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향적인 사람 중에서도 내향적인사람이에요.

후천적 외향적인 성격 중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내향적인 사람

by 최물결

‘정말 네가 그렇다고? 거짓말 말도 안 돼~’ 장난을 잘 치는 꾸러기 같은 모습을 보이는 나에게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며 혀를 내두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서음없이 말을 건네고 우리 친구 할래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도전 적인 사람. 원투 원투 쨉을 날리지 않고 한방에 훅 들어오는 사람.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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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면 정말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사차원 성격이라고 불릴 만큼 나는 매우 외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반대다. 나는 매우 내향적인 사람이다. 내 지인들이 이 글을 본다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 매우 수줍음이 많았다. 짜장면집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 무서워서 뭐라고 말할지 묻는 사람. 멍석을 다 깔아줬는데도 뭐라 말할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이 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나운서 커뮤니케이션학과를 나와서 언론인 준비를 했었냐고? 어느새 한계를 뛰어넘어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면 두 번째 이유로는 관심받고 주목받고 싶은 이유가 커서였다.

“관종이지만 쉽게 상처 받는 외향적인 내향”

처음 시를 썼던 것도 ‘네 까짓게 되겠어? 글 써서 갈 수 있는 대학이 있어?’라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무시에서 비롯됐으니까. 어떻게든 이루고 싶었다. 글을 쓰려는 내 마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어떻게든 쓰고 또 썼다. 공부라도 못하면 어느 것 하나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아서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처음에 글이란 걸 하나도 몰랐을 때는 무조건 글쓰기 학원 선생님이 말하는 경험 토씨 하나하나까지 다 받아 적었다. 결핍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말, 경험이 붙어야 된다는 말이 뭔지 몰라서 그게 뭐냐고 되물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만. 대학교 시절 대외활동을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활동을 설명하고, 내가 하는 일들을 말하면서 말하는 게 마냥 좋았다. 지금은 sns가 활발하지만 그때는 생소했던 블로그 기자단, 영화제 학생 스텝, 홍보대사 등 학생 때 해볼 만한 것들은 열심히 지원해서 해봤다. 그럼에도 대학생활 4년은 참 짧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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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큼직한 대외활동들, 떨어졌던 활동들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껴, 아카데미도 장수생이라 꼽힐 정도로 참 오래도록 다녔다. 사실 나는 정규직 직장인 타입이 아닌, 프리랜서 스타일인데 선생님께서는 참 성실하다며 공공기관 사내방송에도 추천해 주셨으니까. 참 모범적이고, 성실한 사람. 선생님들이 생각했을 때 참 지역방송 가면 잘할 맏 며느리 같은 반듯한 이미지라고 했었다.

“라라야 정말 되겠니 너 상처 받아”

아나운서라는 직종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많이 반대했었다. 사실 엄마는 대기업을 원했었다. 엄마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 인생플랜을 바라보았으니까. ‘요새 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보장이 잘 된 회사가 좋은 거야 누가 전직 대기업 보험회사 출신 아니랄까 봐’ 나는 엄마를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었다. 그 당시 나는 실패하더라도 좋으니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정말 듣보잡 혹은 제 풀에 꺾여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좋으니 엄마에게, 아나운서 직종을 해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었다.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더 적극적으로 변하려고 노력했었다. 나는 학원에 다니면서도 첫날 스터디를 만들고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친화력이 좋다. 선생님들의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주도적이고 이끌어 나가길 좋아한다. 그래서 늘 스터디도 나서는 사람이 없으면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앞에 나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엄마 앞에서 당당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

그 당시 글 쓰는 건 뒷전이었다. 글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뒤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기든, 아나운싱이든 말을 하고 표현하는 건 누군가가 봐주는 것인데, 글은 그렇지 못하다고 어리석은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서 에이급은 아니더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글쓰기를 해서 수십여 개의 상장을 받아 대학을 갔던 것처럼. 열심히 아나운싱 연습을 해서 커리어를 쌓고,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어떠한 타이틀로, 티브이에 나오는 모습으로, 돈은 적게 벌더라도 힘들더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엄마의 어깨를 올려주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늘 나를 걱정했다. 지방 방송국이든 어디든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거기에 상처 받을 네가 걱정이 된다면서. 엄마는 내가 받을 상처들에 걱정하고 있었다.

“열심히 했고, 후회는 없다. 계속 쓸 것이다”

열심히 해서 경제 방송사 투입 직전까지 갔고 경제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한 달 만에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 거기에 있었다면 지금 많은 돈을 벌면서 잘 다녔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나는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양심적인 언론인이고 싶었다. 민감한 문제라 이하 생략하겠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몇 가지 없다. 그중에 제일 잘하는 게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말하는 법을,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법을 친해지는 법을 알아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의심을 계속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알게 됐다. 지금 글 쓰는 일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란 걸. 지금까지 시를 쓰고, 대외활동을 하고, 일기를 쓰고, 다이어리를 쓰고, 리포트를 쓰고, 내 생각을 풀어내는 것 모든 일들에서 글을 등한시한 적이 없었단 걸. 글과 함께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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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리뷰 대본을 쓰며 일면식도 없는 모델들에게 일상을 묻고, 먼저 손을 내밀며 안부를 묻는 게 가끔 어색할 때도 있다. 촬영장을 세팅하고 잡무를 하고 무대 뒤에 서 있는 게 더 이상 억울하다던지, 빛나지 않아서 슬픈 적은 없다. 작가로서 에디터로써 이런 일들이 싫지 않고 재밌다. 아마 하늘에서 엄마도 이 모습을 보면 좋아할 것이다. 다만 욕심이 나는 것이 있다면 언젠간 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 그때는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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