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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08. 2021

따로 또 같이, 똑같은 걸 두 개씩 사는 이유

오늘도 편의점에 가는 나는...

따로 또 같이 사는 사람. 어색하진 않지만 온전히 편하지도 않은 사람. 나보다 몸집이 엇비슷해 보이지만 체구가 훨씬 작은 사람. 엄마를 한 평생 일하게 한 사람. 그래서 내가 많이 원망했던 사람. 바로 우리 아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와 둘이 산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제 핏줄은 너 밖에 없어 오순도순 잘 살아가 보자’

‘정리할 게 이렇게나 많은데 어찌 될 런지, 빨리 정리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어’

‘너 오는 것도 못 보고 잠들었네’

요즘 아빠가 자주 하는 말이다. 얼마 전 아빠의 입안에 구내염이 생겼는지 헐었는지 자꾸만 입안이 아프다고 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나고 걱정이 됐다. 주말에 외출한 김에 아빠가 먹을 비타민과 면역력에 좋은 액상형 약을 잔뜩 사 왔다. 그리고 오는 길에 사이다 두 개, 김밥 두 줄, 단무지 두 개를 골라 계산했다.


 

눈에 밟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예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회식을 하거나 먹을 걸 사주면 내가 눈에 아른거린다며 안 먹고 포장해 오던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요즘 마트를 갈 때면 내가 먹을 것 하나를 사며 꼭 하나를 더 짚게 된다. 나는 아빠한테 살갑고 애교 있는 딸이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노력할지언정 엄청나게 변화돼 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세상 하늘 아래 피붙이는 아빠 하나밖에 없다고. 오로지 믿고 의지할 사람, 내가 지켜낼 사람은 아빠밖에 없다는 것은 잊어버리면 안 되는 사실이었다.

약속에 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 문득 초콜릿 우유가 마시고 싶었다. 편의점에 가 초콜릿 우유를 사는데 다른 하나가 또 눈에 아른거려 하나를 더 짚었다. 엄마가 옆에서 잘했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짧은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마지막까지 당부했던 말은 아빠랑 싸우지 말고 지내라는 것이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나는 종종 아빠와 사소한 문제로 싸웠다. 정리를 해라, 이것 좀 치워라, 집에 일찍 와라 등 잔소리를 할 때면 도리어 더 큰소리로 화를 내곤 했다.


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가정에서의 가장의 입지는 아빠가 백날 잘해줘도 아이들은 엄마에게 간다는 말. 어쩌면 그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아빠를 무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아빠가 미웠다. 한 평생 엄마를 일 하게 한 아빠가 미웠고, 고졸을 하고 공장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한 아빠의 위치가 한없이 작아 보여 미웠다. 그런데 더 미운건 잔뜩 야위어 보이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누군가가 죽으면 죽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리해야 될 것들도 많고, 그 사람이 말하지 못한 흔적들 속에 찾아 나가야 될 열쇠들이 아주 많다. 엄마가 그랬다. 특히 돈에 관련된 것들 ……. 아직도 정리기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상처 받은 것들이 많지만 힘을 내 보려 한다. 따로 또 같이.

아빠와 함께 순두부를 나눠먹는다. 하나는 매콤 순두부, 하나는 흰색 순두부다. 우리 부녀는 아무 말 없이 먹기도 하고, 괜히 강아지를 핑계 삼아 대화를 하기도 한다. 아빠랑 살며 분명히 부딪히는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하기로 한다. 더 이상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말고, 엄마의 말처럼 싸우지 말고 잘 지내기로. 살아보니 마음은 아낀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서툴지만 조금씩 표현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도 퇴근길에 괜히 먹을 것을 사본다. 오늘은 아빠와 함께 저녁을 먹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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