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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타로카드 운을 뒤집었다

by 최물결


“카드 다섯 장 뽑아주세요”

“이번 연도에 당선이 되긴 할까요?”

손이 가는 대로 듬성듬성 카드를 잡아 아무렇게나 골랐다. 타로카드 리더사 선생님은 카드를 보고 상황이 좋지 않다며 내게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식의 말을 했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나는 한 숨조차 쉬어지지 않아서 불안한지 애 먼 손톱만 입으로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가 불안하거나 확인받고 싶을 때 타로를 보곤 한다. 미신은 믿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맞다 아니다는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2019년 (서울 지방지 포함) 동화 쓰기 신춘문예 열두 군데에 응모를 하고 타로카드를 보러 갔었다.

나는 스무 살 후반쯤이 되면 안정적인 직장에 있을 줄만 알았다. 남들과 비슷하게 돈을 벌고 커리어를 쌓으며 성공으로 향하는 기로에 오르는 기로에 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생각을 해보니 나는 평생 수능 등급처럼 내가 몇 등급이며 어디쯤에 껴서 살아야 할까 점수를 매기며 살고 있었다. 그저 남들처럼 남들 하는 데로 살아야지 하고 사는 것, 올려다보고 그 사이에 줄 서서 사는 인생……. 그렇게 살다 보니 재미도 감흥도 없었다. 나는 이직 후 직장 2년 차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퇴사 후 일에 쫓기지 않고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결심했다. 마음이 편할 줄 알았지만 막상 해야될 일들이 없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다면 일적인 것을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내가 하고싶은것? 해보고 싶었던 것? 좋아하는 일을 접목시켜서 할 수 있는것 무엇이 있을까? 머리에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동화 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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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뜬금없이 웬 동화였을까? 나는 시를 쓰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줄곧 시를 썼다. 시는 짧고 단어와 문장 속에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어서 조금만 공부해 쓴다면 더 쓰기가 수월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동화는 내게 하나의 도전이자 동심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보려는 일종의 꿈이었다. 어쩌면 동화를 쓰며 그 안에서 물장구도 치고 헤엄도 치고 장난도 치고 그러고 싶었나 보다.




고등학교 때 나는 전국에서 글쓰기로 꽤 상을 많이 받던 아이 었다. 그때는 자유분방해서 성적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성격도 왈가닥에다가 내가 하고 싶은 건 꼭 해내고 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가끔씩 글을 쓰곤 했는데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그래서 거의 십 년 동안은 글쓰기를 소홀히 했었다. 하지만 내가 회사에서 했던 일들은 거의 다 글쓰기 업무와 가까운 일들이었다. 이를테면 웹 기획서, 제안서를 쓸 때 서포트를 하는 일, 화면 해설 작가로 지문을 쓰는 일 등, 십여 년간을 글과 함께 했다.



나는 동화 쓰기를 결심하고 난 후 서점에 있는 동화 쓰기 작법서란 작법서를 모두 빌렸다.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에는 발품을 팔아 책을 샀다. 일단 책을 읽고 쓰는 법을 알아야 뭐라도 쓸 수 있게거니 생각했다. 책의 핵심은 거의 다 비슷했다. 기승전결, 플롯, 하지만 나는 시 쓰기를 오래 해서 그런지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 만드는 것이 많이 약했다. 그래서 이번엔 유튜브를 봤다. 동화 쓰기를 위한 짧지만 핵심이 되는 유튜브들이 있어서 필기를 하며 보다 보니 하루가 다 가 있었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뼈대도 잘 못 만들었던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꿈은 감추는 게 아니라 말하는 것이라고. 그게 무모한 것이라도 계속 그려보고 말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쓰기 시작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펜을 들고 직접 써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추천하는 동화책과 당선된 신춘문예나 신인상 등 단 지 작품들을 읽으며 이건 왜 뽑혔을까를 분석했다. 퇴사하고 2개월.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 싫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하루 종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독서실로가 카페에 가서 글을 써 저녁노을이 질 때쯤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떨어지더라도 글이 이상하더라도 일단은 써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글 열두 편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쓴 글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플롯 사건보다는 감정이 앞서 나가는 글도 있고, 시적인 표현력이 두드러지는 글도 있었다. 또한 소재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글들도 있었다. 왜 하필 이런 건 공모전에 다 응모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열 두 작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완성했다는 열정에 나 자신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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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봉투를 사서 일일이 봉투 위에 매직으로 주소를 한 글자 한 글자 쓰며 많이 설렜다. 떨어지고 붙고를 떠나서 오랜만에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봐준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내심 내가 될까? 되면 어떻고 안 되면 어때?라는 여러 마음이 뒤섞여 있었다.

열 두 작품을 투고하고 나서 이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회사를 그만둔지도 딱 이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글 쓰는 과정 그 자체의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오히려 글을 제출하고 나니 헛헛했다. 내 마음속 가슴 한구석에서 ‘이제 뭐하지?’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이 불안했다. 글을 쓸 때 까지는 좋았는데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면 이룬 게 없다고 생각될 테니 말이다. 답답한 마음에 원고를 부치자마자 타로 집에 찾아갔다. 첫 번째 타로 집에서는 타로 리더 사 선생님이 동화는 아니라고 카드를 보며 말했다. 가슴이 철렁 돌 하나가 얹힌 것 같았다.

“내가 왜? 난 이렇게 노력했는데?”

두 번째 번화가에 있는 타로 집이 보여 그 안으로 또 들어갔다. 나는 답정너 타입이라는 걸 이때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하는 답을 듣기 전까지 집에 안 들어갈 생각이었다. 두 번째 타로 집에서는 글 쓰는 것은 맞는데 장르가 동화는 아니라고 아예 다른 말을 해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되는지 안 되는지 라구요”

그래서 세 번째 타로 집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신문사별로 되는지 안 되는지로 바꿨다. 그분은 낸 곳이 열두 군데라면 그곳의 이름을 말해서 신문사별로 되는지 안되는지 카드를 뽑아준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타로 리더사 선생님이 또 다른 말을 했다.

“1등까지는 어렵고 2,3등 정도는 가능하다고 보여지는데 2,3등은 없는 건가요?”

신춘문예나 신인상 같은 경우 당선작으로 뽑기 때문에 2,3등을 뽑을 일은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결국 안 된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구나’

세 군데를 봤는데 좋지 않은 대답을 듣고 나는 열심히 썼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꿈은 또 연필로 스케치하듯이 슥삭슥삭 그리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크리스마스 오 일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OOO 씨 맞으시죠. 동화 부문 당선되셨습니다.”

순간 주변이 멍해졌다. 잘못들은 것은 아닌지 2-3초가량 멍하니 있었다. 열심히 해도 운이 안 따라줘서 안될 때가 있고, 조금만 집중해서 해도 되는 사람이 있는데. 타로카드에 따르면 올해는 영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후로 운명을 아니 운을 믿지 않는다. 꿈은 그리는 것이다. 나는 열 두 작품을 구상하고 쓰면서 이 중 한 곳에서라도 상을 받게 되면 좋겠다, 이런 수상소감을 말해야지를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에 이뤄졌다. 운보다 중요한 것은 열정이다. 꿈을 꾸는 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도전하는 것이다. 그게 실패를 볼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타로카드 운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열정이 나처럼 운을 뒤집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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