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시작은 정해져 있어.

그저 내가 되어 살아가기로 한다면 모든 삶은 아름답다.

by 스텔라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아끼는 동생의 사진 계정을 발견했다. 놓쳤던 피드를 끝까지 스크롤한다. 그 피드는 생각보다 더 오래된 것이고 생각지도 못한 과거를 불러일으켜 나를 놀라게 한다.

거기에는 그 애를 갓 만난 내가 있고, 함께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은 카페가 있다. 처음 먹어 본, 잊지 못할 당근케이크를 그 애도 같은 곳에서 먹었다. 우리가 만났던 ‘디씨엠브레’라는 숙소를 나처럼 그 애도 그리워했다. 오래전 알게 된 누군가의 일상을 한꺼번에 이렇게 몰아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그 사진 덕분에 오랜만에 과거에 빨려 들어가 진공 상태가 되었다.


진공의 상태, 모든 값은 무효가 된다. 시간과 공간은 사라진다. 과거를 들여다보다가 무아지경 상태에 돌입하면 의식은 선명해지다 이내 멈춰버린다. 그립고 소중하고 따뜻한 동시에 울고 싶다. 금세 차가워지고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행동은 얼어붙고 생각과 감정, 느낌도 기분도 잠시 자리를 비우고 유예 상태가 되어버린다. 문장이 내게 말했다. ‘처음과 시작은 정해져 있어.’



사람은 우주의 빅뱅처럼 한순간에 태어난다. 처음 내쉬는 그 숨은 생명이고 전부이다. 키가 얼마일지,머리카락이 무슨 색일지, 굵기와 숯이 얼마나 될지, 신체 기관이 어떻게 자라나고 주름이 어떤 모양으로 접힐지, 노쇠한 모습이 무엇일지, DNA 속 지도를 품고 아이는 앞으로 보여질 모든 몸의 원형을 지니고 태어난다. 어떤 생각을 붙잡고 놓지 못할지 그 생각으로 일어날 감정의 진폭이 어떨지 그 감정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할지, 그 중 자기 자신이라 믿을 만큼 자주 되풀이하고 굳어질 알고리즘 혹은 성격이나 태도, 가치관, 인격이라 불릴 정신의 면면도 모두 처음부터 새겨져 있다.


누구를 만나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지 무엇이 그 아이를 기쁘게 하고 아프게 할지, 무엇을 원하고 두려워할지, 어디를 향해 걸을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날 때 모습조차도 처음 뱉는 그 숨과 동시에 결정된다.



이상하다, 정해져 있다고 하면 자유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이다. 모든 걸 다 지니고 태어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가능성과 잠재력을 한 번에 품고 태어났고 언제 어떻게 발화될지 아무도 모르고 정해져 있지 않기에 삶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제각기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사람과 삶의 조합은 생마다 다른 게 자연스러워서 모든 생명은 독특한 개별성을 지니게 된다. 개별성을 실제로 체험하며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이다. 생각만으로 육체만으로 감정만으로 언어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체험, 개별성을 실제로 사는 것, 그게 인간 존재의 특별함이다.


무엇을 어떻게 조합할지, 그다음 순서를 선택할지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결정하는 건 의식이다. 의식이 곧 생명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걸 바라보고 있는 존재, 모든 생에 변함없이 함께하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존재, 나는 그걸 영혼이라 믿는다. 영혼에 의식이 부여되는 순간 생명이 시작되는 거라고.


부모님이 아이에게 뭘 해주지 못하고 놓쳐도, 아무리 사회적 환경이 그 아이가 타고난 천성과 반대되는 길을 제시해도 숨길 수 없이 언젠간 제 갈 길을 찾아가게 만드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고 일어나야 할 일을 겪게 하는, 드러내야 하는 자신 안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어떤 삶을 살면서 그 삶을 어떤 의미의 이야기로 여기는지 그 모든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면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작은 내면의 소리를 듣기로 결심했다면 원래 모든 걸 지니고 태어나서 무엇을 힘겹게 찾거나 구할 필요 없이 그저 내가 되어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한다면 모든 삶은 아름답다.



생명은 변화한다. 항상 리듬을 지니며 결코 고여 있지 않다. 멈춰서 정제된 건 삶의 반대편에 있는 죽음과 생의 시작이자 끝인 영혼뿐이다. 그러니 나라는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시간마다 공간마다 관계마다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모하고 변주되고 진화되고 성장할 수밖에 없다. 전체 재료가 정해져 있다는 건 그 안의 구성 요소까지 세밀하게 대사 하나 지문 하나 모든 시나리오가 틈 없이 완벽하게 짜여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자유롭다. 지금 당신이 아는 당신의 모습에서 완전히 반대로 표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원래 지니고 있던 요소와 조합이 빠르게 변화된 것 뿐이다. 한 존재가 무한하다는 것,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무한히 원래 지니고 있는 재료를 구성해 어떤 새로운 조합이든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무한히 다른 조합이 무한히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서 그게 몇 가지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으면서 하나의 끝을 확신하는 이유는 결국엔 모든 괴로움 혹은 고통 혹은 더 나아지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 사랑은 모두 영혼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자신에 대해서 탐구하고 생에 대해 고찰한다면 끝까지 생이 무엇인지 두 눈을 뜨고 마주하기로 결심한 사람은 어떤 방식과 순서와 상관없이 내 안에 고요하고 평온한 존재가 원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무언가를 추구하고 선택해도 그 존재는 어떠한 참견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당신을 지켜보고 있겠지만,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간은 그 존재와 일치되고 하나 되고 연결되는 시간뿐이란 걸 알게 된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각기 다르겠지만, 결국 인생의 가장 쉬운 길, 즉 가장 자신을 기쁘게 하고 살아있는 충만함에 젖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존재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사는 일인 걸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결국 나는 나일 것이라는 것, 어떤 조합의 어떤 구성요소로 어떤 사람으로 비치지고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든,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도 결국 마지막에 나는 그 존재를 더 가까이서 느끼고 그것에 한없이 가깝게 다가간 어떤 모습일 거라는 것. 그것은 내게 무한한 자유를 준다. 그 어떤 선택도 어떤 경험을 한다고 해도 나는 결코 틀리지 않고 언제나 맞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매일 점점 내가 그 존재를 닮아가고 있고, 미지의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는 체감을 할 수 있기에. 그것을 멈추거나 미룰 생각 없이 더 힘껏 생동하는 삶에 기꺼이 뛰어든다.


처음과 시작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존재에게 자유와 사랑을 준다.


-2022년 2월 19일, in 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