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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술독에 빠진 나의 방랑기

취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 아니야.

by 최물결


장례식장에서 술이 너무 마시고 싶었다. 슬픔을 잊기에 술만 한 건 없었다.

사실 슬픔을 잊는다는 것보다는 잠시 잠깐 마음에 진정제를 투여한 것이다.

마취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사랑니를 뽑을 때 잇몸 사이로 주사 바늘이 뚫고 지나가지만 약이 투여되는 순간 아픈 감각은 사라진다. 엄마를 보낸 장례 첫날, 카스 여섯 캔을 마셨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그냥 얼굴이 빨개지고 취기가 얼굴을 통해 달아오르는 느낌만 찾아왔었다.

언젠가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부재를 잊기 위해서, 퇴근한 후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빨리 잠들기 위해서, 할게 생각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맥주를 사 왔다. 처음 입문한 꽃향이 코 끝에 맴도는 에델바이스 향 맥주는 겨우 천천히 오랜 시간 동안 한 캔 마실까 말까 였는데 ……. 어느새 한 캔을 뚝딱 하고 있었다. 그다음부터 이상하게 집으로 가는 길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마트에 들르는 버릇이 생겼다.

딱히 집에 말할 사람도 없고, 외로웠다. 외롭고 말할 이가 없으면 더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오늘은 뭐랑 마시면 좋을까부터 4캔을 사는데 새로운 걸 먹어보면 어떨까 가 내 편의점 소비의 시작이 되었다.


처음에는 맥주를 마시며 엄마를 떠올렸다. 잊어야지, 슬퍼하지 말아야지, 아니 슬퍼해도 돼 그게 정상적인 감정이야부터, 그래도 회사에서 일에 방해되면 안 돼 정신 차리자를 되뇌기를 수십 번. 그리고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 자신을 위해서 또 한 모금. 그렇게 네 캔에 만원인 맥주를 몇 모금 마시다 보면 한 캔 두 캔 세 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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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지도 못하던 알쓰인 내가 맥주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곧 중독이 되었다. 나중에는 슬퍼서 공허해서 외로워서 먹는 게 아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마시는 꼴이 되었으니까. 누가 그랬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찾게 되면 그건 의존이라고. 알코올 중독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라고. 그래, 나는 그냥 언제부터인가 술이 술이라서 먹게 된 거였다. 사실 술을 마시면 취하고 올라오는 그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 아무 감흥이 없어. 중독에서 허우적 댈 때 정신과 의사는 내게 한 주 두 주 정도면 슬픈 감정에 위안을 줄 수 있껬거니 할 정도겠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 말했다. 너무 심하게 마셔서 의존증이 의심된다며 끊기를 권유했다. 당장 끊을 수는 없으니 조금씩 계획을 정해서 끊는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제일 중요한 건 팔 할이 나 스스로의 변화니까. 하지만 상담을 받는 와중에도 ‘집에 갈 때 한 캔 사가야지’라는 명랑한 계획을 세우며 안주로 매운 순살 꼬치가 좋을지 순대가 좋을지 먹을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현타라는 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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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 쌓인 맥주캔과 빈 병들을 보며,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빠를 보며.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알게 된 집안에 얽은 엄청난 비밀들의 퍼즐을 하나둘 맞춰가며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느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지? 아니 내가 그동안 뭘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불현듯 내게 온 술이라는 녀석. 음...그랬지. 2,3개월 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셨다. 단 1분이라도 타인이 아닌 술에 내 감정을 의지했었나 보다. 아니면 사람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그냥 술에다가 내 마음을 담갔나 보다. 왜? 담금주처럼 내 심장이 잠깐 퐁당 빠져 있었나 보다. 술독에 빠져 산 삶은 내 몸도 살찌웠다. 술 살은 빼기도 힘들다던데 3~4kg가량이 늘어나 있었고, 가끔씩 자다 일어나면 화장실을 자주 가기 일 쑤. 아랫배가 나오고 더부룩하고 다음날 갈증이 많이 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방랑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잠시 잠깐 시선을 둘 때가 없어 정처 없이 될 대로 되라는 삶. 그런데 그러기에 나는 아직 해야 될 것들이 많다. 퇴근 후 얼른 칼퇴를 해 집으로 돌아간다. 돛을 달고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배처럼 집으로 가자마자 강아지 저녁을 먹인다. 곧이어 심장약을 먹인다. 심장약을 12시간 단위로 안 먹이면 숨 쉬는 게 불편하니까. 곤히 자는 아빠의 모습을 뒤로하고, 빨래를 넌다. 씻고 간단히 밥을 먹고, 짬이 나면 소소하게나마 글 쓰는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이제 진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술독에서 빠져나올 때 참으로 힘들었다. 술독에 잠겨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렇지만 스쳐 지나간 시간들은 잡아서 넣어 놀 수 없으니. 정말 말 그대로 알코올처럼 증발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소중히 잡아넣는 연습을 하기로 다짐했다. 슬픔, 외로움 등에 저당 잡혀 살지 않겠다고, 방황은 STOP. 취하는 기분은 잠시 뿐 잊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잊는 게 쉽다면 우린 AI 지 인간이 아닐 테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열심히 써본다. 한 글자 한 글자 내가 겪었던, 술독에 빠졌던 인간이 다시 정신 차리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난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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