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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16. 2021

‘엄마는 강아지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

주변 것들을소중하게 여겼던 엄마의꽃잎 같은마음들

‘딸기 좀 바꿔줘 봐’ 그날도 병실에서 엄마는 딸기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엄마의 머릿속에 떠오른 딸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엄마는 딸기라는 이름을 지으면 저절로 미소를 지었다. 본인도 아프면서 딸기 어떻게 하냐고 딸기 ‘심장비대증’을 걱정했었다. 그렇다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은 스트로우베리, 딸기다. 빨갛게 영근 딸기처럼 예쁜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하지만 세월 앞에서는 귀여웠던 강아지도 빗겨나가지 못했다. 보통 몰티즈라는 견종이 많이 겪는 고질병은 심장비대증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팠던 그 무렵, 엄마의 항암이 시작되던 그 무렵 딸기도 선택의 순간 앞에 놓였다. 평생 약을 먹이면 숨 쉬는 게 훨씬 편해지지만 신장이나 콩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한 달마다 피검사가 필요하고 4개월마다 정밀검사를 해야 한단다. 처음에는 아픈 엄마에게 딸기의 상황을 얘기 안 하려고 했지만 엄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했다. 


엄마는 몹시나 반려견 딸기를 걱정했다. 나는 한번 약을 먹이면 죽을 때까지 먹여야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기는 아지만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질만한 깜냥은 안 된다는 생각이었을까. 제일 문제는 한번 약을 먹다가 끊으면 물이 공급되다가 단수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엄청 힘겨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그날도 생각해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터벅터벅 집에 왔다. 회사 일을 마치고 오는 길이 항상 무거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갈팡질팡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다. 

집에 오자 아빠는 엄마가 딸기랑 통화했다며 자랑을 한가득 늘어놓기 시작한다.

‘엄마가 말하니까 딸기가 사람처럼 가만히 집중해서 듣고 있어’ 

‘엄마 목소리인 줄 아나 봐’ 

나는 무뚝뚝한 말투로 ‘그럼 딸기가 엄마를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라고 대답했다. 유기견이었던 딸기를 데려왔을 때 아빠와 크게 냉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강아지는 절대 안 된다고 방에서만 키우라고 해서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왔는데, 엄마는 딸기를 보며 귀여운 아이라며 간식도 주고 안아주고, 매일 외출하기 전, 집에 돌아와서 딸기의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했다. 난소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엄마는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딸기를 향해 인사했다. ‘금방 돌아올게 잘 놀고 있어 딸기야’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가끔 딸기에게 물어본다.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날 우리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럴 때면 한 번씩 강아지도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딸기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 엄마의 머릿속에 딸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평생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가 유기견을 생각 없이 데려왔을 때는 철이 없었다. 그냥 키우면 되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오래 키우면 가족이 되고, 내 심장이 되고 내 일부분이 된다는 사실을 누군가를 알아가고, 함께 하면서 알아가게 되었다. 

딸기의 심장비대증, 남은 여생을 위해 매일, 아니 죽을 때까지 약을 먹일 것이라고 결심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매일 딸기의 안부를 물었다. 본인이 아팠을 때도 어서 집에 가서 강아지를 보라고 했으니까. 지키기 위해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매일매일 똑같은 시간, 같은 약, 어떻게 하면 밥을 주고 약을 먹을까를 생각하고, 빼먹지 않으려 조금은 일찍 일어난다. 귀찮아도 먹여야 되고, 안 먹어도 폐에 물이 찬 것이 조금은 나아져야 되니 또 약을 먹인다. 책임져야 하는 반려견, 엄마가 사랑했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조금은 더 강해지려고 한다. 약을 먹고 하루를 견뎌내는 것, 그것만으로 오늘도 잘했다고 녀석에게 칭찬해주며 보드라운 털에 얼굴을 묻고 잔다. 가위에 눌렀을 때 엄마가 손을 잡아 준 것처럼 녀석에게서 엄마의 온기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글에도 ‘롤린 같은 역주행 시절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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