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딱 그만큼만 가까운 게 좋겠어.
나는 운전하는 것을 즐긴다. 20대 초반부터 운전을 시작했지만, 가까운 거리를 다니는 정도였으니 그때의 운전실력은 영 형편없었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업무 중 은근히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맞닥뜨리며 운전대에 앉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즐기다보니 어느 순간 운전이 아주 능숙해졌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운전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누리는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좁은 골목길보다는 너른 길을, 시내 주행보다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리는 것이 편안하다. 자동차 전용도로 중에서도 상습 정체가 일어나는 내부순환로, 올림픽대로 같은 서울길보단 보다 한적한 자유로나 외곽순환도로를 달릴 때 신이 난다. 운전대를 잡으면 멀미할 일도 없고, 좌석과 음악, 음량까지 모두 내 취향에 맞춰 세팅할 수 있다. 나만의 작은 방에서, 내가 원하는 속도로 길 위를 달리는 기분. 그 해방감이 좋다.
온습도가 알맞게 맞춰진 차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낭만이다. 주렁주렁 무겁게 피어난 벚꽃을 돌파하고, 초록을 마지막까지 뻗어 올린녹음이 스치며, 듣기 싫은 소음은 모두 덮어버리겠다는 듯 쏟아지는 빗줄기를 받아내고, 투둑투둑 내려앉는 함박 눈을 조심조심 느리게 헤쳐가던 그 모든 날들. 차 안에서 내다보는 세상에는 계절의 혹독함은 다 지워지고, 환상적인 풍경만이 남아 있다. 풍경이 흐르듯 지나가고 음악이 차 안에 가득 차면, 그 순간만큼은 지던 짐을 내려놓은 듯한 가벼움이 있다.
운전할 일이 있으면 뒤로 물러난 적이 없었다. 오죽하면 가족끼리 장거리 이동할 일이 있을 때 내가 하겠다고 남편에게서 운전대를 빼앗은 적도 많았다. 오히려 남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이나 뒷자리에 앉으면 괜스레 불편하고, 어떻게 몸을 둬야 할지 몰라 좌불안석일 때도 더러 있곤 했다.
그랬던 내가 운전에 학을 뗀 적이 있었다. 약 2년간, 장거리 출퇴근을 하던 시절이다. 하루에 왕복 1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오가다 보니 어느 순간 운전대만 잡으면 머리가 무겁고 우울해졌다. 차에 타자마자 목, 어깨, 허리, 무릎, 발목까지 전신의 관절이 다 쑤셔오는 기분이었다. 그 무렵엔 내가 운전을 좋아했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운전석이 나를 옭아매는 듯 답답했고, 도로 위에 있는 시간이 멍에처럼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편해보려고 방석, 허리쿠션, 목쿠션 등 각종 소품들을 사 모았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차 안에 정리되지 않는 물건만 늘어나고, 마음은 더 지쳐갔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의 정체에 발목을 잡히는 것이 너무 싫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서둘렀고 저녁에는 부러 느지막이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삶의 모든 것이 출퇴근 운전길에 잡아먹히는 기분이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전학까지 시켜가며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나는 운전대를 내려놓았다. 짧은 나들이를 가든 긴 여행을 가든, 운전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나는 조수석에서 아이와 함께 간식을 챙기고, 창밖 풍경을 보며 길동무가 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 흘렀다.
나를 운전대에 다시 앉힌 것은 지난주 차창 밖으로 하늘하늘 흔들리던 주황빛 능소화 무리였다. 분명 밖은 아직 불쾌한 습기가 가득할 텐데, 창문 밖 풍경은 곧 시트러스 향기라도 코 끝을 스칠 듯 싱그러웠다. 좋았던 지난 기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뚫고 운전하는 느낌, 나 참 좋아했었는데. 나는 충동적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다음 휴게소에서부터는 내가 운전할까?"
"웬일이야?"
“그냥. 갑자기 하고 싶어 졌어.”
달콤한 낮잠에 빠져든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뒷좌석에서 들려오고, 남편은 조수석에서 운전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어느새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마음으로만 느껴지는 여름 향기가 차창을 스치고, 도로 위의 차들이 속도를 맞추며 나란히 함께 했다. 한동안 멀어졌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낯설면서도 정겨웠다.
딱 좋았다. 이 정도의 거리가 말이다. 억지로 가까이할 필요도 없고, 굳이 피하며 멀리할 것도 없는 그 정도 거리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딱 이만큼의 거리에서 다시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