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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ul 26. 2021

사무치는 사람'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임종 호흡을들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사무치다는 단어가 떠오른다. 도대체 왜 이 단어가 떠오르는 것일까. ‘사무치다’는 사전적인 의미로 깊이 스며들거나 멀리까지 미치다는 뜻이다.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지만 밉기도 했던 사람 안타깝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는 여러 생각이 교차되는 사람. 그래서 잊을 수는 없는 사람이다. 내게 또 다른 엄마이기도 한 사람이니까.


 엄마가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는 모습과 매 끼니를 찾는 할머니를 보며 무척이나 미워했었다. 아니 미웠었다. 아빠는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해서 약을 먹고 겨우 잠을 잤고, 우리 두 모녀는 말이 없었지만 매일 밤 서로 각자의 방에서 울었다. 

이모가 할머니를 데려가면서 집 근처 노인 요양원으로 보내 그곳에서 지내시게 됐는데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일 걱정했었다. 코로나라 면회도 할 수 없었으며 이모네가 겨우 면회를 할라 하면 문 하나를 두고 얼굴 한번 볼 수 있었단다. 투명 창문 하나로 보이는 얼굴을 보며 본인을 왜 두고 가는지 한참 동안 얼굴을 쳐다보며 할머니는 엉엉 울었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일을 보는데 아빠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아니면 할머니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의사가 오늘이 마지막 할머니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가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했다. 무척이나 고민을 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급히 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갔다. 코로나 때문에 15분 정도 기다렸다가 간이 검사를 받고 겨우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내가 가는 동안 조금만 더 기다려줘 할머니’라고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읊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니 아직 하지 못한 말들도 수두룩 했다. 병실로 들어섰을 때 할머니는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심장박동수의 움직임 차가운 손 보랏빛으로 퉁퉁 부어있는 할머니의 팔과 다리...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을까.

할머니의 청각이 내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귀에다가 되고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평소에도 그랬다. 내가 할머니를 만져주면 아팠던 머리도 이상하게 싹 낫는 거 같다나. 할머니의 몸을 한 번씩 쓰다듬고 만져줬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내게 주어진 시간은 30분밖에 없었다. 코로나라 그렇게밖에 안된단다. 무척이나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할머니에겐 그게 임종 호흡이었고 그날 저녁 8시가 넘어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이 시작되고서 알았다. 다시 요양원에 입소시키기 위해 백신을 맞고서 부작용이 왔다는 사실을. 의사는 그저 기저질환 때문에 그랬다고 말했단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건소에 신고는 했다지만 이미 지나간 생명을 다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천지다. 엄마도 의료사고로 돌아가셨는데, 할머니도 똑같다. 애초에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주사를 놓는 것도. 그걸 안 이모도, 심혈관 질환이 있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다시 모시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늘을 보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라면 달랐을 것이다. 아마 제 몸이 아파도 할머니를 데려와서 직접 모신다고 했겠지.


엄마에 대한 상처가 채 지워지기도 전에 할머니의 부고를 맞이했다. 이번에 나는 많이 울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마음에 사무쳤다. 그리고 또 벌어질 재산에 분할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누가 얼마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오고 가는 것을 보며 조용히 맥주를 들이켰다. 


‘넌 참 어른스럽구나’ 잘 울지 않는 나를 보며 어른들이 하는 말이다.  울지 않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혼자 있을 때 가슴이 타들어갈 때 울고 또 운다. 커가면서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던히 더 노력했다. 누군가가 날 우습게 보는 것도 싫었을 뿐 아니라 슬프다고 엉엉 울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더라. 

집 한 채가 남았다. 정확히는 내가 사는 집이다. 할머니가 무던히도 아끼던 집. 그 집에서 우린 살았고, 이 집은 우리 엄마의 피, 눈물 땀으로 일궈낸 흔적이자 공간이다. 그런데 곧 매각이 된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준비 중이다. 그러므로 나는 또 남아있는 아빠와 어떻게든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행복하고 싶다. 예전에는 특별해지고 싶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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