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용기의 원천, 감정

무언가를 지키고 사랑하고 행동하고 변화할 용기를 만든 건 감정

by 스텔라

스무 살 초반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친구를 억지로 끌고 극장에 가곤 했다. 이미 한 번 본 영화가 끝나고 그 사람의 얼굴을 골똘히 살피며 연신 질문을 했다. ‘영화 어땠어?’ 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좋았어.’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니지만 내가 느낀 그 감정을 그는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멋진 영화를 발견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계속 그를 끌고 영화관에 갔다. 그땐 그저 그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만 생각했는데 몸을 통해 흐르는 전율과 감동, 살아있고 연결되었다는 이 기쁨을 그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던 거다. 그건 내가 아는 가장 근사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모두에게 다른 마음이고 각자의 감정이 있는 거라 결코 전해질 수도 강요할 수도 없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무얼 주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멈출 수 없던 충동, 그것 또한 감정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귀한 걸 주고 싶은 미숙하고 어리숙하고 순수했던 마음.


감정이 풍부한가? 네. 감정의 기복이 잦은가? 네. 감정의 반응이 강렬한가? 네. 감정적 반응을 쉽게 하는가? 네. 감정을 느끼는 기준점이 낮은가? 네. 상대적인 질문에 고민도 없이 네라고 대답한다.


어릴 땐 알지 못했다.. 감정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슬픔을. 그땐 그저 감정이 의심할 바 없이 모두 나였기에 분리될 수 없었다.


사춘기 시절부터는 할 수만 있다면 감정을 덜어내고 싶었다. 무감각해지기. 불가능하지만 그걸 얻어낼 수만 있다면, 아니 그걸 버리거나 없앨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감정이 저주라고 느껴졌다. 삶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을 고통이라 느끼게 만드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격하고 생동적인 망할 감정이란 요소 때문이 분명해 보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 시절부터 나는 울보였다. 그 말은 나를 기쁘게 했다. 내가 감정이 풍부하고 감정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아이로 태어났다는 증표 같아서. 그 말은 나를 슬프게 했다. 세상 사는 데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큼 불리한 게 또 없는 것 같아서. 유독 차분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만큼 포커페이스를 지닌 사람들을 흠모했다. 어른스럽고 이성적이고 유능한 그들의 특성을 반이라도 닮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울지 말자. 그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이었다. 그렇게 다짐하고도 조금만 억울하거나 오해받는 상황에서 화가 나면 죄지은 사람처럼 눈물이 콸콸 흘렀다. 이성적 대화와 해명을 할 수 없이 결정적인 순간을 방해하는 건 눈물을 흘리게 만든 격한 감정이었다. 가슴이 앞선 사람이었다. 지적 능력, 논리력, 이성 같은 건 감정 앞 한낱 작고 연약한 힘도 못 쓰는 아이와 같았다. 혼자 거대하게 태어난 감정이 싫었다. 내 인생의 방해물.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지우고 억누르는 과정이라 여겼다. 감정이 풍부해서 좋을 일은 적어도 인생에 딱히 없으니까. 슬퍼도 티 내지 말고 우울해도 혼자 참고 불안해도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들떠도 유난 떨지 말고 기뻐도 방방거리지 말고, 그렇게 나를 검열하고 감정을 안쪽으로 꽁꽁 싸매는 일, 그게 어른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처럼 여겨지던 시절을 보냈다. 물론, 그래봤자 감정의 힘은 너무 세고 자연스러워 실패의 쓴맛을 맛보아야 했다. 힘겹게 막아 놓은 댐을 뚫고 마구잡이로 넘쳐흐른 물은 온 마을을 뒤덮어 엉망진창으로 쑥대밭을 만들곤 했다.


‘넌 너무 감정적이야.’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 말은 늘 상처를 남겼다. 별거 아닌 거에 유난 떨고 작아지고 다치고 마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부끄러운 감정들.



그동안 몰랐다. 모든 결단과 용기의 순간, 그 원천은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걸. 나보다 내가 더 위대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더 지혜롭고 강하며 현명하고 아름다우며 자신 있고 당당하고 고귀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는 빛나는 순간, 그래서 평소라면 하지 못했을 행동을 하고 나답지 않은 용기를 내는 시간이 온다.


어린 시절 우연히 담력 체험을 하게 되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조명 하나 없는 산길을 홀로 용감히 걸어 나가야 했다. 심장이 뛰고 두려웠다. 처음 온 곳 지리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야는 미지의 모든 것을 두려움으로 만들었다. 두근두근. 그래도 발을 떼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그 어둠을 나아가게 한 에너지는 감정이었다. 이 두려움을 확인하기 위해 두려움을 따라가야 했다. 두려움을 없애거나 부정하면 더 두려워질 거란 걸 그때의 어린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이 두려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걸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그 작은 아이는 알고 있었다. 중간중간 귀신과 악마로 분장한 사람들이 튀어나와 놀라게 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진흙탕에 신발이 빠지고 풀숲의 풀이 몸에 스쳐 간지러워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 내가 느낀 두려움에 비하면 실제 경험과 감각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두려움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용기로 바뀌는 걸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은 반전처럼 너무나 큰 기쁨과 희열이 되었다.. 더 이상 어둠은 무섭지 않았고, 나의 두려움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두려움은 용기가 되었다.


환한 불빛에 사람들이 가득한 골인 지점에 도착했고 내 얼굴에는 비명을 지르면 묻게 되는, 숯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들은 내게 두려움이 없으니 천국에 가도 좋다고 말했다. 운동장에 줄지어 체력단련을 해야 하는 귀여운 곡소리가 들리는 지옥을 지나쳐 천국이라 불리는 실내에서 맛있는 수박을 통째로 붙들고 먹었다.



괜찮은 척하던 일상을 깨 버리자 다짐하고 차라리 죽음을 결심한 순간, 바닷바람이 너무 추워 쪽팔리고 절망스럽지만 처음 보는 타인에게 전화기를 빌려 달라고 요청하던 순간,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한순간,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고, 밤늦게 잠깐 볼 수 있냐는 낯 간지럽고 서툰 고백의 순간, 이제 우리는 헤어지는 게 좋겠다고 우는 상대방을 매정하게 뿌리치게 나오는 순간,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순간, 다시 한국에서 일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나를 격려하던 순간, 기억할 수도, 나열할 수 없이 많은 그 모든 용기를 내야 하는 모든 순간은 사실 감정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하겠다는 결심이 서면, 무언가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그게 내 길이라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가게 하는 그 열정과 책임감은 조용하기보다는 화염과 닮았다. 그 화염은 그 생각이 행동이 되기 전까지 계속 뿜어져 나온다. 그걸 하게 만든 건 감정이다. 풍부하고 격렬하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예민하고 강한 나의 감정 덕분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히로인은 감정이다. 무언가를 지키고 사랑하고 행동하고 변화할 용기를 만든 건 감정에서 시작한다. 감정은 연료 같아서 현실의 어떤 기능도 감정 없이는 작동할 수가 없다. 그 무한한 에너지를 미워하고 덜어내고 없애 버리면 좀 살 것 같이 느껴졌던 바보 같은 순간을 지나서야 감정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평범하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일상의 순간, 드라마 속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온몸이 전율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이 느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기적은 감정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삶에 생동감을 더하고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이는 고마운 존재.


나는 감정적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운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