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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Sep 29. 2020

당신은 웅덩이를 피해 가는가?

여름 장마철 비가 온 후 그때 즈음

당신은 웅덩이를 피해 가는가?    

푸드덕 젖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든 것처럼 귓속을 파고든다. 바닥을 적시는 빗소리가 요란하게 아침을 밝혔다. 집 앞 무엇보다 비가 오면 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았다. 특히나 산책을 하던 곳 중간중간에 물웅덩이가 생기는 까닭에 때 아닌 멀리 뛰기를 해야만 했다. 웅덩이 때문에 새로 산 신발이 흙투성이가 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세탁을 맡겨야 돼, 발이 다 젖으면 꿉꿉한 기분이 드는데 그건 정말 싫어’ 등 온갖 부정적인 상상이 머리를 뛰어다니곤 했다. 



 예상대로 비가 오니 집 앞에는 물 웅덩이가 고였다. 비는 그쳤지만 나무에 걸린 물방울이 가끔 웅덩이 쪽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안 그래도 비 때문에 힘든데라는 말로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그날은 동화 강의를 들으러 신촌으로 가는 날이었다. 동화작가 선생님들은 어떻게 글을 쓸까. 아동문학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나도 동화 정말 잘 쓰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등록한 강의였다. 문장이나 이야기를 단단하게 하는 법을 알려줄까? 알려주면 나도 이야기를 좀 더 빨리 쓸 수 있겠지? 기대도 가득했으나 강사님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만 하셨다. 

 아이와 성인의 다른 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라. 글을 쓸 때 감각적인 느낌과 몸을 생각해라. 등이었다. 그러면서 해 주셨던 말씀이 웅덩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여러분은 웅덩이가 있으면 어떻게 갑니까?”

선생님의 물음에 수강생들은 하나같이 대답했다.

“폴짝 뛰어 건너가요”

“돌아가요”

대답을 듣고 선생님께서 나긋나긋한 말투로 대답해주셨다.

“그게 아이들과 성인의 차이예요.” 어릴 때의 여러분을 생각해보세요. 어릴 때도 돌아갔나요? "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릴 때 기억을 더듬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옷이 흙투성이가 될 때까지 집에 가지 않은 적이 많았다. 미끄럼틀과 그네가 마치 내 것인 것처럼, 다른 이에게 빼앗기기 싫은 것처럼 놀이터를 점령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하루 종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놀고 또 놀았다.

그때 나는 물 웅덩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깊은 웅덩이가 어디까지 차오르는지 궁금해서 일부러 발을 담갔다. 장화를 신고 학교를 간 날, 웅덩이들이 하나 건나 하나 있을 때는 일부러 친구들에게 발로 물을 걷어차며 장난을 치곤 했다. 그런데 그런 물 웅덩이를 나는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아이와 어른의 차이란 것에 웬일인지 공감이 가면서도 서글퍼졌다. 아니 나 스스로가 변했단 것이 미운 건지도 모르겠다. 



 동화를 공부한다고, 글을 쓴다고 하면서 피하고 돌아간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어른이 되면서 눈앞에 웅덩이가 보여도 돌아가거나 밟지 않고 그냥 빠르게 지나치려고 했던 일들이 많았다. 흙탕물을 당당히 밟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웅덩이 앞에서 장난을 치는 어른 또한 없을 것이다. 아니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쓰는 글과도 많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저 빠르게 글 쓰는 스킬을 연마해, 눈앞에 보이는 웅덩이들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많이 낯선 풍경이겠지. 그러나 아이들은 고인 물 웅덩이를 보고 발을 굴린다. 첨벙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긴다. 운동화가 더러워지면 어떠랴. 

 나도 비가 오는 날 웅덩이 속에 발을 디뎌본다. 타임머신을 타고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더 이상 젖을 까 봐 피하지 않고 그때의 기분을 잠시 동안 느끼려고 한다. 어릴 적 감각이 조금은 살아났다. 느리지만 천천히 웅덩이의 느낌을 생각하며 살아보려 한다. 그리고 이 순간 모든 사람들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네 본다. 당신은 웅덩이 앞에서 어떻게 가려고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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