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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Aug 15. 2021

아주 특별한 오리

다시 쓰는 안데르센 동화 (부제:오리 날다)

 

  동생이 없어 혼자 노는 게 편한 수아의 집에는 인형이 가득해요. 소파 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인형들이 가득 놓여있죠. 슈퍼토끼, 곰돌이, 고양이, 병아리 인형 등등... 엄마 아빠 모두 일하러 나간 날 심심한 수아는 혼잣말을 하곤 해요. 일인이역 삼역까지 토끼가 되었다 곰돌이가 되었다 고양이가 되었다가 시시각각 변하죠. 수아가 제일 잘하는 건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리고 들은 것을 토대로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해요. 

  “엄마 오늘은 까치가 까치까치 하고 울었어요. 멀리서부터 베란다 앞 까지 온 것 같은데 까치가 왔다 간 다음에 엄마가 왔지 뭐예요. 크크 아마 엄마가 오는 걸 알려주려고 왔나 봐요”

수아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잔뜩 늘어놓다가 크크크 하고 웃었어요. 

수아는 사실 남들보다 더 소리를 잘 들어요. 수아가 태어났을 때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수아의 엄마는 망연자실 해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밝게 자라 주는 수아는 더 이상 엄마의 아픈 손가락이 아닌 자랑스러운 존재로 변해갔어요. 엄마는 저녁마다 수아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남들과 다르지만 특별하단 걸 매번 이야기해줬어요. 그만큼 수아는 특별했으니까요. 작은 소리를 좀 더 잘 듣고 손끝으로 잘 느꼈으니까요. 말이 느리진 않을까 친구와 싸우진 않을까 엄마의 걱정과 다르게 수아는 예쁘게 자라줬어요.    

그러던 어느 한적한 오후, 수아네 가족이 외할머니댁에 방문했어요. 그동안 서울 근교에서 지방 시골마을까지 승용차로 세네시 간이 넘는 거리라 자주 방문하지 못한 이유가 컸어요. 그래서 오늘 외할머니댁에 가는 건 수아에게 기대와 설렘이 더 컸어요. 경험해 보지 못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수아에게 즐거운 일이거든요. 그런데 그 일로 인해 엄마와 크게 싸울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수아네 외할머니는 양계장을 크게 하시거든요. 원래는 병아리와 닭들이 많았지만 이번에 오리도 들여오게 되면서 오리농장 사업까지 확장하게 되었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수아는 이곳에 온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병아리가 삐비 비 거리면서 종종걸음으로 수아를 따라온 적이 있었어요. 어린 아기였던 수아는 그게 무섭지도 않은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보송보송한 털을 쓸어 넘기며 병아리들과 놀아주었어요. 병아리가 뾰족한 부리로 쪼는 게 아팠을 만도 한데 말이죠. 그런데 오늘은 병아리가 아니라 오리농장이네요.

오리농장 속 파도의 일몰이 지나가듯  꽥꽥 소리가 한참 농장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할머니가 오리 중 한 마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찼어요.

“쟤네끼리도 서열이 있나 보더라. 저기 저 제일 마르고 색깔이 다른 오리만 유독 못살게 굴더라. 얼마 못 살 거 같더구먼 아직까지 잘 지내고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

수아가 화들짝 놀라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오리들끼리 싸우는 건 분명한데 아기오리가 우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거든요. 수아는 아기오리가 불쌍했어요. 왜 작고 힘없는 오리를 괴롭히는지 수아는 다른 오리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꽥꽥 거리며 괴롭히는 오리 소리 너머로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를 수아는 분명히 두 귀로 들은 것 같았어요. 끽끽 거리는 소리가 마치 ‘도와줘 수아야’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수아는 할머니와 엄마에게 달려가 말했어요. 정확히는 엄마의 치마 끝자락을 붙들면서 말했어요. 의젓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수아가 엄마에게 처음 떼를 쓰는 날이었어요.

  “엄마 저 오리 우리가 데려와 키워요. 내가 잘해줄게요” 

  “수아야 오리는 집에서 키울 수 없어. 엄마가 다른 예쁜 애로 사줄게. 쟤는 너무 시끄러워”

 수아의 엄마는 무언가를 키우는 거라면 딱 질색인 데다가 수아가 고른 힘없고 색도 고르지 못한 오리를 보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절었어요. 얼마 살지도 못할 것 같은 오리를 데리고 와서 어디에 두어서 어떻게 키울 것인지 똥, 오줌은 어떻게 치워야 하는지 현실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엄마 쟤는 시끄러운 게 아니라 우는 거예요. 내가 똑똑히 들었어요”

그러나 엄마의 말은 단호했어요. 처음에는 다른 튼튼한 오리를 데려 오려고 했지만 수아가 본인이 고른 오리만 데려오려고 해서 엄마는 말을 바꿨어요.

