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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금지 내 바운더리를침범하지 마’

쌓아두지 않는 솔직한 나다움과 마주 하는 일

by 최물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너무 편해져서 ‘선을 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한 친구 녀석이 말하기로는 내가 무른 성격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장난을 잘 받아줘서 그런 거라고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단다. 하지만 나는 워낙에 수직적인 관계를 싫어해서 직급이 있음에도 편하게 대하는 수평적인 관계를 좋아했다. 둘 만있을 때는 ‘그냥 언니 동생 해’ ‘어려운 일 있을 때 언제든 말해’ ‘그거 내일 그거 같이 말해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자’라고 말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쪽이었다.


처음 회사에 웹 기획 직으로 입사했을 때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남들 앞에서 헤벌쭉 웃고 다닌다며 지적을 받곤 했다. 뒤이어 그 행동들은 사수에게 눈엣가시였고 난 단순히 친해지고 싶어서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 대리님께 초코바를 건낸 것 뿐인데 사사건건 사수는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저 사람 말 많은 사람이고 자존심 센 사람이야 네가 초코바를 주면 기는 것처럼 보여 ’라고 말이다. 과연 그게 진짜 일까? 뭐가 정말 맞는 걸까? 첫 회사라서 회사의 규율대로 맞춰갔던 것 같다. 어쨌든 회사에서 지켜야 될 일정한 경계와 선을 배워가며 이 행동은 안되고, 저 행동은 안 된다를 배웠다. 하지만 결국에 알게 된 건 그냥 그 사수는 나를 싫어해서 그렇게 대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배우면서 진짜 나를 잃어버려 스스로 위축되어 갔다. 커뮤니케이션과 꼼꼼함, 빠른 대처능력, 때론 약간의 디자인, 개발도 얇게 알아야 하는 나에게 '기획자'의 옷은 맞지 않다고 느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그 흔한 칭찬에 인색했다. 그럼에도 덤덤이 무던하게 회사를 다녔다. 나는 괜찮아, 사수는 나를 위해 한 행동일 거야 애써 긍정적인 마인드로 합리화를 시키며 하루하루를 지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며 다녔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잘 못된 것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나중에 회사에 나올 때쯤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사수는 항상 본인 일을 나에게 넘겼으며, 나를 인사를 안 하는 아이로 말하고 다녔으며, 웹 기획에 대해 잘 모른다며 400쪽이 넘는 분량의 웹 기획의 기초 다지는 책을 내게 ppt로 조금씩 정리해서 보고 하게 했다. 나는 그런 인색하고 딱딱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나중, 아주 나중에 같이 일하게 되는 팀원들과 지낼 때는 언니처럼 편하게 대해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나의 회사에서의 직급은 대리다. 외부에서는 작가, 에디터 …. 사실 회사 서류 정리부터 전화 돌리는 일, 모델을 섭외하는 일까지 다양한 일 처리를 한다. 대본 쓰는 일 오직 하나만 하면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쓴 문장이 잘못됐는지 팩트체크가 잘 됐는지 더 꼼꼼하게 할 수 있지만 놓칠 때가 더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많이 덤벙된다. 그러던 중 회사에 입사한 지 3~4개월 된 주임급 서브 편집자는 여러모로 내게 도움을 줬다. 가끔 말투에서 도가 넘을 때가 싶긴 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었다. 그것도 또 하나의 화근이었겠지. 이미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때부터 그 감정은 보이지 않는 모래 알갱이처럼 쌓이는 것이니.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쓴 내 문장에 쓴 오타를 지적해 주는 그녀를 보며 고마웠다. 나도 간과한 부분을 짚어주면서 고쳐주니 수정하기도 수월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느새 그녀는 내 문장을 고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리님 이건 이래 이래서 이상하니까 이게 낫지 않아요?’ ~랑 ~는 주어 술어가 맞지 않아서 이게 맞는 거 아니에요?‘ 모두가 일하고 있는 적막한 사무실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게 전하는 ’ 가르침‘이 묻어 있었다.


정확히 느낀 아니 내가 받아들인 언어는 ’네 대본은 좀 더 명확하게 쓸 필요가 있어 라고 들렸다. 아와 어 사이에서 방황하는 글자들이 내 가슴에 훅 들어왔다. 순간 훅 끓어올랐다.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순간 ‘착한 대리’ ‘나쁜 대리’ 사이에서 방황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참아야 하는 것인지,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 말하는 선택의 순간이었다.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지 마’

‘기분 나빠’

예전처럼 감정을 꾹꾹 눌러 담기 싫었다. 제일 싫었던 것은 작가라는 내 업무를 침범당한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 보통 대본을 쓰면 부장님께서 워싱을 하고 주시고, PD와 구현이 가능할지 한번 더 체크하며 대본이 바뀐다. 그 과정에서 바뀐 문장을 지적에 대해 지적하고 낡고 후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 문장은 부장님이 고쳐주신 문장이었다. 결코 노후하지도 않고, 그 상황과 설정에 적절한 단어였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말하다가 울컥해서 눈물을 흘렸다. 당황한 S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데려갔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말했다. 작가라는 내 바운더리라는 영역에 들어오는 건 싫다고. 못 해도 내가 혼나고, 깨지는 게 맞다고, 그런데 사실 네가 지적해 준 부분이 맞기도 해서 작가로서 자질이 없나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S는 촬영이 급박해져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선을 넘은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내 기분이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같이 일하는 대리에게 나는 그냥 벽보고 글이나 쓰는 게 좋을까 라고도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보통 내 할 말을 다 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조금이라도 남기 마련인데,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솔직하게 속 시원히 내 감정을 다 쏟아내서였을까. 오히려 할 말을 다 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될 선이 더 명확해졌다.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것 같은, 제삼자가 봤을 때 내게 대하는 예의 없어 보이는 행동들도 다 사라졌다. 좀 서먹해지긴 했지만 더 이상 내 의도와 문장 하나하나에 대해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다른 회사에서는 몰라도 나는 내 일에 그만큼 확신을 가지고 있다. 회사생활을 하며 맞춰진 틀에 감정을 더 이상 감출 필요도 착한 팀원이 될 필요도 없다. 첫 회사에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다면 지금은 내 일도 어느 정도 지켜낼 줄 알면서 관계의 적정선을 찾아가고 있다. 고로 나는 점점 내 감정에 명확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 속에 진짜 내가 있으므로.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글 쓰는 일이 담겨있다.

PS. 그러므로 접근금지. 내 바운더리는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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