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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수를 나는 새 Sep 05. 2021

가끔 예쁜 표지가 그리워질 때

뉴욕 책방 윈도우 쇼핑



예전에 찍었던 여행사진들을 자주 찾아보게 된다. 실은 최근 업그레이드 된 나의 아이폰 OS가 내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내어, "너 이런 사진도 찍었다. 기억나?" 하고 매일매일 위젯에다 꺼내놓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고리즘의 인도를 받아 무심코 사진을 눌러보았을 뿐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장 한 장 나타나는 건 잊고 있던 추억들이다. 어쩌다보니 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사진이 찍힌 지도까지 찾아본다. 그때 먼 나라에서 자유롭게 골목골목을 누비며 보고 느꼈던 것들. 지금은 하기 어려운 경험이라선지 더 소중하다. 왠지 이런 사진들, 그때 했던 생각들을 내 휴대폰 안에만 넣어두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애플이 고객에게서 이 정도의 감성적 반응을 기대했으려나.



192 Books 라는 책방을 발견한 건 하이라인을 가기 위해 10th 애비뉴를 걷고 있을 때였다. 가는 길에 The High Line 호텔에 있는 Intelligensia 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실 요량으로. 사실 나는 요즘 책을 거의 전자책으로 보고 있고 영어 서적은 특히 더 Kindle 을 애용하고 있어서 길거리 책방에 들를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소위 미니멀리즘을 실천해보겠다다며 집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정리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때도 나는 그냥 그 서점을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쇼윈도에 정렬된 책들이 너무 예쁜 것이었다. 아티스트의 표현력을 최대치로 불살라 책의 내용을 한껏 담은 표지 일러스트들이 제발 제발 좀 봐달라고 외친다. 아이들이라면 표지만 보고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칠 것이다. 책 주변에는 이 표지들의 색상과 형태들이 주는 느낌과 잘 어울리는 장식품들까지 배치했다. 알록달록한 펠트 구슬과 파스텔톤의 패브릭으로 가랜드를 두르고, 목각인형, 헝겊인형, 퍼즐이 관람객처럼 앉아있다. 세상에 이 귀여운 다람쥐와 양과 고양이는 인어공주 꼬리모양의 반짝이는 고깔모자까지 쓰고 있다. 물론 어른들을 위한 책들도 폰트와 색, 형태의 조화와 대비가 그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느낌을 압축해서잘 표현해 놓은 것들로 골라두었다. 어떻게 이걸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있을까. 이렇게나 정성들여 꾸몄는데. 자세히 안 봐주는 건 도저히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길거리에 한참 서서 쇼윈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물리적인 것들에서 오는 감성을 많이 잊고 살았나보다. 여기서 책 한 권을 사서 사서 한적한 공원에 들고가 맨들맨들한 표지의 감촉을 느끼며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겨보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책의 표지가 정면으로 잘 보이도록 장식장 한 가운데 예쁘게 놓아두는 것이다. 책 옆에는 수공으로 만든 목각 인형을 같이 놔두어야지.


말하자면 이곳의 책들은 행인들의 머리가 아닌 마음에 호소한다. 이 책들을 읽어야할 이유는 당신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꼭 읽어야할 분야별 베스트셀러라서가 아니다. 그냥 이 아름다운 표지를 보고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한번 느껴보고 싶어져서다. 사라 사라, 한 권만 사가라, 손에 들면 꽤 행복할 것 같지 않아?


이미 손에 가득한 물건들과 무거운 가방만 아니라면 벌써 넘어갔을 것이다.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Citylight Bookstore에서도 그렇게 넘어갔더랬다. 서점 벽에 쓰여있는 여러 아름다운 글귀들, 그리고 말 없이 서점안 구석구석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 매혹되서. 그래서 어느 샌프란시스코 토박이 작가의 시집들을 겁도 없이 덜컥 샀더랬다. 물론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그 때를 떠올리며 책을 사는데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으니 그 앞에서 예쁜 표지 사진들만 계속 찍고 있는게다. 


자, 보시다시피 책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건 지적 활동이지만, 책을 사게 하려면 영혼과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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