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에그타르트

미니픽션 | 오리지널을 먹어야 하는 이유

by 이수민

오늘은 꼭 에그타르트를 사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르꼬르동 블루 출신의 포르투갈인 파티셰가 굽는 에그타르트. 몇 달 전부터 점찍어 두었던 가게였다. 버스 환승 정류장에서 멀지 않았지만 몇 번째 생각만 하고 가보지 못했다. 큰 길가가 아닌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해서 지친 퇴근길에 쉽사리 내키지가 않았다. 그렇게 매번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를 타 버리곤 했다.

날이 가는 만큼 상상 속 에그타르트는 더 노릇노릇해지고 토실하게 커져갔다. 바사삭 소리가 날까, 당도는 어느 정도일까, 질감은 몽글몽글할까.

하늘색이 달라져 가는 저녁 7시 20분. 꽤나 빠른 퇴근이었다. 그저께는 자정에도 사무실에서 메일을 보냈다. 오늘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뛰쳐나온 것이 이 시간이었다. 나를 위한 보상이 필요했고, 오래 궁금했던 에그타르트를 골랐다. 나는 지도 앱을 켜고 찬찬히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타르트가 충분히 남아있길 바라기에는 아슬아슬한 시간이려나. 들어서자마자 눈은 쇼케이스를 훑었고, 가장 먹고 싶었던 오리지널 칸이 텅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니 아쉬움과 함께 억울함마저 들었다.

“15분 정도 기다리시면 오리지널 새로 구워져 나와요.”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직원은 눈치가 백단이었다. 혹은 나의 표정이 지나치게 투명했는지도 모른다.

“근데 사실 바닐라도 맛있거든요.”

바닐라 에그타르트는 어떨까 시선을 옮기다 계산대 뒤 오픈된 주방에서 흠흠 콧노래를 부르면서 트레이를 옮기는 파티셰가 보였다. 하얀 셰프 코트와 앞치마의 매무새가 단정했다. 똑같은 복장의 직원 한 명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하얀 바탕에 파란색으로 무늬를 그린 포르투갈 타일 바닥도 보이고, 레몬 워터가 담긴 디스펜서와 조약돌로 눌러 놓은 티슈 더미도 눈에 들어왔다. 바닐라빈이 콕콕 박힌 에그타르트는 2층으로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3개만 담아 달라고 말했다.

아담한 가게에 커다란 오븐을 들여놓은 터라 테이블을 놓을 자리가 없었다. 의자 없이 버티기에는 15분도 꽤 긴 시간이었다. 다시 올 구실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는 타르트가 담긴 종이 봉투를 받아 들고 문을 나섰다. 유리 종이 맑게 딸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총총 가게 옆을 따라 걸으며 리스본 벨렝지구를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손에 든 에그타르트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부근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사온 셈 치기로 했다.


3년 전 리스본의 레스토랑에 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살짝 가벼워진 기분을 불쑥 비집고 들어왔다. 와이너리 투어와 저녁 식사를 예약했는데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아쉬움을 꾹꾹 눌러 적은 이메일이었다.

이직하려는 회사의 면접 일정이, 하필이면 6개월도 더 전에 계획한 여행 일정 사이에 자리를 잡아 버린 탓이었다.

첫 직장에서 적성도, 사람도 맞지 않아 한창 고생이 심하던 와중이었다. 퇴근 후와 주말에 틈틈이 이력서를 쓰고, 점심시간에 부족한 준비 시간을 때웠다.

여행 계획이 이런 나날을 버티게 해 준 힘이었기에 면접 일정을 확인하고도 바로 취소하지 못하고 갈등에 빠졌다. 그 회사는, 가고는 싶지만 합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면접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가능한 것은 다 취소하고, 단거리 비행편 26만 원은 환불받지 못했다.

예약 취소를 알린 레스토랑에서는 ‘다음에는 꼭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늘 행복이 함께하길’이라고 적힌 다정한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그 이메일을 지우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계획대로라면 포르투갈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본 그 면접은 아주 무난하게 흘러갔지만, 열흘 뒤 나는 건승 기원과 함께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걸어오는 동안 에그타르트 냄새를 잘 참아 보다가, 결국 충동적으로 하나를 꺼내 크게 와작 물어버렸다. 어느새 돌아나가면 큰길이 보이는 모퉁이까지 다다랐다.

