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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Mar 02. 2022

혈액형 연애학을 믿으시나요

혈액형은 혈액형이다 

  잠이 안 와 스마트폰으로 다음(Daum) 카페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최근 가입한 카페부터 이전에 가입에 카페까지 리스트가 쭉 뜨는데 그중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입 연도 09년. 카페명 AB 애인을 둔 사람들의 카페. 그렇다. 내 첫 연애는 나보다 한 살 많았던 오빠였고, 그 사람은 AB형이었다. 카페를 들어가 혹시나 싶어 내가 내가 쓴 글 목록을 눌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내 온몸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었다. 크크크와 유유유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남발하는 원인모를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들이 세네 개 남아 있었다. 나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글 하나를 눌렀다. 

  당시 AB형 카페는 AB형 남자친구를 둔 여자친구들이 많은 카페로 기억한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2008년도에서 2009년도 다음 카페가 성행하던 바로 그 시절이었으니까. 당시 남자 친구는 힘들 때마다 말 수가 적어진다던지, 힘든 이야기를 잘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 친구인 내 입장에서는 항상 답답했다. 카페에서는 흔히 동굴에 들어간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문자 연락이 안돼 답답하다며 카페에 글을 남기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연락을 참아야 한다며 서로를 위로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혈액형 것도 AB형만이 꼭 동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데 참 웃겼다. 당시 우린 뭐라도 명분을 만들어 함께 공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문자, 전화 한 통 없는 옛 남자 친구의 연락을 세월아 네월아 기다리면서. 이것이 마지막 사랑인 것 마냥 신경 쓰지 말고 기다리면 연락이 옵니다 라는 말을 믿고 싶어서 카페 활동을 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동굴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뭔가 싶었다. 흔히 말하는 싸우기 싫어 회피하는 '회피형' 성향의 사람일 수도 있고.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서 혼자 꽁꽁 싸매고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어릴 때는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는 반대로 내가 동굴 속에 들어가는 일이 잦다 보니 알게 되었다. 특정 혈액형에 대한 맹신, 그건 그냥 일반적인 통계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B형 남자는 이렇고, A형은 대체로 소심하고 O형은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다는 건 정말 단순한 속설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싸우면 몰아붙이기보단, 연락을 자제하고 한번 더 곱씹으며 생각하게 된다. 힘든 일이 있다고 곧이곧대로 이성에게 말하는 것도 자중하게 된다. 나는 09년도 AB형 남자 친구에게 섭섭했던 그때의 마음을 마주한다. 많이 어렸던 09년도의 나는 갓 취업한 직장인 남자 친구와 사귀었었다. 야근이 잦아서 연락할 시간이 없다고 했는데 그때 나는 야근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많이 보채던 그때의 내가 생각났다. 그래 놓고선 카페글에는 위로를 받기 위한 온갖 이모티콘과 나도 알아보기 힘든 의식의 흐름 속 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나도 나를 모르기에 나를 질책하며 이불킥을 날렸다. 

  어릴 때 연애를 하면 줄곧 듣게 되는 말이 하나 있다. 시간이 약이고 지나면 추억, 나중에 다 깨닫게 된다는 말. 조금은 꼰대스러울 수도 있지만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은 그때는 아주 많이 어렸다는 것이다. 혈액형은 혈액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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