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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05. 2022

압존법은 써야만 하는가

압존법의 불편한 진실 '반말과 존댓말 사이'

  내가 다녔던 세 번째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당시 벌어졌던 압존법 사건에 대한 앙금은 없다. 워낙 솔직한 성격이라 과장과 친해진 후 '그때 왜 내게 이야기했는지' 이야기했고 서로 잘 풀었기 때문이다. 

2021년도에 이직하게 된 B회사에서 3개월쯤 지났을 적에 일이다. PD이자 직함 과장과 함께 외근을 나간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유튜브 대본 작가여서 소품 구매는 물론 장소 답사를 위해 과장과 2인 1조로 움직였다.

  외근을 나가 과장과 함께 밥을 먹을 때였다. 대뜸 과장이 '라일락 씨는...' 이라며 첫마디를 뗐다.

  "라일락 씨는 압존법을 안 쓰는 것 같아"

  "네? 압존법이요? 그거 써야 되는 거예요?"

  자동 반사 신경처럼 나온 내 말에 과장은 적잖이 당황하는 듯했다. 

  "우리 팀이야 괜찮지만 다른 팀에서 라일락 씨를 볼 때 좋게 보지 않을 거야. 음... 노파심, 걱정돼서 말해주는 거야."

  나는 삼초 정도 정적이 띠다가 먹던 김치찌개 국물을 한 입 들이켰다. 지금 2021년도인데 아직도 압존법이라는 것이 이 회사에 존재하는가. 회사에서 당연히 써야 하는 룰과 같은 것인데 나만 몰랐나. 여러 생각이 머리에서 돌던 중 과장이 말했다.

  "군대에서 압존법은 자연스러운 거라 말이지"

  군대에서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써야 되니까, 고착화된 게 아니고? 나는 속으로 '베베 꼬인 과장'이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네'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팩트체크를 하자면 압존법은 정확히 2006년에 폐지됐다. 


국립국어원은 압존법을 가족이나 사제 간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직장과 사회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직장과 사회는 가정과 달리 공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는 윗사람(과장)을 그보다 높은 사람(사장)에게 지칭하는 경우, 사장님 앞이라도 과장을 높여 ‘과장님이’라고 하고, ‘-시-’를 넣어 ‘사장님, 총무과장님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압존법이 언어문화로 정착된 곳이 있다. 바로 군대다. 그러나 국방부는 올해 3월 초부터 압존법을 완전히 폐지한다는 지침을 일선 부대에 내려 보냈다. 그 이유를 “압존법을 경직되게 사용하다 보니 신병들이 상급자의 서열을 다 파악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지경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병영 내에서

신병이 압존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선임들이 사적으로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압존법 폐지가 군대 기강을 해이하게 한다는 반대의견과 신병들을 괴롭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나는 청개구리 심보로 그 이후에도 압존법을 쓰지 않았다. 성격이 확고하기 때문에 아닌 게 보이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밥 먹으면서 그가 말한 것이 '앞으로는 사용했으면 좋겠다' '사용하라'라는 무언의 압박임을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현재 교직에 계신 고등학교 선생님께 물어봐 직장에서도 압존법을 사용하냐고 물었을까. 선생님은 코웃음을 치며 없어진 지가 언젠데 압존법을 운운하냐고 하셨다. 당시 나는 과장에게 팩트체크로 요목조목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의 입장(사실 모두가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만류)해서 넘어갈 수 있었다. 

제일 문제는 압존법을 써야 하는 회사 문화였다. 회사 오너 즉 사장님이 그렇게 사용해야 예우를 지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위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꼰대 문화라고 뒷말을 하기도 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처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오래도록 그 회사에 다녔던 사람들은 압존법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써야 하는 것이 돼 버린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다. 회사는 까라면 까라는 곳이니까. 

  나중에 나와 오해가 있었던 과장은 내게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을 부렸을 테지만, 반은 노파심, 팀원으로써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 말이리라. 직원들이 의견을 내도 바뀌지 않은 회사였기에 꼭 지켜줬으면 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압존법이 어색해도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 중 몇 명은 그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결정은 오너가 내리는 것이고, 오래된 회사일수록 문화가 바뀌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요새는 회사를 볼 때 문화도 함께 본다. '님'의 존칭을 쓰는 회사도 있고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도 있고, 직급 자체가 없는 회사도 있다. 참 다양하다는 것에 놀랬고, 아직도 압존법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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