페이스트리가 아주 바삭하고, 결결이 부드럽고, 달콤하고 몽글몽글하고, 바닐라 향이 은은하게 나고. 역시 현실이 상상보다 훨씬 좋았다. 하나 맛을 보고 나니 오리지널도 지금 당장 먹어 보고 싶었다. 에그타르트를 먹은 덕분인지 이제 움직일 힘도 났다. 되돌아가면 조금 기다렸다가 새로 구운 타르트를 바로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유리 종이 다시 딸랑 소리를 냈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손님이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벌써 쇼케이스에 오리지널 에그타르트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바로 계산을 하려다가 조약돌이 눌러둔 티슈를 먼저 가지러 갔다. 바닐라 에그타르트를 먹다가 손가락에 적잖이 묻은 탓이었다. 내 뒤를 따라온 손님은 그 사이 벌써 계산 중이었고, 다행히도 에그타르트는 10개는 족히 넘게 남아 있었다. 다 괜찮았지만, 계산대 앞에 선 나를 보고 직원이 동그랗게 토끼 눈을 떴다는 점이 다소 당황스러운 지점이었다.

“방금 오셨던 분 아니세요?”

“맞아요. 타르트에 문제가 있어서 온 건 아니고, 오리지널도 사고 싶어서…….”

직원은 갑자기 베이킹 키친으로 가더니 무언가 수근수근하였고,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구매 수량 제한이 있는데 눈치 없이 왔나, 내가 간 다음에 무언가 없어져서 의심받는 건 아닐까, 아니면 지금 내 행색에 문제가 있나.

급기야 타르트만 굽고 손님에게 눈길을 주지는 않던 포르투갈인 파티셰가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하얀 이가 다 보이도록 활짝 웃었다. 직원들도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파티셰는 모자를 벗어 던지더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주춤하고는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축하해요! 리스본 가는 티켓 받으셨어요!”

약간 곱슬거리는 갈빛 머리칼의 파티셰가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더 눈을 크게 뜨고 어쩔 줄을 몰라하자, 직원이 가게 바깥이 보이는 통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 이벤트 진행 중이었거든요.”

유리에는 ‘축복이가 찾아온 후 100번째 손님에게 리스본을 선물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마테우스라고 이름을 밝힌 파티셰는, 지금의 한국인 아내를 리스본의 타구스 강변에서 처음 만났다. 홀로 여행을 와 꾸밈없이 편안한 복장으로 걷는 아내가 첫눈에 마음에 들어왔다고 했다. 장거리 연애와 한국에서의 정착, 결혼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장 큰 시련은 결혼 후에 찾아왔다. 간절히 원하는 아기가 쉽사리 찾아와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약을 알 수 없는 난임기. 시험관 시술 실패가 여러 번 반복된 후, 부부는 더이상 시술을 시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마테우스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아내를 달래며 새벽에 가게에 나와 몰래 울었다고 했다.

일종의 마침표이자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위로로, 두 사람은 리스본행 티켓을 끊었다.

암묵적으로 아기에 대한 화제는 절대 입에 올리지 않던 부부가 ‘축복이’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불과 열흘 전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 속에서, 장거리 비행 티켓을 바로 취소했다. 그때 아내가 우리도 누군가에게 행운을 선물하면 좋겠다고, 왕복 항공권을 제공하는 이벤트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다.

직원이 통창의 이벤트 공지문을 떼며 말했다.

“사실 다시 오셨을 때 100번째 손님으로 생각하는 게 맞나 저희끼리 방금 막 얘기해 본 거였거든요. 97번째 손님이자 100번째 손님이셔서.”

그제야 왜 다시 왔을 때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다시 유리 종이 딸랑이는 소리와 함께 키 큰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나는 혹시나 101번째 손님으로 밀려날까봐 부랴부랴 오리지널 에그타르트 5개를 계산하고는, 티켓 수령을 위해 필요한 내용을 적은 후, 축복이의 선물을 꼭 사오겠다고 약속하며 가게를 나섰다.

발걸음이 사뿐사뿐 발레를 하듯 바닥을 두드렸다. 잠시 멈춰 서서 오리지널 에그타르트의 절반을 베어 물었다. 너무 달콤해서 도저히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시나몬 향이 났다. 역시 오리지널이야!

나는 한 입 가득한 에그타르트를 우물우물하며 그 자리에서 메일을 검색했다. 3년 전 내게 행복을 빌어주었던 그 레스토랑의 메일을 찾아 회신을 쓰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디너 예약을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