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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pr 29. 2021

부장님에게도 부장님이 있었을까를 생각한다.

나도 내가 처음이라서 그래

촬영이 이틀 남았다. 내 마음은 초조하다. 그동안은 자료를 찾고 모델들에게 연락을 하고 촬영장을 서포트를 했다면 촬영장을 진두지휘하는 디렉팅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나도 디렉팅을 제대로 하는 게 처음이기에 낯설고 무섭다. 아니, 사실 이렇게 하는 게 정답인가, 맞는 것인가 싶다. 대학생 때 도전수퍼모델 코리아가 너무 재밌어서 시즌별로 보면서 ‘세상엔 다양한 표정과 포즈가 많구나’ 사진 한 장을 위해서는 작가도 중요하지만 디렉터도 참 큰 역량을 펼치는 구나를 느꼈었는데. 그 역할을 내가 한다니. 제품을 강조하면서도 모델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촬영장의 분위기며 느낌, 좋은 컷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내는 감독의 역할, 그 권한을 부장님께서 내게 주신 셈이다. 콘셉트를 정해 사진을 찍게 됐는데 과연 잘 연출이 될지 감독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서 최상의 화보 같은 결과물이 나올지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는 부장님이 안 계시면 제멋대로다. 길이 여러 갈래 있다면 좀 더 쉽고 대충 빠르게 가려고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여자 직원들은 그의 꼼수를 싫어하는 편이다. 내 입장에선 이젠 그냥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다. 세상엔 여러 사람의 부류가 있는데 그냥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팀은 인원은 적지만 각기 다른 색깔의 사람들로 엮여있다. 자기주장이 확고한 사람,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는 사람, 꼭 내 입장을 다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저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 등등 성격과 생김새가 다르듯이 일 하는 스타일도 모습도 다른 것이다. 


"짊어져야 될 마음의 무게, 자리의 중압감"

사실 답안지는 정해져 있었다. 내가 잘 모르는 부분, 잘 못할 것 같은 부분은 부장님께서 80%~90%는 다 해주셨다. 고민하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깔끔하고 명료하게 엑셀 파일 한 장에 정리해 놓으신 것이다. 나는 그 정리에 해당되는 래퍼런스 컷들만 찾으면 됐던 것인데, 그게 뭐가 힘들다고, 디테일한 부분들 찾는 게 정말 힘들었다. 부장님이 걸어오신 길에 비해서 이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투정에 불과할 것이다. 부장님께서는 내게 잘하자고 말했다. 잘하자의 반대말은 못하는 건데 ‘내가 많이 못하는가? 부족한가? ’라는 생각에 현타가 밀려왔다. 글로 먹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디렉팅 업무까지 하게 되다니가 아니다. 디렉팅을 해보고는 싶었지만 많이 두려웠다.  ‘커뮤니케이션’은 나름 잘한다고 자부해왔는데 내가 중심을 잃으면 어떻게 하지부터 끊임없는 물음표 속에 책임감이 파도처럼 떠밀려 내 머리를 흔들었다.

 마치 처음 엄마를 잃었을 때 내가 가장이 된 듯한 느낌, 없었던 타이틀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중압감이 가슴팍에서 쭉 밀려왔다.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참았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힘든 걸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부장님께 카톡으로 조용히 말씀드렸다. ‘저 사실 힘들다고...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부족한 거 안다고...잘하자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고...’

이러는 것조차 투정이겠지 싶었다. 지금까지 부장님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많은 브랜드 업무들을 몸으로 부딪히며 얻게 된 노하우와 짬들, 직접 하나하나 실행해 보면서 알게 된 마케팅, 브랜딩 지식들, 항상 why라고 질문하는 자세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에게 부장님은 계셨을까. 혼자 이 모든 걸 다 하셨다면 힘들지 않으셨을까. 부장님도 나처럼 중압감을 가지고 처음 무언가를 맡은 적이 있으셨을까. 나는 부장님 같은 분이 없었다면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을까. 아마 못 다녔을 것이다. 



"무언가를 오래도록 연구하고 시도한 그를 존경한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부장님은 이 회사를 오래 다니셨고, 따로 팀이 있지 않아 이것저것 시도했고,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했다. 웬만한 디자인은 피피티로 할 수 있었고, 영상편집도 간단한 건 할 줄 아신다. 그야말로 마케팅 멀티 맥가이버 수준인 셈이다. 항상 존경해왔지만 다음번엔 물어보고 싶다. 

부장님께도 부장님이 있었냐고. 부장님도 부장님이 처음이라서 힘들 텐데, 괜한 투정을 부렸었나 싶었다. 부장님이 살아온 시간과 경력에 비하면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분량을 하고 괜히 힘들다고 툴툴되는 것만 같아서 괜히 내가 미워졌다. 나는 나를 못 믿고 있었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보다는, 안 되면 어쩌지, 감독님이랑 소통이 안돼서 촬영이 제대로 안 되면 어쩌지. 잘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었다는 부정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부장님의 무게를 이해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진 듯하다. 실수해도 괜찮아, 그렇지만 겪으면서 배워 나갈 수 있어야 해.  더 잘해야겠다,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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