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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Dec 14. 2021

김치부자

겨울김치는 맛있다

김장철인지도 모른 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는게 바빠, 회사 다니는 것이 버거워 아침, 저녁은 패스한지 오래였고, 사놓은 일회용 국이나 햇반이 다 떨어질 때면 그러려니 편의점에서 한끼 떼우기 용으로 적당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를 사다 먹었다. 덕분에 우리집 전자레인지 안에서는 알 수 없는 기름 냄새새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 나는 편의점 달인이 되어 있었다. 자취를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아빠와 둘이 사는 건데, 편의점에 마다(GS,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CU) 이를테면 어디 편의점에 어떤 도시락이 맛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집밥이란 걸 잊고 산지 오래였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게 해줬던 음식은 김치볶음밥과 된장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정도면 직장 다니는 것 치고 잘 하는 거야" 가끔 음식을 타박하는 내게 엄마가 내게 하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집밥 아니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난 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쫓기듯 재산분할이 이루어졌고 원래 살던 집으로 이사왔다. 아빠는 편의점 도시락이 맛있다고 했다. 엄마의 7첩 밥상이었나. 집밥 식으로 나온 다양한 반찬들이 있었는데 아빠는 원래 속도보다 좀 더 힘을 주어 밥숟가를 뜨곤했다. 할머니의 부고가 3개월 지나갈 무렵 우리는 원래 집으로 이사왔다. 고향에 온 듯한 느낌과 동시에 어색한 느낌이 감돌 무렵, 동네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D가 무심하게 내게 우리집 주소를 물어봤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알게 되서 지금까지 쭉 연락하는 슈퍼집 딸이다. 스무살 후반 내가 가까운 도심지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지만 종종 연락을 해왔다. 얼마전 결혼을 했는데, 야무지고 당차 살림도 잘하고 자신이 하는일에 대해 확고한 친구라 난 그 친구가 늘 부러웠다. 

 D가 집 앞에 무심히 놓고 간 것은 직접 담근 김치였다. 김치 속에 참기름과 밥을 함께 비벼먹으면 밥 한공기 뚝딱이라는 꿀팁을 카톡으로 알려주며 말이다. 웃음이 났다. 

김치와 함께 친구 D가 남긴 메모

부모님 가게일을 도와주느라 나머지 회포는 다음에 풀자는 말을 남기며 무심히 인증샷 한장을 보내온 그녀. 나도 그 날은 일 때문에 바빴는지라 아빠에게 김치통을 냉장실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었다. 냉장고를 열자 그녀가 직접담근 배추 김치와 파김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D의 짤막한 메모가 보였는데, 그걸 보는 순간 눈물 스위치가 왈칵 하고 켜졌다.

파김치 and 동그라미는 김치 속만 따로 둔 그녀의 배려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았어도 내가 인스턴트밥을 챙겨 먹는다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을 잘 거른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김치에 밥을 한숟가락이라도 먹었으면 하는 D의 마음에 마음이 시큰해졌다. 아마도 D는 내게 김치를 맛보라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밥을 먹으라고 말해주는 것이겠지. 아니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남편이 출근하고 바쁘지 않은 어느 평일날에 나를 집에 초대하겠다고 했던 그녀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D에게 엄마가 해준 집밥이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김장철이 다가 오자 친구들이 김치 릴레이를 선보이듯 내게 김치를 주겠다고 난리다. 아래 지역은 따뜻해서 김장을 늦게하니 꼭 가져가라는 아는 언니의 시어머니표 김치도 예약 중이다. 말 만으로도 마음 속에 곳간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시중에 파는 김치와 직접 담근 김치는 맛부터 차이가 난다. 그리고 시간(유통기한)을 재며 먹을 필요가 없다. 쫓기며 먹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땅부자, 주식부자 안부럽다. 나는 김치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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