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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Dec 30. 2021

이삿짐 정리 그리고 필름 카메라

결과를 미리 보지 못해서 기대되는 필름 카메라

  필름 카메라 네대.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필름 카메라 네대를 발견했다. 두, 세 대는 상태가 조금 안 좋고 이음새나 끝부분이 부식되어 끊어질락 말락 해 보이기도 했다. 케이스에 들어있는 올림포스 카메라가 그나마 제일 깨끗해 보였다. 필카 출사를 자주 나가는 동생이 카메라의 상태를 확인해 주었다.

  "와 이 정도면 너무 깔끔한데? 누가 쓰시던 거야?"

   카메라 외에도 후지스필름이 여러 개 있었다. 돌돌 말린 필름들은 사용한 흔적이 보이는 것도 있었고 아닌 것도 있었다. 카메라의 주인은 엄마였다. 어릴 적 엄마는 내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지금이야 백장 중 한 장 예쁜 걸 찍을 수 있을 정도로 피사체가 어떻게 나오는지 다 볼 수 있는 매개체가 많다. 스마트폰 DSRL 등, 기술이 발달해서 계속 확인해 가며 찍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필름 카메라는 다르다. 각도와 배경을 얼추 맞추어 매번 셔터 누르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똥 손인 나는 연습을 해야 겨우 찍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팔십 년대에는 엄마, 아빠가 나를 데리고 국내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었다. 사진 속 배경을 보면 (제주도, 삽시도, 강원도 등) 산과 바다로 이루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름 카메라의 매력을 필카 전문가 동생에게 들으며 내 귀가 활짝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롭게 안 사실은 '필름 유효기간'도 있다는 것. 내가 보유하고 있는 필름은 유통기한을 보니 2005년 정도에 구매한 것 같다고 한다. 찍어봐야 알겠지만 현상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이게 잘 찍힐지 아닐지도 직접 찍어봐야 알고, 기존에 들어있던 필름도 현상해 봐야 알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불확실한 것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전에 찍었던 사진이 현상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 불안했다. 다들 말하길 알 수 없는 게 필름 카메라고, 그게 이것의 매력이란다. 엄마의 손길이 촘촘하게 묻어난 필름 카메라를 한참 바라봤다. 그 안에 엄마의 성격이 그대로 보였다. 정갈하게 보관된 마음도 읽었다. 깨끗하고 올곧은 성격처럼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흠집 하나 없는 것이 엄마의 모습을 닮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제 찍을 사람 찍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괜히 먹먹했다. 엄마의 물건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필름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현상할 수 있는 희망이 그래도 있기에 카메라를 꾹 움켜쥐었다.

  나도 먼 훗날 나의 딸을 낳는 다면 이 카메라로 제일 예쁜 모습을 담아주리라 하고 생각해봤다. 찍어봐야 알 수 있는 필름 카메라처럼, 셔터를 누르고 연습하다 보면 근사한 장면 하나쯤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기다리는 순간의 감정들이 설렐 것이다. 마치 로또를 사고 일주일 동안 뭐라도 될까 치열하게 사는 것처럼. 필름 카메라를 현상하면 뭐가 나올까, 설령 흑백이라도 상관없다. 필름이 오래돼서 안 나오면 꽝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걸 담으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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