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이 만들어지는 과정
새로 나온 책 "The Littlest Weaver"!
오랜만에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작년 10월 3일에 발간된 The Littlest Weaver는, 본 작업이 2022년 여름에 끝나고 1년 여의 시간을 기다려서 발간된 책이다! Robin Hall이라는 미국 글작가와 같이 작업한 책으로, Robin Hall의 첫 데뷔작이다. 개인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책이었는데, 아무쪼록 잘 편집되어 하드커버로 예쁘게 출간이 되어 너무 기쁘다.
만약 궁금한 분들이 있다면, 미국 아마존과 Familius 홈페이지에서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배송을 개인이 하면 배송비가 워낙 많이 드므로, 교보문고나 YES24, 알라딘에서 사는 걸 추천하고 싶다. 아마존에서 최저가로 나오는 걸 선택하면 되지만, 기본 배송비가 많이 비싸서 여러 권 사는 것이 아니면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트디렉터의 초반 레이아웃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스토리보드를 짜서 만들었다! 보통 아트 디렉터들이 그림 작가에게 그림을 맡기기 전에, 아주 전반적인 썸네일 그림이나 레이아웃을 짜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건네준다. 아트 디렉터는 말 그대로 그림을 총괄하는 포지션이다. 내부 페이지와 표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싶은지, 어떤 구도가 해당 페이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지, 독자들에게 가장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그림작가보다 더 고민하고 많이 신경 쓴다. 그래서 대부분 일을 잘하는 아트디렉터는 페이지마다 아주 자세한 설명을 달거나, 직접 페이지마다 썸네일을 그려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본적인 글작가의 글만 가지고, 최소한의 정보만 갖고 내가 직접 썸네일과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덕분에 스토리 보드 작업에서 굉장히 많은 수정기간이 걸려서, 막바지에 애먹은 기억이 난다! 처음에 내가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구도로 그릴 수 있지만, 아트 디렉터가 중간에 마음이 바뀌면 엄청난 수정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최소한의 섬네일을 초반에 받아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덕분에 이번 책에서는 좋은 구도, 좋은 레이아웃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된 것 같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샘플로 나온 페이지들을 통해서 대략적으로 어떤 식으로 레이아웃을 짰는지 설명해보려고 한다.
전체적인 구도를 통해 본 페이지 구조
이 페이지는 "Title Page (속제목 페이지)" 바로 뒤로 등장하는 페이지이다. 미국 애팔라치아 산맥을 배경으로, 작은 오두막에 살고 있는 소녀와 할아버지가 보인다. 왼쪽 페이지의 텍스트는 헌정사이며, 주로 이렇게 스토리가 시작하는 즈음에 나오거나 타이틀 페이지 왼쪽에 나오기도 한다.
그림책 내용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일본 그림책 제외), 기본적으로 독자의 시선의 흐름을 왼쪽->오른쪽으로 끌어야 한다. 이 일러스트에서는 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 집의 위치와 모양, 키우고 있는 동물들이 소개되어야 한다. 따라서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는 구도로 만들었다. 시선은 "소녀-> 할아버지-> 집", 혹은 "할아버지와 집-> 소녀" 이렇게 옮겨지도록, 오른쪽 페이지 끝에 치우쳐서 인물들을 그렸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음 페이지로 손이 가도록 레이아웃을 짜봤다.
Gutter를 조심하자!
여기서 주목할 것은, 페이지 가운데에 인물이나 텍스트가 없다는 점이다. 이 일러스트는 양면 페이지이다. 책이 가운데로 찝히는 공간에는 중요한 텍스트나 인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 스토리 보드 수정작업에서 가장 먼저 지적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Gutter(책도랑)이다. 클로즈업된 인물 얼굴이나 중요한 사물들을 이런 책도랑 사이에 위치시키면 안 된다. 책도랑 기준점에서 좌우 최소 3cm 정도는 여유를 두고 작업을 해야 한다.
할아버지와 소녀는 카펫을 만드는 카펫 장인이다. 열심히 만든 카펫을 근처 마을에 팔기 위해 수레를 끌고 언덕을 내려가는 모습이다. 저 멀리 마을로 가는 중간에 무언갈 팔러 나가는 수상한 아저씨가 보인다. 저 아저씨는 어떤 걸 팔러 가고 있을까?
이 페이지에서는 펼침 면 하나에 다양한 정보를 넣어야 했다. 카펫을 수레에 넣고 팔러 가는 할아버지와 소녀, 애팔라치아 산맥에서 볼 수 있는 새와 사슴, 도중에 마주치게 되는 수상한 아저씨, 저 멀리 보이는 마을.... 역시 페이지 방향은 왼쪽->오른쪽 이기 때문에 시선이 왼쪽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구도를 짰다. 수상한 아저씨도 페이지 방향에 맞춰 오른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원근감을 살리기 위해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소녀를 크게 부각했다.
역시 이 페이지의 중간 부분에는 중요한 어떤 것도 넣지 않았다. 새와 사슴이 중간부근에 있지만, 스토리에서 중요한 동물들이 아니라서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이 페이지도 역시 시선이 왼쪽->오른쪽으로 옮겨간다. 아마 독자들은 텍스트를 먼저 읽고, 할아버지와 소녀를 보았다가, 아저씨의 얼굴로 초점을 맞출 것이다. 모든 주요한 인물들과 텍스트는 책도랑에서 멀리 위치해 있다. 텍스트의 가독성을 위해 배경을 하얗게 날려버렸다. 아마 하늘색으로 가득 채웠다면 본문의 텍스트가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페이지의 극적인 효과도 훨씬 반감되었을 것이다.
뒤에 있는 어두운 산 배경들 덕분에, 카펫에서 나오는 꽃잎들과 화사한 효과들이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또한 왼쪽 페이지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소녀의 자세는 모두 다르다! 할아버지는 카펫을 들면서 앞을 보고 있고, 소녀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중요한 인물이 오른쪽을 보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독자는 오른쪽 페이지의 아저씨를 보게 된다.
이렇게 한 페이지 안에 다양한 시선, 몸짓 기호들이 있으면 독자는 더욱 생동감 있게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캐릭터의 시선과 몸짓, 손짓 하나하나에 다양한 의미를 담아야 하니, 스토리보드 작업은 정말 어렵고 수정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 페이지의 여운을 위해 배경을 하얗게 빼버렸다. 덕분에 이 세 사람의 유대감이 그림 속에 잘 묻어 나온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삼각형 구도라서 좀 더 안정적으로 보인다. 역시 최소한의 텍스트를 넣어서 스토리의 마지막 여운을 즐길 수 있도록 아주 심플하게 구도를 짰다.
꼭 이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그림책 마지막 장면에는 복잡한 정보들이 나오면 곤란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지금까지 나온 모든 떡밥들이 잘 회수되고 인물들이 적당한 결말을 맞이할 때 시청자들이 편안함을 느낀다. 갑자기 못 보던 인물이 등장하거나, 전혀 새로운 사건이 전개되면 불편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그림책의 세계는 넓기 때문에 어떤 스토리든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가능하면 마무리를 깔끔하게 해 주자.
이렇게 짤막하게 일부 페이지를 통해 레이아웃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로 이번에 샘플로 나온 페이지들은 양면 펼침면 페이지들이라서, 한 일러스트로 모두 설명하는 페이지들이 대부분이다.
이 외에도 삽화만 나오는 페이지, 싱글 페이지, 스폿 일러스트레이션 (작은 아이템이 나오는 소삽화)으로만 꾸며진 페이지 등등... 레이아웃을 짜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도서관에 있는 다양한 그림책을 보면서 레이아웃을 많이 연구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