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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Mar 14. 2022

영어 이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딜레마

나는 어학연수를 하고 유학을 하면서 늘 내 본명인 '나영'으로 불리길 원했다. 그래서 늘 친한 친구들에게도 내 이름으로 불렸고 내 이름을 부름으로서 그들이 나를 분명한 한국인으로 봐주길 바랬다. 영어 이름을 쓰기엔 비교적 발음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해도 억지로 만든 영어 이름으로는 그것이 온전한 내 이름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편의상 영어 이름으로 나를 홍보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작가'로서의 나와 '개인적인 나'에 대해 좀 분리를 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는 특히 영미권으로 내 작품을 알리게 되면서 그들에게 좀 더 쉽게 인식되는 이름으로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다. 영미권에 진출한 많은 아시안 작가분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영어 이름과 자신의 원래 성을 혼용해서 쓰지만, 계속 자신의 원래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영어 이름을 쓰느냐 안 쓰느냐는 정말 오로지 본인의 선택이다. 그건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리 원래 이름과 비슷한 영어 이름을 쓰려고 해도 입에 잘 안 맞는 경우도 많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종교적인 이유 (대부분의 영어 이름이 기독교 어원이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영미 출판계 쪽에서 일하는 작가들이라면 영어 이름을 하나씩은 가져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영어 이름을 짓는 이유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1. 영어로 번역되면 매우 어색한 발음의 이름일 경우


한국 이름에는 '', '', ''같은 발음들을 그대로 적으면 정말 이상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 Bum'  놈팡이, 건달, 엉덩이라는 뜻이 있고, ' suck or suk'  '빨다'  (특히 성적으로 은유됨) 보편적이며, ‘ dong'  속어로 음경을 뜻한다. '  Gang'  마찬가지... 나도 정말  영어에는 성기나 성행위에 대한 은어가 이렇게나 많은지  수가 없지만, 이런  모르고 소리 나는 대로 쓰면 자칫 현지인들에게 오해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유석 (You Suck) 동석(Dong suck) 미석(Me suck) 석범 (Suck bum) 같은...



나도 안다. 우리들이 영어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입장에서 서본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정말 이건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고, 사실 좀 어색해 보인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이름을 비웃는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인종차별적이고 무례한 일이다. 여하튼 이런 발음이 이름에 들어있다면 한 번쯤 다른 영어 이름이나 차라리 이니셜로 대체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말이지 대체 왜 영어에 성적 비속어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왜 하필 한국어와 비슷한 것들이 있는지... 그저 억울할 뿐이다. 대체 왜?



2. 종교적 이유


특히 아랍권 문화처럼 종교의 영향이 강한 나라의 작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보는 Chris, Noel, Noah, Nathaniel, Natalia, Elizabeth, Angela, Eva.... 정말 많은 이름이 기독교나 유대교 경전에서 유래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면 신경 안 쓰겠지만 불교 도거나 다른 종교를 가졌다면 아무래도 조금은 신경이 쓰일지도?


이런 경우의 대체안으로는 식물이나 꽃, 나무, 혹은 사계절을 뜻하는 단어나 자연물 (해나 달, 혜성, 별 등...)을 테마로 이름을 짓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실제로 많은 영어 이름들이 자연물을 뜻하는 이름이 많다. Ivy, Sage, Willow, Laurel, Summer, Ginger, River 등등..



3. 출판물처럼 자신의 이름이 자주 드러나는 일을 할 경우



이것도 역시 개인의 취향 차이이다. 자신의 원래 이름이 자연스럽고 마음에 든다면 그걸 쓰면 되는 거고, 아무래도 많은 영미권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영어 이름을 쓰고 싶다면 그렇게 써도 된다. 많은 제3세계의 작가들, 아랍이나 인도, 아시아계 작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종교적 이유로 자기 이름을 쓰고 있다. 대개 그들이 쓰는 이야기의 테마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에세이나 소설인 경우가 많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에 대한, 한국에 대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양이나 중동, 아프리카와 같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 작가로서 참여하고 싶어서 영어 이름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 이름을 쓰면 나를 처음 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나 보다도 '아시아 인'으로서의 나를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조차도 그들에게는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으로서 받아들여지기 더 쉽다. 많은 서양인들이 북동 아시아인 =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동아시아에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모여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참 많다. 유럽에 대해서는 자신의 조상으로부터 그나마 들어서 알고 있지만, 아시아는 그들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꽤 생소한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진 내 성姓 을 유지하면서 이름만 영어로 바꿔 쓰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대체 어떻게 발음하냐고 재차 묻는 친구들에게 지쳐서, 또는 영어 이름으로 바꿔서 좀 더 해당 사회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서, 혹은 전혀 다른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영어 이름을 만드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사실 나도 한국에서만 활동했다면 영어 이름이 아닌 내 본명을 계속 썼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영어 이름을 짓는 데에는 많은 고민과 생각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근에는 내 필명에 대해서 좀 고민하고 있는데, 쉽게 보기 어려운 좀 독특한 스펠링과 발음이라서 이것과 비슷하지만 좀 더 보편적인 영어 이름으로 바꿔볼까 생각하고 있다. 혹은 그냥 내 한국 이름을 쓰는 게 나으려나...

한국에서 외국 출판사와 일하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한국인으로서, 혹은 국경을 뛰어넘어 일하지만  어디에도 적응을 못하는 정서적 이방인(?)으로서, 오늘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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