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창작활동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일주일에 한 번씩 글도 쓰고 책도 한 권씩 읽자.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범적인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다짐과 무색하게도 한동안 그림 작업에 시달리면서 계속 글을 쓰지 못했다... 사람이 평일동안 너무 바쁘게 살면, 정말 주말 쉬는 동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림 그리는 일이 즐겁지만 어쨌든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라서, 쉬는 주말에 구태여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이제 손에 꼽는 일이 되었다.
본래 책 읽는 걸 아주 좋아하는 편이지만, 간혹 작업이 몰린다던지 크게 피곤할 때면 책대신 평소 즐겨보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10분 이상 되는 긴 영상을 참고 즐길 인내력이 바닥이 난 터라,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본 지도 참 오래됐다. 유튜브가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그렇게 긴 드라마를 밤새 볼 수 있었을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찰나, 이번에 좋은 기회로 출판계 에이전시 The Cat Agency 와 함께 작업하게 되었다! 에이전시를 찾는 일은 나의 주요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작년에 작업을 마친 책의 아트 코디네이터가 퇴사를 한 후 에이전트가 되어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이래서 인연이란 참 묘하다.
드디어 벼르고 벼려왔던 나의 온전한 창작책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야호!
기회는 또 다른 위기와 모험의 시작
하지만 좋은 기회란 내가 미리 갈고닦은 실력과 준비물이 없으면 다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동안 글감을 받아서 그림만 작업하던 나로서는, 이미 상업적인 그림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쳐보라는 에이전트의 조언을 듣고 한동안 머리가 멍해졌다. 대체 자유롭게 그리던 감각이 대체 뭐였지? 잘 그린 그림은 잘 보이는데, 잘 쓴 글은 대체 어떤 글이지?
도대체, 좋은 스토리라는 건 대체 뭐란 말이다.
"자유롭다"라는 감각이 뭐였는지 가물할 만큼, 의뢰받은 그림에 매몰되서 한동안 실험작들을 그릴 여유가 없었다. 마감이란 게 있으면 어떤 일이든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쌓이는 만큼, 주말만 되면 나는 그동안의 작업을 완전히 잊을만한 다른 활동에 몰두하기 마련이었다. 드라마나 영화 보기, 게임, 친구와 수다, 아니면 여행 계획 세우기...(물론 계획만 세웠다) 한가했을 무렵 큰맘 먹고 사놓았던 미술도구들은 먼지만 켜켜이 쌓여있다. 효율적이고 빠른 디지털 작업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그림책 작가에게 가장 좋은 교과서는 역시 그림책
그렇게 불량한 상업작가로 지내다가 최근 부랴부랴 많은 위시 리스트를 작성하면서 그림책들을 이것저것 모으고 있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 위주로 넣으면서 절판된 작품들은 중고서점에서 어찌어찌 힘들게 구하면서... 이렇게 한가득 좋아하는 그림책을 쌓아놓고 즐기는 밀크티는 그야말로 각별하다. 다른 작가들의 별난 상상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보면서 역시, 나는 그림책을 읽는 것도 그리는 것도 너무 좋아!라고, 한동안 잃어버린 초심을 찾게 된다.
그리고 최근 시간을 자주 내어 도서관에 가게 되었다. 한번 갔다 올 때마다 1-2권의 책을 읽으면, 2주의 대여기간 동안 최소한 1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게 된다. 유튜브를 보다가, 인스타를 보다가 추천하는 책 표지들을 캡처해서 앨범에 보관해 놓고, 그렇게 조금씩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도서관을 활용하는 방법
예전에는 관심 있는 책을 무작정 사서 집에 쌓아놓고 반의 반도 못 보고 도로 팔아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런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대여기간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서둘러서라도 열심히 보게 된다. 책을 참 사랑하지만, 그 사랑하던 책이 집에 들어오면 결국 게으름만 피우다 스스로 스트레스만 받는 나 같은 사람들은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은 다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빨리 읽으라고 (반납하라고) 알림도 보내준다!
그렇게 작년 하반기와 올 초에도 여러 책을 읽었는데, 그중에서 내 마음을 울린 여러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싶다. 최근에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과 동시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다음의 그림책 세 권은 좋은 답이 될 것 같다.
