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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27. 2020

비어있는 것은 아름답다

2019년 부산 말간 여름 바다를 보며


 ‘비워있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 때 단소 수업을 하는데 처음에 소리가 안 나 애 먹은 적이 있었다. 음을 짚기 전 소리부터 내야 음정을 낼 수 있었다. 취구에 입술을 대고 지금으로 치면 공기 반 소리 반을 싣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했다. 흡흡 픕픕 소리 도대체 왜 소리가 잘 안 나는 거야? 인터넷으로 단소는 뭐로 만드는지 검색해봤다. 대나무가 떴다. 처음에는 배에서 복식호흡을 하듯 거세게 불었는데 입 근처에서 침만 고였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후후 소리를 내며 작게 호흡을 해보았다. 역시나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번 호흡을 내뱉은 끝에 겨우 첫소리가 났다. 소리는 바람을 위에서 아래로 불어넣듯이 적당히 뿜었을 때 났다. 빈 대나무 단소 사이로 소리가 청명하게 차오르고 있었다. 적당한 소리와 공기 입자들이 나무 사이로 피어올라 퍼졌다.




 적당한 것은 무엇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쉼,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봤다. 특히 글을 쓰며 어릴 적 일들을 머릿속으로 더듬어봤다. 그동안 소리를 채워 넣기만 했다면 적당히 공기를 빼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것을. 대나무로 단소를 만들 때 그릇에 내용물을 옹골차게 채웠으면 때로는 비워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 년 동안 일한 회사를 퇴사를 하고 거의 몇 년 만에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바다를 본 건 오랜만이었다. 케이티엑스를 타고 부산으로 오면서도 심장이 뛰었다. 사실 설렘보다도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하는 조바심이 났다. 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알바몬이나 구직사이트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바다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정처 없이 그냥 걸었다. 밤바다가 그런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듯 어깨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그 앞에서 바다를 쳐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하늘로 떨어지는 별들이 밤하늘에게 이야기를 하듯 반짝거렸다. 나는 말없이 걸었다. 바다의 포말이 내 마음처럼 왔다 갔다 너울지며 다가왔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계속 바다 옆 데크 위를 걸었는데 광안리 해수욕장이었다. 생각보다 해수욕장 근처는 조용했고 사람들 몇 명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버스킹을 즐겼다. 서울과는 다르게 조금 더 고즈넉해서 그런가 기타 너머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짠 바다내음이 은은하게 퍼져 코끝으로 퍼졌다. 어설픈 음정과 기타, 목소리가 맞물려 들려왔다. 바다에 가니 가슴 한가운데가 탁 트인 것만 같았다.



우리는 광안리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카페 옥상 테라스에 누워 바다도 봤다. 저 먼바다와 하늘이 만나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적당하게 가슴에서 숨이 트였다. 나도 언젠가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바다로 달려 나가서 모래사장으로 가 돌로 낙서를 했다. 이번 연도는 잘할 수 있을 거야. 파이팅. 셀카봉을 들고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해를 피하며 웃긴 사진도 찍히고, 모래사장에 비친 그림자 사진들도 찍혔다.

 비워내는 마음을 잊지 않기로 해본다. 하고자 하려는 욕심과 의욕이 아니라 비워내는 힘. 비 때로는 비워내고 적당한 호흡을 낼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단소처럼……. 잠시 쉼표를 달아보며 생각해 보려고 한다. 과유불급. 채우는 것보다 힘 빼는 연습을 해보자. 생각의 굴레를 따라 무조건적으로 채워 넣는 것이 아닌 비우면서 채워 넣자. 나도 당신도 우리도. 그렇게 비워 내다 보면 불현듯 즐거웠던 생각, 스쳐 지나갔던 생각, 차마 생각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부산 여행을 갔다 오는 길 팔다리가 가벼웠다. 몸은 피곤했지만 발걸음엔 날개가 달린 것처럼 훨훨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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