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남긴 '집의 숨은그림 찾기'

텅 빈집,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by 최물결
“대출금, 이자, 관리비, 집 명의 등기...”

엄마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침묵 속에서 아빠와 나는 뜬 눈으로 매일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입출금 내역이나 기록 등을 하나하나 찾아서 맞추는 일.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아빠는 펜으로 하나하나 종이에 카드내역을 적어 내려갔다. 퇴근 때 아빠의 오래된 돋보기 사이 너머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오래전, 그러니까 2005년도지. 엄마가 막내 이모네 집 가세가 기울었을 때, 그러니까 빚더미에 앉았을 때, 집 명의를 변경해줬다고 한다. 이모의 말은 그렇지만 실제 등기를 떼어보니 서류에는 ‘매매’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고 법적으로 거래가 되어 엄마는 그 집을 산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 15년이란 시간 동안 엄마는 우리 모르게 그 집을 봐주고 있었다. 나는 정말 빙산의 일각만 볼 줄 아는 천진난만한 사람이었나 보다. 엄마가 왜 내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세상 물정 모르는 애라서 걱정된다고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집을 봐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단순히 명의만 바꿔준 게 아니라 커다란 책임을 가슴속에 매달아 둔 걸 알지 못했다. 관리비, 재산세 등등 집을 유지하는 비용들을 그동안 혼자 충당하고 있었다. 대출이 대출을 막고, 또 다른 카드가 막고, 악순환이 었겠지. 그래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해도 돌고 돌아 아빠가 참 많이 복잡했다고 한다. 엄마는 정말 명의만 바꿔준 것일까. 최소한 내가 아는 엄마라면, 그 집을 내가 잠시 가지고 있겠다고 말하며 매매라는 명목 하에 이모에게 돈을 줬으면 줬을 사람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엄마에게 집이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한다”

항상 편하게 살고 싶다던 엄마의 말을 되뇐다. 어렸을 때 그림도 싶었고, 피아노도 치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 때문에 못했다고. 학업을 포기 못했던 엄마는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사이버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었다. 엄마는 늘 쉬고 싶다고 말했다. 회사에서도 일만 하는데 집에 오면 일이 쌓여있어서, 네가 빨래도 좀 하고 설거지도 좀 하자. 엄마가 떠난 곳 그곳에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승에서 너무 열심히 발에 땀이 나도록 일했으니까 위에서는 꼭 쉴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다.

“남겨진 사람들은 진실을 알 수 없어...”

이모는 끝까지 그 집이 본인의 집이며 엄마와 돈거래 관련해서는 단 하나도 모른다고 했다. 실제 매매를 하지 않았는데 ‘매매’라는 기록이 버젓이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억울하고 분해 당시 법무사를 수소문해 찾아갔지만 5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다. 우리 아빠는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빚이어도 좋으니, 도와달라고 해도 좋으니 이모의 입에서 ‘진실’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이모는 침묵했다.

나는 화가 났다. 무엇보다 화가난 부분은, 우리 엄마의 목숨 값을 아무렇게나 말하는 거 같아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많은데, 눈만 떠도 이자가 나가는데 엄마가 품어줬던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던 돈, 보험금으로 메우면 되지 않냐는 말이 난 가짢았다. 당신의 자식들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식의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십여 년 후에 자신의 집이라는 이름표를 달기 위해 갑자기 관리비를 내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묻고 싶다. 왜 그렇게 착해서 사람들을 도와줬냐고. 왜 말 안했냐고 당장이라도 소리치고 싶었지만 울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곳에선 좋은 것만 보고 편히 쉬라고 했으니까. 최소한 자신의 집이면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했을 때 화를 내는 게 맞다. 그런데 본인들이 갚는단다. 갚을 수 있는 능력도 안되면서. 그렇게 얻게 된 집에서 당신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사촌들에게, 네가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아빠는 아이들이 상처 받을까, 걱정할까, 내게 말을 못 하게 막았다. 나는 크게 역정을 내며 말했다.

“걔네 이제 성인이야. 알 거 알아야지, 나 더 이상 안 참을 거야”

"이 전쟁은 언제 끝날까"

보험이 정리되고, 현재 할머니 명의로 된 집도 정리되면 서서히 정리되겠지. 우리 집은 이런 일이 안 일어날 줄 알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모와 제일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다. 진실하지 않은 관계 앞에서 그동안 믿었다고 느꼈던 것들이 다 신기루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퇴근 후 조용히 저녁을 먹고, 보험에 대해 공부하고, 집 이야기, 이모 이야기를 이따금씩 할 뿐이다. 다시 내가 살던 동네로 가게 되면 아빠랑 이사를 가서 조용히 살 계획을,하나씩, 이따금 이야기해본다. 작은 소파도 살 것이고, 같이 걷던 길목으로 산책도 같이 갈 거다. 내가 초등학교 때 지내던 동네로 다시가 친구들도 다시 한 명 두 명 만나야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다시 채워가야지. 집에 대한 상처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을 때까지 더 행복한 날들로 가득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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