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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07. 2020

영원한 코스모스가 피었다

그해 여름



 여름

영원한 코스모스가 피었다


 코스모스졸업. 하지만 그 해에 나는 코스모스를 보진 못했다. 대신 할머니의 색색의 꽃다발 여러 개가 졸업 사진 속 내 얼굴반쯤 덮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몇 번을 되뇌었다. 대학교 졸업이 뭐 큰 대수라고. 사실 졸업장만 몰래 받고 올까 하는 발칙한 생각도 했다. 아니면 영영 졸업을 안 하고 학생으로 남아도 좋지 않을까? 나는 졸업예정인 학생들에게 보내는 문자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취업도 일도 뚜렷한 이정표 없는 내게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일말의 무언가는 없었다.


 

 날짜를 잘못봤다.나는 현관 앞에서 큰 목소리로 ‘오마이갓’을 외치며 두 손으로 얼굴을 움켜쥔다. 흡사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뭉크의 절규와 같을 것이다. 코스모스 졸업은 여름과 가을 사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이다. 그런데 왜 이름이 코스모스지? 대학교는 일 년에 졸업식이 두 번 있었다. 그럼 졸업사진은? 왜 1월 졸업생들과 찍었지?

별별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우리가족은 외식을 했다. 할머니의 꽃다발과 친구가 만들어준 꽃다발은 한참 거실 선반 위 화병 안에 미술관 조형물처럼 놓여있었다.


 

 할머니의 손이 분주하다.할머니는 평소 꽂꽂이며, 종이접기, 분갈이 등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셨다. 시장에서 사온 생화와 조화  여러 송이를 거실 가득히 펼쳐 놓는다. 거실바닥으로 가을햇살이 살금살금 기어들어온다. 마치 꽃의 색깔을 밝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게 예쁠까 저게 예쁠까를 고민하는 할머니의 손이 포개지며 겹겹이 쌓인다. 베란다 너머로 몇 그루의 나무는 벌써 단풍으로 빨갛게 물이 들어있다.


 “이거 내가 만든거다, 이거 학교 앞에서 파는 것 보다 귀한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로 화답한다.

 “우와 할머니 그럼 팔아도 되겠다 이건 퀄리티가 있으니까 조금 비싸게 팔아도 되겠다"


플로리스트 친구가 전날 꽃다발을 다시 만들어줬다.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톤에 심심하지 않게 리본모양으로 엮어서 완성된 꽃다발. 그 앞에는 핸드메이드 스티커를 붙였다. 역시 라라의 덤벙대는 성격은 알아준다면서 다시 꽃을 만들어준 쿨한 친구덕에 꽃다발 부자가 됐다. 8월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 햇살이 얼굴 밑으로 들어온다. 학교명이 써있는 돌비석 앞에 섰다.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장식하는 리본을 목 아래 매고 가족들과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는다. 졸업장 뒤에 어렴풋이 ‘코스모스 대학생 마감’ 이라고 적혀 있는 것만 같았다.

 졸업한지 6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다. 어른이 되면 몸은 커졌는데 마음은 선택의 기로에서 늘 주춤된다. 그럴 때면 산책을 한다. 안양천을 따라 주욱 걷는다.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 옆에는 가끔 청둥오리들이 날아든다. 강아지풀도 있고 무릎까지 오는 수풀도 있다. 햇빛너머로 그림자가 서 있다. 그 사이에 코스모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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