정이 얼마나 날 위해 애쓰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살아가는 동안 더 많은 감정들을 만나 알아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분명 끝도 없이 지속되는 과정이지만 그들을 아는 데 더 익숙해지고 더 많은 감정을 포용할 수 있게 매뉴얼을 업데이트시킬 것이다. 썰렁해서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집보다는 쉴 새 없이 다양한 손님들이 놀러 와 자신의 온기를 남기고 가는 북적북적한 집이 되는 편이 좋다. 그들은 모두 내가 초대한 귀한 손님이다. 방법을 몰라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철없고 귀찮은 손님조차도 알고 보면 사실 나밖에 모르는 든든한 나의 아군이다.


그러니 오늘도 묻는다.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이 한차례 휘몰아치고 집의 상태가 변한 것 같을 때 묻는다. ‘너의 이름은…?’


202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