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보러 갔다가 인생을 베팅했다

벚꽃과 경마장 사이, 다시 이어진 우리들의 시간

by 최물결
“이번엔 예감이 좋아”

구매한 마권에 번호와 경기 형태를 체크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년 전 처음 경마공원에 벚꽃을 보러 왔었다. 암 수술 한지 얼마 안 돼 왔던 경마장.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말 달리는 소리에 동화돼 나도 모르게 '악'하고 소리를 질렀던 곳이었다.


나는 이 년 만에 다시 지인들과 경마공원을 왔다. 언니 동생들로 구성된 네 명의 지인들. 정확히는 팔 년 된 전 직장동료들이다. 고된 일을 하며 똘똘 뭉친 우리는 퇴사를 하고도 종종 연락을 했었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한 번 내지 두 번은 만남을 가졌다. 이번에는 경마장이다.


먹자.jpg 잔뜩 산 우리의 일용할 양식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푸드트럭을 한 바퀴 돌았다. 불초밥, 떡튀순세트, 닭강정……. 정말 오랜만에 학교 축제에 온 것처럼 빠르게 메뉴를 훑었다. 푸드트럭 사이사이에는 예쁜 소품이나 과자, 간식거리를 파는 곳도 있었다. 또 인스타 팔로우를 맺거나 설문조사를 완료하면 키링이나 음료수를 주기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귀찮아서 안 했을 텐데 사람도 얼마 없고 지인들을 따라 나도 이벤트에 참여했다.


우리는 네 개의 키링을 중앙에 놓고 야무지게 사진을 찍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나는 두 시에 알바를 하러 가고, M언니는 4시까지 아이들 어린이집 픽업을 가야 했다. 동생 J는 경마장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시원하게 욕을 했다. 곧 회사를 그만두게 될 것 같다며 너무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칠 년 전에 J와 일할 때는 너무 착하고 순수해서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아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 J가 오랜 기간 회사를 다니며 입이 제일 거칠어졌다.


경마장에 왔던 할아버지 한 명이 고개를 획 돌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래도 오랜만에 모였으니 짜증만 낼 수는 없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그녀는 경마가 끝나면 혼자 차를 끌고 인천으로 가 모텔을 잡고 자고 다음날 콘서트를 갈 거란다.


벚꽃을 보고, 봄을 만끽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은 우리. 우리의 모습이 동그란 볼록거울 안에 담겼다.



키링.jpg


“한탕해야지”


처음에는 벚꽃 구경만 할 생각이었으나 이곳의 이름이 무엇인가 경. 마. 장이다. 경마장에 왔으면 경마의 맛을 조금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뚝딱거렸으나 아빠나이 또래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친절하게 베팅 방법을 알려줬다. 나는 베팅권을 사고 마권에 열심히 마킹을 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못해도 조금이라도 따지 않을까라는 심산으로 지피티에게 누가 이길지를 물어봤다. 그러나 녀석을 너무 믿어서일까. 지피티의 분석은 적중률 백 퍼센트로 빗나갔다.


나와 나를 따라서 베팅한 언니는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우리는 전략을 바꿨다. 전광판을 보며 경기 전에 사람들이 많이 베팅한 말, 제일 인기 있는 말, 한마디로 승률이 높은 말에게 걸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에 갔는데 내가 갔을 당시 서울 말들은 출전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토요일, 일요일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화면에 나오는 제주, 부산 경기를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백 퍼센트 현장감을 몸으로 느낄 순 없었지만 화면 속 말들이 뛸 때마다 사람들이 응원하는 함성소리가 귀를 찔렀다.


마치 폭죽이라도 터지듯이 말이다. 1,2,3등을 앞다투며 뛰는 찰나의 순간에 우리도 베팅한 번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네 명중에 한 명은 되겠지 했는데 정말 한 명이 돈을 땄다.
J가 딴 돈은 3000원…….


경기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뒤로 알 수 없는 표정들이 교차했다. 나는 넷 중 현금을 유일하게 많이 뽑았는데 지피티에게 베팅을 맡겼다가 다 잃었다. M 언니가 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돈을 잃었다기보다는 제대로 분석하지 못해서 못 맞췄다는 J형 기질이 툭 튀어나왔다.


이러나저러나. 벚꽃은 금방 질 테고 돈도 금방 사라졌지만 우리의 웃음은 오래도록 남았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벚꽃 때문이 아니라 함께여서 하하 호호 웃으며 오늘을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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