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아주 많이, 과분한, 보험들이열다섯개 있다

[엄마가 남기고 간 것들을 정리하며]

by 최물결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나가 벌써 몇 달째지’ ‘보험이 참 많은데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어’ ‘암보험 이렇게 많이 들어 놓으면 뭐해. 사람이 암에 걸렸는데....’

아빠가 입에 닳도록 하는 말이었다. 엄마의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보험 가입해 두면 다 보장받을 때가 올 거야. 사람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니까. 그 한 치 앞이 지금이 되어있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아빠와 나는 그동안 엄마가 세팅해준 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온전히 그 부담금은 엄마가 가지고 있었고... 한 달 생활비에 비해 보험료가 정말 많이 나갔다. 그동안 얼마 나가는지 알 수 없었던 돈의 경로를 알게 되면서 매일 사 먹는 아메리카노, 빵 하나 값이 몹시나 아까웠다. 그동안 눈 뜬 채 바보로 산 것 같았다. 아니 나는 바보였다. 지금이라도 직접 내가 가입된 보험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컨설턴트 하시는 분들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주변을 통해 알음알음 알게 된 분들을 통하여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내 보험이 열다섯 개라는 것. 지금까지 반을 납입했고, 앞으로 살면서 반을 더 납입하면 될 것이라는 것. 그중에는 갱신형, 비 갱신형, 변액, 연금형 종류도 아주 많다는 걸... 그리고 그게 뭔지 개념부터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그렇게 보험에 대해 가슴으로 배워갔다. 내겐 그게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컨설턴트가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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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봐요. 보험이 15개 있는 사람. 이 금액 낼정도면 음.... 한 달 생활비, 1000만 원 쓰셔야 가입하실 수 있어요.’

‘내 MOM 같은 어린이 보험을 서른 살에 드셨네요. 딱 마지노선에 가입하셨네. 근데 이제 어린이 아니잖아요. 어른이잖아요.’

어른이라는 말이 심장을 콕 찔렀다. 그리고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은편에 앉아 보험을 설명해 주러 온 또 다른 분은 ‘어머니가 딸을 엄청 생각하셨나 봐요’라고 말했다. 일하고 있는 현직 사람들보다도 많은 보험을 든 내가 신기한지 설명을 해주는 컨설턴트 분과 또 다른 지점장분의 입이 분주했다. 가볍게 상담만 들으려고 했는데 열심히 설명을 들으며 보험의 장, 단점을 비교해 보았다. 결국 선택은 당사자인 내가 하는 것이니까. 이제 엄마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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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어른일까. 보험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건 이런 이유 때문에 들었구나. 이 보험은 액수는 적지만 간병, 입원 같은 소소한 것들이 잘 돼 있구나. 컨설턴트 해주시는 분은 ‘아마’라는 말을 넣어 얘기해주었다. ‘아마 어머니가 이 거 생각하셔서 가입하신 걸 거예요.’ 자꾸 엄마의 마음이 생각이 나서 보험을 공부하는 내내, 집에 오는 내내 지하철에서 마음으로 울었다. 울컥하고 나오려는 눈물을 겨우 넣으며 담금질했다.

보통 보험은 소득의 7~10%만 하는 것이 기본적이라고 하는데, 그 이상을 했으니 매일 돈에 시달렸을 거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 보험을 담보로 생활비 대출을 받은 내역을 알게 됐다. 아빠가 대출금을 갚아줬지만 난 전혀 엄마가 밉지가 않았다. 그냥 이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근데 왜 말 안 했을까. 그냥 말 하지. 몇 주동안 보험 공부를 하며 유지, 해지, 감액완납 등 결정을 지으며 엄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엄마도 지금 컨설턴트님처럼 주위에 도움을 주며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섰을까. 통장을 확인하며 엄마가 내 이름으로 만들어둔 주택청약 통장을 발견했다. 연금형 보험도. 상담사는 내게 엄마는 어쩌면 보험으로 내 캐시플로우를 짜 놓으신 거라고 이걸 잘 활용해서 내 인생을 운용하라고 조언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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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엄마가 보고 싶었다. 언젠가 병실에 있을 때 내 통장으로 돈을 입금하면서 연금형 보험 잘 활용하라고, 돈 모으는 재미가 있을 거라고 했던 엄마다. 엄마가 한평생 하던 업을 공부하며 엄마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니,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 보험을 가입했을지를 생각해본다. 이제 맞는 옷을 입듯이 내 돈은 내가 관리해야 한다. 이제 누군가한테 기댈 나이고 아니거니와 난 한낮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과감히 해약과 유지라는 글자 사이에서 하나를 가감 없이 선택했다. 5월이 되면 아빠와 건강검진을 받고 나서 모조리 보험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이제 조금씩 돈을 모을 것이다. 엄마가 날 위해 조금씩 가입했던 보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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