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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Dec 28. 2021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첫회사에서 인연이 된 친구의 결혼식

  '회사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퇴사하면 연락을 안 하게 된다고. 나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2015년 첫 회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아직까지 세네 명과는 경조사를 나눌 만큼 친하니까. 그때는 기획자의 기, 짜도 몰랐는데. 팀장님께서 말하기를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가 있었는데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나. 일도 직무도 서로 하는 일도 모른 채 무작정 뛰어들었던 웹에이전시 업우였다. 생각해보면 때는 이십 대 중반이었으니 돌도 씹어 먹을 나이었다. 

  그 친구와 내가 친해진 건 같은 프로젝트를 하면서였다. 기획, 디자인 단계를 마치면 퍼블리셔가 코딩을 해줘야 잘 올라가는지 확인이 되는데 그 역할을 해주는 것이 친구 J 였다. 말수도 없는 데다가 짧은 농담을 건네어도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친구인데 보통은 말보다는 메신저를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고객사의 의도와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해서 항상 그 친구 자리에 찾아가곤 했다. 자리에 찾아가면 불편한 미소를 지으며 굳이 왜라는 뉘앙스의 표정으로 빨리빨리 처리해준다고 가라는 듯한 대답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고로 그 친구는 친한 사람 아니면 굳이 자리에 찾아와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 러. 나. 기획자는 사람을 좋아하고 함께 가야 되는 직업이 아닌가. 그때의 나는 각 프로세스들을 익히며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 때였고, 투철한 직업의식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을 때였다.


  내 첫 사수는 기획자를 타 작업자들이 우습게 보면 안 된다며 디자이너나 개발자에게 살갑게 하는 것도 못하게 했는데 나는 아니었다. 뭐든 나누고 친해져야 일도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친구와 나는 우연히 다른 퍼블리셔와 개발자들과 술자리를 몇 번 가지며 친해졌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붙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술을 마시며 회사 이야기도 하고 힘든 일,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을 나누며 가족 같은 시간이 됐다. 친해지는 것은 역시 시간에 비례한다. 그 친구의 성격상 말투, 행동은 원래가 까칠했으며 친해지고 나면 매우 좋은 아이란 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 후 흡연자는 아니지만 옥상에 따라가서 일부러 대화도 나누고 함께 술을 마신 날이면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먹으며 친목을 다졌다. 

  그 시절을 추억하노라면 야근, 술, 어묵 이렇게 세 개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언젠가 그때 친해진 몇 명에게 우린 시간이 지나고 혹은 우리 중 누군가가 결혼을 하더라도 잊지 말고 가자며 약속했었다. 그 후 J를 제외한 나머지는 각자 이직해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J도 많이 성장했다. 내년에 팀장을 단다고 한다. 나는 벌써 J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능청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드문드문 엄청 자주는 아니어도 생각에서 멀어질 법하면 우리는 연락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들은 회사가 끝난 후 기꺼이 장례식장에 와줬다. 나는 좋은 소식으로 부르지 못한 J와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런 나를  J는 위로해줬다.


  J가 결혼식을 한다. 사실 4개월 전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돌렸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이제 가게 된다고 한다. 그래도 코로나는 매한가지다. 나는 정장풍 원피스를 입고 J의 결혼식에 갔다. 축가는 J가 직접 불렀는데. 나는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술 마시고 하는 노래는 분명 노래방에서 다져온 실력일 테니 말이다. 고음까지 쭉쭉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오~! 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친다. 첫회사 멤버 중 제일 먼저 가는 J.

J 가 그간 고생한 것을 알기에 결혼식이 마치 동생 장가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동생이 없으니까)

J의 축가를 들으며 또 결혼 선언문 낭독을 들으며 '잘 살 수 있을 거야'라고 나지막이 말해줬다.

  회사에서 첫 사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다른 팀원들이 나를 꽉 잡아줘서 다닐 수 있었다. 이게 내 첫 회사 생활이다. 친구 이상의 경조사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기까지 그 장벽을 허물기 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개인적으로 첫회사, 두 번째 회사까지는 친구, 언니, 오빠들처럼 좀 더 편한 관계를 가지고 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관계란 것도 꽃을 피우는 과정과 같아 처음에는 서먹하고, 말 한마디 붙이는 것도 굳이 내가 먼저 해야 되나 싶지만 혼자 벽보고 일하는 것이 아닌 이상 다 같이 친하게 지내는 게 좋으니까.

20대 중후반, 첫 회사 첫 직장 첫 술친구들 낙엽 구르는 것에 웃는 것은 아니더라도 하늘만 보고도 까르르 웃던 때를 기억한다. 어둑해진 하늘 너머로 클라이언트의 오케이 컨펌을 기다리며 지친 그림자를 끌며 나오던 그때 말이다. 첫 직장을 함께 고생하고,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들과 친해지고 한 고개 두 고개 고비를 넘으며 지내왔던 순간들인 것 같다. 그 모퉁이 기억 속마다 내 곁에 남아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J의 결혼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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