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May 13. 2023

그림책을 그리는 진정한 이유

그저 돈만 보고 그림책을 그리면 안 되는 이유

그림책을 그리게 되면 주변에서 여러 말들을 듣게 된다. 아이들을 위한 책을 그리는 작가분들은 얼마나 마음이 고울까요? 이런 좋은 그림들은 역시 작가분들의 아름다운 내면세계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국내에서 그림책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해외에서 책을 내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네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면세계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그저 여러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뿐인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나와는 전혀 다른 작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저 쑥스럽다. 사실 한국이 아닌 해외 여러 출판사와 일하면서 내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마음이 30% 였고, 나머지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홀로 서기 힘든 어려운 국내 사정 때문이었다. 이런 여정을 밟게 된 이유는 사실 경제적인 부분이 컸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는 프리랜서 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확률이 매우 매우 크다.

 

꽤 경력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일이 끝날 때마다 앞으로 뭘 할지 매번 고민이다!


일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폭발하는 일확천금류의 1년 안에 십억 부자 되기, 지금 당장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있다- 같은 부자 신화를 꿈꾸는 작가라면 그림책 시장은 잠시 접어둬도 될 것 같다. 출판 시장 자체가 예전과 다르게 많이 축소가 되었다. 이제 많은 아이들이 게임이나 OTT, 유튜브 같은 여러 매체를 이용하면서 예전만큼 책을 안 읽는다. 이건 해외도 마찬가지라서, 아이들은 책에 코를 파묻기보다 틱톡이나 SNS에 올릴 릴스를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이렇게 문해력이 떨어지고 즉각적인 자극과 도파민에 익숙해지니,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좋아요" "댓글"따위가 없는 책은 잘 읽지 않게 된다. 책을 읽으면 자동적으로 "좋아요"가 달리고, 사람들의 댓글이 여러 개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더 신나고 더 즐거울 텐데. 아마 친구들과 좋아요 얼마나 받았는지 비교도 하면서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을 텐데 말이다.


정말이지, 눈 돌리면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국내와 해외 출판사들의 속사정들


이렇게 아이들이 책을 안 읽으니 책을 발행하는 출판사도 출판 부수 자체를 줄이고, 부수가 줄어드니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도 적어졌다. 출판시장이 호황이었던 과거에 인세만으로 집을 살 수 있었던 어마어마한 대작가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초판 인세로만 만족하고 서둘러 다음 작품을 여러 권 만들어야 겨우 1년 치 생계를 꾸려가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큰 출판사들의 엄청난 마케팅이라던지, 큰 운을 업지 않는 이상 한 두 권의 인세로만 사는 건 불가능하다.


생각보다, 그림책 그리기는 돈이 많이 안 벌린다. 차라리 광고 디자인이나 큰 기업의 광고 일러스트 한 장 그려주는 게, 그림책 한 권 다 그리는 것보다 더 많이 벌 수도 있다. 그만큼, 영세한 그림책 출판사가 참 많다. 그건 해외도 마찬가지다. 그림책은 연속적인 그림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작업해야 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개인적인 "헌신"이 필요한 분야이다.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전면 컬러 페이지"이며, 표지는 주로 "하드커버" 제작된다. 올망졸망작은 아이들이 던지거나 떨어뜨려도 손상되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표지를 두껍게 한다. 게다가 그림책들은 판형이 크다! 물론 일부 토이류 그림책들은 손바닥 크기로도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읽을  있도록 판형이 크게 나온다.


 그림책은 기본적으로 하드 커버이다. 출처: www.strongtowns.org


그래서 투자 비용이 다른 책 보다 훨씬 크다. 흑백이나 2도 인쇄만 해도 책을 읽는데 지장이 없다면 과감하게 인쇄비용을 줄여도 되는 다른 책과는 달리, 그림책은 그럴 수가 없다. 심지어 해외 페이퍼백 책들처럼 염가판으로 거의 갱지나 다름없는 저가종이에 인쇄를 해도, 제작비 대비 남는 비용이 꽤 많다. 하지만 무릇 부모들은 자기 읽을 책은 막 사더라도, 아이들에게 선물하거나 같이 읽을 책에 대해서는 당연히 좋은 품질을 요구한다.


