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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Apr 13. 2022

진정한 프로란 시간보다도 효율성

일할 시간 아껴서 나를 위해 쓰자

한때 나는 무조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굳게 믿어왔다. 당연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창작물이라는 건 인고와 고뇌의 결과물인데 거기에 고통이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고통이 없다니, 그건 진정한 작품이 아니야!라는 아주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가진 전형적인 신인작가였다.



이제는 일주일 동안 5일 내내 일할 것을, 최대한 2일이나 3일 안에 다 마치고 남은 시간에 어떻게 놀까 궁리를 할만한 짬밥이 생겼다. 여러 시행착오와 다양한 삽질을 하면서 어떻게 최소한의 시간으로 일을 잘 마칠지 어느 정도 감이 생긴 덕이다. 작업실에 틀어박히기 싫은 아름다운 날씨의 어느 날이면 훌쩍 스튜디오를 떠나 카페로 가서 하루 종일 스토리보드를 끄적거릴 때도 있고, 정 안되면 한 시간 정도 산책을 나간 다음 다시 돌아와 집중해서 엉덩이를 붙이고 작업을 한다. 물론 타이머를 맞추고. 



대체로 피드백을 받는데 1주에서 2주는 걸리는 만큼, 논스톱으로 작업해야 하는 내지 페이지 작업보다도 스토리 보드 작업은 매우 여유롭고 시간이 많다. 내지 페이지의 경우는 가장 압박감이 많이 드는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미리 작업한 후에, 중간을 조금씩 채운다는 식으로 진행하면 금방 작업할 수 있다. 아니면 마지막부터 조금씩 첫 페이지까지 조여온다는 느낌으로 작업하면, 마감에 대해 좀 더 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가장 품이 많이 드는 복잡한 페이지를 제쳐두고 그때그때 빨리 끝낼 수 있는 페이지들부터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통 Vignettes (작은 삽화 같은 그림)나 한 두 인물만 나오는 간단한 페이지는 정말 빨리 끝낼 수 있기에, 다하고 남은 시간 동안 복잡한 페이지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그림책 작업은 단발성으로 끝나는 커버 작업이나 광고 일러스트와는 다르게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하는 작업이니만큼, 작가가 그동안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그림책은 일반 문고판보다 판형도 크고 모두 올 컬러로 프린트된다. 일반 책보다 많은 투자와 노력이 드는 만큼, 부담 없이 한다고 해도 결국 허투루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작업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그 기간을 최대한 줄여서 남은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것... 그게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작가적 라이프 사이클"이다. 



출판계에서는 매 해마다, 매 시즌마다 새로운 작품들이 나오고 가끔은 아주 큰 상을 받은 작품이 주목받으면서 다른 출판사에도 영향을 준다. 작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최근 주목받은 그림책들을 자주 보고 이야기나 기법에서 배울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늘 자신을 "업데이트" 하는 게 사실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만든 매너리즘에 빠져서 무엇이 문제인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그냥 안주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서점이나 도서관, 혹은 전시회나 박물관, 미술관에 가서 주기적으로 심미적인 감각을 잘 갈고닦기 위해서라도.. 그런 자투리 시간을 잘 내기 위해 본 작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것이다.



노마드 코더 (Nomad Coders)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에 무조건 "어렵게" 하는 것이 성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학습되어 왔다. 근데, 정말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해야만 하는 걸까?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간결하게" 할 수는 없는 걸까? 그렇게 "더 쉬운 마음"으로 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와 좋은 성공을 하면, 그런 성공은 힘들게 이룬 성공보다 덜한 건가?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래된 고정관념에 묶여서, 충분히 마음껏 쓸 수 있는 내 시간을 내가 원치 않는 일에 너무나 낭비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일하는 게 귀찮고 힘들지 늘 즐거운 건 아니잖나.


https://youtu.be/5csGXOzm5yA

유투버 책그림의 "최소 노력의 법칙" 이라는 책 리뷰 영상. 효율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렉 맥커운이 쓴 '에센셜리즘'과 '최소 노력의 법칙' 책. 관심이 있어서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일전에 본 어떤 글이 생각이 난다. 한 일반계 회사에 입사한 유일한 프로그래머가 해당 부서의 문서 자료들을 자동적으로 정리, 배열해주는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날로그로 작업하면 업무시간 8시간 내내 해야 할 일들을 이 프로그램을 돌리니 10분도 안돼서 해결이 돼서, 자신이 해야 하는 거라고는 출근해서 10분 동안 프로그램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다른 사원들보다도 훨씬 많이 받는다는 것이 양심에 찔린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내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라고 밖에는... 그 연봉에는 지금까지 프로그래머로서 연마하기 위해 투자한 많은 기회비용이 들어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따지면 그 연봉은 분명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그런 단계에 늘 머물러 있다면 이런 치열한 프로그래머의 세상에서 분명 뒤처질 수는 있다고 생각되니, 남은 시간에 다른 컴퓨터 언어를 배우거나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포트폴리오에 넣어볼 순 있지 않을까. 



시간과 효율성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늘 이 인터넷 글이 먼저 떠오른다. 나는 내 시간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내 일터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작가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 따져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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