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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강아지는 주인의 옷차림새를 알아본다

by 최물결


반려견 딸기의 나이는 햇수로 정확하진 않지만 11살 12살이다. 딸기는 노견이기 때문에 산책을 많이 시키지 않는다. 가끔 집안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바깥공기를 맡게 하면 우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저먼 풍경을 넘겨다 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콧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딸기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마다 커피를 사러 나가는 나는 옷을 프리(free)하게 입는다. 늘어난 긴팔 티셔츠에 운동복 바지, 뿔테 안경, 대충 옷을 입고 나갈 때면 강아지는 단번에 커피를 사러 나가는 것을 인지하고 눈을 껌뻑인다. 그렇다. 내가 커피를 사러 나갈 때문 시간대와 옷차림을 단번에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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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점심 무렵이 되면 욕실이 분주해진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 뽀드득뽀드득 깨끗이 씻고 나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후드득 털며 나온다. 그리고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며 메이크업에 열중을 한다.

주말에 중요한 약속이 한 번씩 있을 때면 안 하던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외출을 한다. 욕실과 옷방 화장대를 수십 번 오고 가기를 반복한다. 옷에 화장품 자욱은 없는지 깔끔하게 화장은 되었는지를 여러 번 확인한다. 반려견 딸기는 방석 위에서 “오늘은 어디 간데”라는 표정으로 여전히 동공만 왔다 갔다 움직인다. 거실에 앉아있던 아빠가 “쟤는 네가 어디 가는지 아나보다 쟤가 갈 자리, 안 갈 자리를 딱딱 구분할 줄 아네” 참 영특한 아이라며 칭찬 세례를 퍼붓기 시작한다. 사실 이 과정이 있기까지도 몇 개월이 걸린 것 같다.

처음에 딸기를 집에 들이고 아빠는 내 방에서만 키우라는 불호령을 내렸고 그래서 나는 외출할 때면 문을 꼭 닫고 나가곤 했었다. 그래서 외출을 할 때마다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가 않았었다. 친구들과 함께 앉아있는데 마음은 집안에 있는 딸기에게 가 있었다. 외출 전 보았던 강아지의 모습이 계속 떠 올랐다. 내 방 침대 매트리스 위에 똬리를 틀며 한껏 웅크리고 있을 딸기의 실루엣이 자꾸 눈에 아른아른 겉돌았다. 외출을 하고 집에 가자 딸기는 늑대울음처럼 하울링을 하고 있었고 내 방은 엉망이 돼 있었다. 쓰레기통은 다 쓰러져 있었고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종이며 휴지까지 잘근잘근 물어뜯은 흔적들이 방안 가득 그동안의 시간을 증명하듯 보여 주었다. 그때는 강아지를 잘 몰라서 왜 그랬냐며 무작정 혼내기만 했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사실 그 행동은 놀아달라는 표현이라고 한다. 방 안에 하루 종일 혼자 있는 강아지의 분리 불안성 모습이기도 하다. 강아지의 하루는 사람 시간으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모든 순간순간들이 주인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반려견에게는 일주일이고 일 년이고, 하루일 것이다. 강아지의 시간에 대해 알고 난 뒤부터 순간을 헛되이 하기 싫어 사진도 많이 찍어보고 산책시간도 늘리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반려견 딸기도 언니의 그러한 사정을 아는 것일까. 자신이 따라갈 곳, 따라가면 안 되는 곳을 딱딱 알고 크게 보채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함께 해주지 못하는 내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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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할 때가 되면 딸기는 내 앞에서 팔짝팔짝 뛴다. 이상하다. 따로 신호를 준 것도 아니고 산책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산책 때 입는 특별한 옷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커피를 사러 나갈 때 입는 운동복과 똑같은 옷을 입었다. 그런데도 자기를 데리고 나가는걸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나와 딸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주파수가 있는 게 분명하다. 비단옷차림이 아닌 눈빛, 몸짓 아니 텔레파시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딸기가 자주 가던 잔디밭에 코를 묻는다. 눈꺼풀이 나른해지더니 뒷발을 힘차게 긁는다. 앞장서 걷다가 뒤를 힐끔 쳐다본다. 나와 눈을 맞추다 다시 걷는다. 딸기 눈빛 속에서 따라오라는 글자를 읽고 내가 딸기를 따라간다. 오늘은 내가 딸기에게 산책당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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