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지금, 여기이다.
막 차에 탄 순간, 남편에게 익숙한 질문을 받는다. ‘안경 챙겼어? 안경 통만 챙긴 거 아니야?’ ‘아냐, 분명히 챙겼어.’ 이 말을 할 때까지 확신에 차 있었다.
과거 여러 번, 안경을 빠트린 채 안경 통만 챙기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오늘은 전시회와 도서관에 갈 예정이었기에 안경이 필수였다. 분명히 오늘 아침, 왼손으로 먼저 안경을 잡은 채로, 안경 통을 찾아 가방 여러 곳을 뒤적거렸다. 방치되어 있던 가방에서 안경 통을 찾아 ‘여기 있네!’ 혼잣말로 반가움을 표출했다. 오늘만큼은 신경 써서 안경을 챙겼다. 왼손에 안경, 오른손엔 안경 통을 집어 든 장면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의기양양하게 열어본 안경 통은 거짓말처럼 비어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살짝 놀라긴 했지만, 아주 재빠르게 마스크를 챙겨 쓰고, 잠시 집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차 문을 서둘러 열었다. 그때 남편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때야 잠시 쓰레기를 버리고 온 사이 그가 안경을 숨겨두는 장난을 벌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꽤 분명한 기억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빈 안경 통을 보며 순식간에 과거 기억을 날조하는 뇌의 활동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왼손에 안경을 들고 있었지만, 순간 물을 챙기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안경 없이 안경 통만 가방에 넣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경은 거실 테이블에 놓여 있을 것이다. 조금 귀찮지만, 남편은 흔쾌히 기다려줄 사람이고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다. 집에 다시 들르면 해결될 일이다. 아니, 차라리 지금 알게 되어 참 다행이다.’
안경이 없다는 결과를 본 순간, 확신에 찼던 기억은 흐려지고, 나의 뇌는 창의성을 발휘하며 그 결과에 부응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실제 기억보다도 더 믿을 만하게 느껴졌다. 뭔가 수상하긴 했지만, 안경 통엔 안경이 없었고 그동안 유사한 실수를 반복했던 전력을 떠올려보면 나의 기억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더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참 재밌게 웃던 남편은, ‘이런 게 가스라이팅 아니야?’라며 진지하게 반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이라는 관점보다도 내게 더 강렬하게 와 닿은 건 ‘오로지 지금, 여기만 존재한다’는 메시지였다.
기억의 불확실성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과거가 주관적으로 기억된다고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본의 아니게 남편의 장난 덕분에 과거는 현재에 맞춰 얼마든지 변형되고 재배열된다는 사실을 실험하듯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가장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이야기에 맞춰 내 두뇌 속 기억이 사라지고 덮여 씌우는 현장을 목격했다.
지금 내가 가진 과거 기억들 역시 마찬가지로 현재의 내가 믿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여러 번 변형되고 다시 쓰여 현재에 가장 잘 들어맞을 이야기로 가공되었다. 그러니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과거 기억은 착각에 불과하고 과거는 결코 따로 존재하거나 소유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오롯이 만끽하고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여기 이 순간뿐이다. 과거 또한 결국 현재일 뿐이다. 과거란 현재 시점에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의 원인이나 근간이 되어줄 뿐이니 현재만 말해줄 수 있다.
그러니 아무리 강렬하고 쓰린 과거의 기억도 아무리 환희와 기쁨이 넘치던 과거의 기억도 온전히 소유하고 간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면 현재의 내가 변함없이 같아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하고, 변함없이 같다는 건 시공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 되고 삶도 생명도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잊을 수 없다면 현재 내가 그 과거를 잡고 있고, 그것이 어떤 이유로든 유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굳건한 객관적 실체처럼 느껴지는 건 허상일 뿐이다. 과거를 바꾸고 싶거나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고 싶다면 힘들일 것 없이 그저 현재 나의 이야기와 시점을 바꾸면 된다. 저절로 뇌는 자연스럽게 새롭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원래의 기억처럼 새로운 과거를 간직하게 한다. 그때야 비로소 시간은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진다는 말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잊고 싶지 않을 만큼 멋진 기억을 최대한 오래 간직하고 싶다면, 그 기억에 걸맞은 유사한 지금 여기를 끊임없이 창조해야만 한다. 그때와 같은 기분과 느낌을 주는 지금에 머물러야만 그 기억이 생생하게 불려 나올 수 있다.
지금 여기 현재의 순간을 완성하기 위해 과거의 조각은 얼마든지 흩어지고 재결합된다. 그러니 지금, 여기이다. 과거 역시 현재이며 미래 역시 지금 여기 이야기에 불과하다. 우리가 공유하고 살고 깨어나서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지금 여기일 뿐이다. 오로지 무한한 지금 여기가 생명에게 전부이다.
-2022년 3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