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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Oct 01. 2020

5월은 어른이 날

마파람이 따스하게 내 기억으로 스미는 어느 날  


“5월 5일이 껴서 샌드위치 휴가 내면 딱이겠다”

  친구와 내가 카톡을 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전날 4일이 휴일이니까 5일을 피해서 놀이 공원에 가면 될 것이라고. 우리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회사 생활을 했던 친구와 나는 그날이 무슨 날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연달아 쉴 수 있다는 것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몇 년 만의 자유냐’ 

친구는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했다. 서로가 일하는 시간 때문에 만날 수 있는 건 오로지 쉬는 날. 그것도 합의된 날에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이공원 문턱 앞에서 차가 점점 막히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는 어린이날을 피해 전날에 왔는데……. 놀이공원을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계획은 실패였다. 많은 직장인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단 것을 까먹었다. 그중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매표소 앞에 서 있는 가족단위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5월 5일이 붐비는 것을 알기에 전 날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의 전략. 우리와 생각이 같았던 것이다. 친구와 나는 그리 똑똑한 어른이 아니었나 보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아이들의 표정과 아빠들의 표정을 관찰하니 웃픈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신나서 ‘저것 타요’ ‘이거 사주세요’하며 방방 뛰어다니는데 아빠들의 표정은 벌써부터 진이 빠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들도 우리처럼 일을 하는 직장인들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연 이틀 쉬려면 지장이 안 가도록 전 날 모든 일들을 마무리해야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게 직장인들이다. 아빠들은 오죽하겠나. 

  나는 그 후로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너무도 상반된 표정들에 웃음을 꾹 참았다. 

 어릴 때 나는 5월 5일 전날 밤이면 설레어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내일은 차 타고 유원지 가자”

  “우리 칼국수, 피자라도 먹으러 가자”라며 퇴근한 엄마 아빠를 졸졸졸 따라다니며 보채곤 했었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어릴 때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갔을 때 이제 너도 많이 컸어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 떼를 쓰고 억지로 보채는 내게 많이 컸으니 참을 줄도 알아야 된다는 뜻이었으리라. 

하지만 난 아직 어린이라 어린이날에는 가족끼리 다 같이 놀러 다녀야 된다며 엄마에게 떼를 썼다. 일주일에 하루정도 쉬는 엄마, 아빠인데 ……. 그저 가족들과 나가는 게 좋고 노는 게 마냥 좋았다. 





  어른이 되니 왜 엄마 아빠가 내가 보채기 전까지 잠에 빠졌는지, 늘 피곤하다고 말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날은 선물을 받고 즐겁게 놀 수 있는 행운 같은 날이지만, 어른들에게는 조금은 숨 돌릴 수 있는 쉴 수 있는 빨간 날이다.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조금 지난 후에 알게 된 5월 5일의 또 다른 의미. 아빠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결혼기념일이라고 작게 써 놓지 않았더라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잘 몰랐을 것이다. 그 날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오월이 되면 선물 타령을 했으니.

  엄마 아빠의 기념일은 매번 마트나 장난감 가게에서 떼쓰는 내 목소리와 마주했다.  누군가에겐 공휴일이지만 특별함이 가득한 날인 줄도 모른 채로. 어린 나는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놀러 가자는 말을 아꼈다. 대신에 그 날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린 나이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종이 접기를 하자’

내가 어릴 때 종이접기, 만들기는 대단한 명품을 사는 것처럼 크고 대단하게 느껴졌었다. 특히 고난도 장미 접기는 종이접기 가운데서도 대단한 작품에 속했다. 나는 종이접기 책을 보며 또 만들기 선생님께 직접 물어보면서 열심히 장미를 접었다. 접다가 막히면 전부 다 펴서 접힌 자국을 따라 다시 접어야 했기에 완성된 장미 중 몇 송이는 꼬질꼬질 해지기도 하고 손톱자국이 심하게 나기도 했다. 그래도 난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안 이상 그 날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완성된 장미를 본 엄마의 표정은 어땠을까?

  엄마는 내게 기특하다며 어떻게 알았냐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내 입이 꽃이 피어나듯 미소를 띠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왜 결혼기념일을 말하지 않았을까? 나는 문득 생각해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엄마는 어린이날은 어린이날 자체로 지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집안에 어린이는 없다. 이제 어린이는 없으니까. 하지만 5월 5일은 특별한 날, 쉴 수 있는 어른이 날이자, 세상에 나를 있게 해 준 날, 엄마가 나의 엄마, 아빠로 온전히 가족 구성원을 이루게 해 해준 날이다. 4월의 끝자락에서 5월을 여는 초입길. 따뜻한 마파람이 열어놓은 창가 사이로 들어왔다. 지금은 색이 다 바란 장미에 내 어린 날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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