그래서 딜레마다. 출산율을 점점 낮아지고 그림책 시장은 점점 작아지지만, 그렇다고 책의 품질을 낮출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을 필두로 고인플레이션 현상이 계속 유지가 되면서, 요 2년 동안 그림책의 가격도 엄청나게 뛰었다. 인쇄비용을 줄이기 위해 이미 많은 북미와 유럽 출판사들이 동유럽이나 아시아 인쇄소에 외주를 많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사 운영비용이나 서점 납품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책의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더라도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 책을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점점 힘들어지는 게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만 바라보고 그림책을 그릴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을 그리는 이유는 뭘까? 돈도 잘 안 벌린다던데, 왜 출판사들은 굳이 출혈을 감수하면서 새 작가들을 발굴하고, 열심히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내는 걸까. 지금 아이들은 백만구독 유투버가 되거나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왜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 그림책들을 매년 만들어내는 걸까.


생후 3년까지 아이들에게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는 아이의 평생을 좌지우지한다. 엄마에 대한 애착과 함께 촉각적, 시각적, 청각적 정보는 갓난아이에게 정말 중요하다. 특히 그림책은, 부모님과 같이 읽는 책이다. 더듬더듬 스스로 읽어보는 아이를 보며 칭찬해 주고, 잘 읽지 못하는 부분은 대신 큰소리로 읽어주고, 읽다가 힘들면 다음 날에 다시 읽어보고... 이런 무수한 과정 속에서 아이는 그림책을 통해 엄마와의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아이를 품 안에 놓고 책을 읽으면서, 엄마도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순간순간마다 아이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눈다.


아이들은 그림책과 함께 부모와의 애착을 배운다. 엄마이든 아빠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그림책은 앞으로 자라 날 아이들의 정서적인 부분을 케어해 준다. 이렇게 글이 적은 보드책이나 그림책을 읽으면서 "단어"와 "문장"을 알게 되고, 학교에 들어가서 "청소년 문학책 (챕터북)" 등을 읽게 된다. 그렇게 짧은 스토리를 스스로 읽게 되고, 좀 더 나아가 고학년이 되면 "해리포터"나 "트와일라잇" 같은 일반 소설들도 충분히 즐기게 된다. 책이 사람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세상을 넓혀간다.


아이들이 문해력을 발달시키는 이런 과정 속에서, 그림책은 그 첫걸음을 떼게 한다. 이 전 과정에 대해 알게 되면, 그림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이의 성장 과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림책을 그린다는 것은, 아이들의 바른 성장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충분한 보수는 기본


작가가 일을 즐겁게 하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당연히 그에 맞는 보수를 받고 일을 해야 한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적절하지 않은 보수" 때문에 많이 속앓이를 했던 경험 때문에 나 자신도 일정한 기준 이하의 일은 받지 않는다. 아무리 동기가 좋더라도 적절한 보수가 없으면 작가는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은 작가는 즐거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해서 정말 얼토당토않은 돈으로 작가를 옭아매는, 그런 매너 없는 출판사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기저기 존재한다. 정말이지, 어디나 다 똑같다!


하지만, 그림책을 만드는 건 분명 돈 이상의 "헌신"을 필요로 한다. 돈을 충분히 받더라도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린다는 건 쉽지가 않다. 그리고 수정작업도 그린 작업량만큼이나 많이 들어간다. 출판물은 한번 출간이 되면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아트디렉터들이 만약을 위해서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수정을 요구하곤 한다. 아이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던지 부적절한 표현이라던지... 그 모든 과정을 감수하기 위해선 분명 "헌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림책을 출간하는 비용도 워낙 큰 편이라, 책 한 권 한 권을 끝마칠 때마다 출간에 누가 되는 부분이 없도록 최대한 완성도 있게 끝내려고 한다. 어찌 됐건 출판업이 환경을 해치는(?) 일이라면, 어차피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한다면 최대한 의미 있는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조악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모든 물자와 노력들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한 권의 책을 만들면서 다져지는 동지애.


이렇게 책 한 권을 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책 작업을 사랑하는 이유는, 한 권 한 권마다 아트 디렉터, 작가와 나와의 독특한 추억이 담기기 때문이다. 1년 내외의 작업 기간 동안 디렉터와 작가, 나 이 세 사람과의 잊을 수 없는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작업하는 동안 주고받은 스몰 토크, 좋은 아이디어를 위한 여러 피드백, 주고받은 재미있는 자료들, 서로의 인연에 대한 감사...


물론 그중에 좋은 경험도 있고 짜증 나는 경험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담은 하나의 결과물이 내 손안에 주어진다는 것이 참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은 참 개인적인 일이다. 이 경험은 독자들이 아닌 오로지 같이 일을 해온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니까.


이런 매력을 잃지 못해서, 오늘도 나는 그림책을 그린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을 관리하는 자, 인생을 지배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