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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Dec 15. 2021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내 글이 제일 멋있어 그럼 된거야

비문 주술 호응 그런 거 몰라요.

근 2개월 동안 머리에서 게슈탈트 붕괴 현상처럼 내가 누군지 내 글의 정체성이 뭔지 모를 두려움에 시달렸다. 고객사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행사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원하는 글을 맞춰 쓸 수밖에 없게 된다.

내게는 조금 높은 연봉과 커리어가 필요했다. 굳이 연봉과 커리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연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겐 부양해야 할 가족이 두 명이나 있기 때문이다. 어디든 내가 갈 수 있는 곳만 있다면. 그동안 써온 글로 하여금 하루하루 근근 히라도 먹고 살 수만 있다면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로 밥벌이가 될 수 있다면 이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대본은 고객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평을 받았다. 아직도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대본은 나 혼자 쓰는 게 아니었으므로. 

  항상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쓰면 윗선 그러니까 과장님께서는 조금 더 엄. 금. 진(엄하면서, 근엄, 진지)한 톤으로 글을 바꿔 놓으셨다. 모두가 함께 쓴 대본이고 결과물이었다. 입사한 지 두 달 밖에 안 된 나로서는 당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매우 힘이 들었다. 힘이 들 때면 엄마가 나를 배에 품은 채 근 여섯 달을 꼬박 출퇴근하던 때를 생각하며 꾹꾹 참았다. 대행사는 철저히 을이었고, 고객사의 요구를 맞춰줘야 했지만 이것 역시 견뎌야 할 과정 이리라 생각하며, 파워 긍정의 힘으로 견디곤 했다. 


과장은 내가 힘들어 보여 조금 쉬운 브랜드로 나를 보내 준다는 말과 함께 옅게 웃었다. 이건 나를 위하는 척일까 정말 나를 위하는 것일까. 지금 와서 나는 그를 욕하고 싶지도, 원망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냥 궁금하다. 나는 곧 다른 브랜드 팀으로 보내졌다. 보도자료와 원고 윤문을 조금씩 하며 서포트하는 자리. 내게도 온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지겠지를 생각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일이 주어지기 전 몇 가지 관문들이 있었다. 내게 글을 써보게 하는 것. 부장님은 내 문장에는 비문이 많다고 했다. 부장은 빨간펜 선생님처럼 문장 하나하나 주어, 술어, 호응이 안된다는 부호를 체크했다. 곧 내용이 너무 많아 힘들다며 알아서 보고 수정을 하라고 했다. 

첫날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부족함을 인정했고 고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점심시간, 끼니를 거른 채 비문 관련 문장 책을 두권이나 사서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게슐탈트 붕괴 현상이 일어나듯 머릿속에 파편들이 으스러져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내가 과연 보도, 기획 기사를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말이다. 

나는 끌어안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에 대한 대답을 직접 듣고 싶어 현직 기자, 글쓰기 전문의에게 묻기도 했다. 그들은 내 윗사람들도 비문이 많은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뭔가 내가 팀 일원으로 들어갔을 때 실수가 없도록 초석을 다지는 일 같다고 말했다. 


딱딱한 글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나는 내 글이 쓰고 싶었다. 내가 기획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글. 나는 사실 주어 술어 호응이 뭔지 디테일하게 알지 못한다. 어떤 게 들어가야 감칠맛 나는 글인지도 잘 모른다. 그저 펜이 가는 대로 가슴이 시키는 데로 내가 느끼는 감각대로 쓴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처음부터 끝까지 아나운서가 내레이션을 하듯이 쭉 읽어본다. 거기서 비문을 찾는다. 그 소리의 결이 올곧으면 된 것이고, 아니면 문장을 다시 가다듬어 본다. 

스트레스, 맞지 않는 글에 대한 도피라고 해도 좋다. 부서 이동 후, 왜 내가 이동했으며 보도자료에도 맞지 않는 것인지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몇 날 며칠 노력을 했는지도 회사는 몰랐다. 회사라는 곳은 냉정하니까. 

잘하는 걸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최근 큰 인기를 끌며 종영한 스우파 그중 라치카 멤버 가비의 유쾌한 멘트가 떠올랐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우리가 제일 잘했고, 그럼 된 거야"

우리가 최고고 잘했다는 말. 나는 왜 저 말을 듣고 힘이 나는지. 저런 슈퍼 파워 긍정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는지. 한 동안은 한 단어 한 단어, 문장을 엮는 것도 다 까먹은 채로 내 글톤을 애써 바꾸려고 애써왔다. 그럴수록 내 글의 표정은 사라져 갔다. 그리고 몸통 잘린 벌레마냥 나 자신이 어그러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감정들을 풀어놓기 위해 브런치를 쓴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문법이 맞는지. 글과 주제, 심상이 어울리는 건지 그래 다른 건 잘 모르겠다. 

펜을 든 이상 내가 느낀 감정이 맞다고 느낀다. 그래서 오늘 나는 외쳐본다. 

"누가 뭐래도 내 글이 제일 멋있고 잘 썼어! 그럼 된 거야! 비문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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