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건강한 소통
본디 나는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라서, 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그림을 그려오는 것에 익숙했다. 그러다 보니 내게 대가가 없는 그림, 주어지는 보상이 없는 그림들은 잘 안 그리게 되었다. 내 그림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만들던 때와는 다르게, 이제는 내가 일을 받고 해온 그림들 자체가 포트폴리오가 되어버린지라 막상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어떤 걸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게는 '그림'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라는 원론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출판사는 여러 통로 중 하나,
사실은 독자가 클라이언트
예전에 생각이 짧았을 때는 출판사가 곧 클라이언트고 내 그림은 오로지 그런 클라이언트를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 진정한 출판사와 작가의 클라이언트는 "독자", 그것도 "전 세계의 독자"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물론 출판사는 이미 받은 글 작품을 그림 작가와 매칭 시키는 중매(?)를 하기도 하고, 책의 방향성을 잡아주며 모든 기획을 총괄하고 작품에 관한 홍보를 모두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물론 나는 프로젝트의 "그림", 즉 비주얼적인 부분을 담당하니 만큼 꽤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작업이 오로지 출판사를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책이 잘 나와서 잘 알려지고, 잘 받아들여지고 잘 팔려야 좋은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것이 잠재적 "독자"를 위한 것이다. 결국 출판사는 작가가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좋은 통로,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출판사를 "넓은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때문에 이런 출판물을 다루는 작가들은 반드시 내 작품을 볼 독자들의 시선을 염두해야만 한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을지, 읽으면서 불편할 부분은 없는지, 이런 표현들이 과연 그들의 연령대와 문화적 배경에서 과연 자연스러울지, 그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과연 그들이 행복한 마음이 들지. 그리고 그런 만족감을 위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과연 생길지. 우리의 최종 목적인 "독자", 즉 "이 그림책을 행복하게 감상할 독자"라는 것을 반드시 염두하면서 일해야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이, 출판사의 아트디렉터가 작가에게 주는 세부 지침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서,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는 감각을 계속 기르면 오히려 아트디렉터 입장에서는 특별히 조언할 것이 많지 않아 매우 편하다. 여기서 좀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독립 출판사에서 실험적으로 내는 그림책이나 아트북이 있다. 소량으로 찍으면서 독특함과 예술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탬플릿 속에서 작업되는 다른 그림책과는 다르게 구도라던가 색감, 프린팅 방식 등에서 다양한 독창성이 있다. 자신의 작품이 기존 화풍과는 다른 독특한 부분이 있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해보고자 한다면, 이런 작은 출판사들이 더 자신에게 잘 맞을 것이다.
좀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해외에서는 LGBT, 장애인, 여성인권, 소수 문화 혹은 소수인종을 포함하는 다문화 코드가 기본 베이스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많은 책들을 다양하게 만드는 원천지인 미국은 기본적으로 이민국가라서 독자들의 연령층, 성별, 성적 정체성 등을 따지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늘 동질적인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와는 문화가 매우 다른 것이다. 한국에도 최근 다문화 가정이 많아지면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소설책, 그림책들이 조금씩 들어오거나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 북미의 거대한 그림책 시장에 비하면 아직 갈길이 멀다.
우리나라에 과연 레즈비언 부부와 그들의 아이들, 혹은 게이 부부와 입양아에 대한 그림책이 과연 소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여성이지만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된다고, 혹은 남자가 좋다고, 아니면 나는 양성애자라고 말하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나오는 그림책을 과연 소개할 수가 있을까? 또 주인공들이 아프리칸, 라틴, 혹은 다른 소수민족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책들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당연히 그런 그림책에 대한 수요가 적은 이유는, 아직 우리가 많은 인종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주로 소개되는 책들의 주인공은 대개 유로피언이나 미국의 백인 계열 아이들이다. 이제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정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요즘, 좀 더 많은 문화적 배경이 들어가는 다양한 그림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늘 세상이 진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하다못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래 세대를 위해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를 퇴행하는 여러 국가들처럼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그저 몇몇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좀 거창한 이야기인지도 몰라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좀 더 잘난 그림들을 계속 그리면서 뽐내는 게 아닌, 더 나아가 세상의 편견을 조금씩 바꾸고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선한 일이 되기를 바란다. 왜냐면 오로지 물질적인 것에 가치 목표를 두고 나 아가다 보면 언젠가 큰 슬럼프에 부딪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크게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그림이 아닌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있는가."
"내가 받는 돈은 나의 가치판단에 비추어 보면 과연 떳떳한 돈인가."
"좋은 방향으로 나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나는 지금 여기서 어떤 일들을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좋은 기교와 기술을 가진 작가들은 많지만, 생각보다 이런 문제를 깊게 고민하는 사람들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냉엄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실 성공한다는 건 쉽지 않고, 그게 전업작가일 가능성은 정말 낮기 때문이다. 결국 매번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응하는 상업 작가가 되면서 자신만의 색을 점차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으며, 그건 엄밀히 말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이런 극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태어나, 역시 너무나 잘 그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런 한국이란 사회에서 경쟁해야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시작점이 너무 가혹하다고 밖에는.. 늘 생각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말 뭐든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두각을 보이며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참 많다. 이 정도만 하면 괜찮겠지, 이 정도면 낫지 하고 어떤 지점에서 쉽게 놓아버리는 느슨한 외국 교육 시스템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은 참 어디서나 살아남을 수 있는 끈질긴 지구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타고난 것도 있고, 그렇게 길러진 것도 있고..
하지만 이런 무한경쟁적인 사회에서, 그래도 "내가 그리는 이 그림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던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다른 사람들의 삶과 사고방식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내가 원하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하고 싶다. 그게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