  “안돼. 우리 집에서는 애완동물은 키울 수가 없어요.”

  “민지네도 강아지 키우는데. 서연이네는 햄스터 세 마리나 키우고요. 근데 왜 오리는 안돼요?”

수아가 반문을 하자 엄마는 할 말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완강하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어요. 

“수아 엄마 말 잘 들어야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저런 약한 오리는 데리고 오면 금방 죽을 수도 있어”

 수아가 다시 한번 엄마의 말에 반문하듯이 대답했어요.

  “그래서 내가 구해주려고 하는 거예요. 잘 키울 수 있어요. 내가 저 오리를 약한 오리가 아니라 강한 오리 특별한 오리로 만들 거예요. 엄마가 맨날 그랬잖아요. 나는 특별한 거라고, 저 오리도 특별한 거예요. 약한 게 절대 아니에요. 그건 엄마 생각이에요.!”

수아는 단순히 괴롭힘 당하는 것 같은 오리가 불쌍해서 데리고 온 것은 아니었어요. 구해주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었지만 약한 오리의 모습이 꼭 예전에 자신의 모습 같기도 했거든요.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알지 못했을 때 누구나 다 세상이 보이지 않은 채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놀이터에 나간 적이 있었어요. 정글짐. 미끄럼틀, 그네, 다 소리, 손끝으로 느끼면서 움직였는데 어떤 언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 여기서 놀아야 되는데 절로 가!”

  “앞도 안 보이나 봐!”

수아는 창피했어요. 엄마는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말하라고 했는데 그날 겪은 일이 괜히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어요. 


  순간 엄마의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엄마의 눈 속에 수아가 폭 담겨 있었어요. 그냥 당당하게 엄마에게 할 말을 다 하는 수아를 엄마는 한참 동안 쳐다봤어요. 수아를 처음 가졌을 때 기억이 났어요. 약할 수도 있다. 남들보다 몸무게가 적게 일찍 태어날 수 있다. 그래도 괜찮겠냐는 말에 엄마는 괜찮다고 말했어요. 그때의 대답은 수아와 같았거든요. 

  약하면 강하게, 남들과 다르면 특별하게 키울 수 있다 자부하던 엄마인걸요. 수아가 키우고 싶은 특별한 오리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엄마는 수아에게 단호하게 화를 내려고 했던 모습이 미안하게 느껴졌어요. 엄마의 붉어진 눈을 보고 괜히 미안해진 수아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엄마는 괜찮다는 듯 다시 수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했어요. 

  “우리 그럼 이 오리 수아 동생으로 키울까? 아주 특별한 동생인 거야”     


수아에게 동생이 생겼어요. 세네 시간을 왕복해 서울로 상경한 서울 오리 이름은 수정이에요. 예전처럼 오리 무리들에게 미움을 받을 일도 없어요. 수정이는 약하게 태어난 게 아니에요. 사실은 제일 강한 오리 인지도 몰라요.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못했을 뿐이죠. 수정이는 수아를 만난 후 털 빛깔도 더 진해졌고, 살도 더 올랐어요. 잘은 모르지만 수아는 수정이의 몸을 손으로 가늠해보며 매일 뿌듯해해요. 오리 ‘수정’ 이도 자신이 특별한 것을 아는지 아주 늠름한 포즈를 지으며 뛰어다녀요. 

  “엄마 수정이가 너무 커지는 거 같은데 계속 커져서 나보다 커지면 어떻게 해요? 이러다 진짜 날아가는 거 아니에요?”

  수아 동생 수정이가 기지개를 켜듯 날개를 활짝 폈어요. 마치 스트레칭을 하듯이 말이에요. 수아가 집에서 오리 수정이를 꺼냈어요. 지금 이 순간 부드러운 털끝의 촉감을 손으로 만지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아요. 아주 특별한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란 오리 ‘수정이’. 무리에서 약하게 태어났지만 수아를 만나 아주 튼튼하게 자라 수정이는 행복합니다. 수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습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가 더 펼쳐질까요. 수아의 동생 ‘수정’이의 머리 위 따스한 햇살이 이불처럼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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