추천 그림책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해
윌바 칼손 글/ 사라 룬드베리 그림
사라 룬드베리 작가는 정말이지 나만 알고 싶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녀가 그린 또 다른 그림책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와 '여름의 잠수'는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책들이다. 엉성한 듯 투박하지만 너무나 자유롭고 따뜻한 감성의 그림을 그리는 사라 룬드베리는 나의 그림 지향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야기는 한 소녀의 시점에서 시작되어, 점차 피부색도 문화도 성격도 모두 다른 다양한 아이들의 시점으로 자유롭게 넘나 든다. 입양된 아이, 고집불통의 주근깨 소녀, 그리고 혼자 남겨진 전쟁 난민의 아이 등등... 아이들은 같은 나라에 살더라도 각자 다른 환경과 가정을 갖고 살아가며, 모두 저마다의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책은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중 가장 가슴 아픈 페이지는 마그달레나의 이야기이다. 죽은 흰 고양이가 아직 살아있고,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리야 이바시키나 글/그림
이 독특한 그림책은 러시아 작가 마리야 이바시키나의 작품으로, 일반적인 그림책 서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그림책은 주인공과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명확하지만, 이 책은 그런 도식에서 많이 비껴간 개성 있는 작품이다. 여느 사전을 뒤져봐도 잘 나오지 않을 생소한 각 나라들의 독특한 단어들을 주제로 여러 그림들을 그렸다. 작가가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있던 여러 나라들의 대표적인 이미지들을 파스텔과 수채화 등으로 매우 개성 있고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 일품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화보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100 인생그림책
하이케 팔러 글/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투박한 듯 정겹고 따뜻한 오일 파스텔의 느낌을 잘 살린 이 작품은, 오랫동안 서점에서 스테디셀러였다. 일반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두꺼운, 하지만 분명하게 "그림으로 모든 내용이 표현된" 그림책이기 때문에, 나에게 이 책은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다. 진실하지 못한 말들과 어지러운 활자들에 지친 많은 어른들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올 듯한, 정말 담백한 내용의 책이다.
이 책은 1에서 100가지의 문장과 함께, 한 아이의 탄생부터 연애, 결혼, 나이듬과 죽음을 맞이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림과 함께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때문에 이 책은 수동적으로 “그림이 글을 뒷받침해 주는 삽화책”이 아닌, 분명한 서사가 있는 "그림책"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이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생"이지만, 하이케의 묵직한 글과 발레리오의 기발하고 자유로운 그림 연작들이 합쳐져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한 사람의 일생"이 되었다.
똑같은 작가들이 쓴 그림책 "우정그림책" 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대답을 찾는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책도 적극 추천!
그림책 이론서
100권의 그림책
마틴 솔즈베리 지음 / 서남희 옮김
그림책 집필을 준비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좋은 그림책이란 어떤 걸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럼 작법에 들어가기 전에, 그동안 "어떤 그림책들이 좋은 그림책으로 여겨졌는지" 한번 천천히 살펴보는 건 어떨까. 가능하면 많은 예시들이 한 권에 모두 들어가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영국의 그림책 연구가이자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마틴 솔즈베리가 지은 책이다. 큰 그림들이 시원시원하게 들어가 있는 화보책으로,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책들이나 심미적으로 독특한 입지를 지닌 숨겨진 책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이 망라되어 있다. 자신의 정체된 그림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면서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보면서 여러 아이디어와 함께 좋은 기분 전환이 될 것이다. 영국 작가이니만큼, 초반의 그림책들은 주로 영국과 프랑스 초기 그림책들이 소개가 되어 있다.
그림책 디자인 도서관
LST Publishing House 지음 / 이현아 옮김
"100권의 그림책"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고전 작가들 위주로 책들이 엄선되었다면, 이 "그림책 디자인 도서관" 책은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엄선하여 보여주고 있다. 파노라마 책이나 카드 북, 아코디언 북, 천으로 장식된 그림책 표지, 손전등을 비추면 그림이 나타나는 책이라던가 신발 모양의 재미있는 책... 상업성에서 벗어난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매우 흥미롭다. 이전에 소개된 "100권의 그림책"은 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책의 형태"를 갖춘 작품들 위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것도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물음과 화두를 주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다.
일반 그림책의 서사보다는, "그림책이라는 틀을 벗어난 여러 아이디어"를 찾고 싶은 작가들을 위한 좋은 추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