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이야기
어려서부터 집에 식물이 흔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자연스럽게 그냥 식집사로 자라난 것은 아니다. 이십 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화분을 보살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식집사의 길을 처음 걷게 된 것은 자격시험 공부를 하면서부터였다.
보통 언제 처음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어요,라는 질문에 시험준비를 하면서요,라고 답하면 십중팔구는 고요한 정서를 다스리기 위해서였군요,라는 오해를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우아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도서관 지정석을 제공했다. 나에게도 구석에 한 자리가 주어졌다. 엄마는 혹시나 내가 공부하다 기력 떨어질까 매일 새벽밥을 지었고, 아빠는 등록금에 교재비에 용돈까지 쥐어주면서도 딸내미 공부하는데 드는 돈은 아깝지가 않다고 웃었다. 도서관 메뚜기 신세를 면하라고 학교에서 지정석까지 제공해 줬으니, 이제 나만 열심히 공부하면 될 일이었다. 문제는 공부하러 가기가 너무 싫은 내 마음이었다.
독서실형 칸막이 책상이 줄줄이 늘어선 그 공간에 들어서는 자체가 싫었던 것도 같다. 어느 날은 교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통창이 널찍한 카페로 발걸음이 절로 향했다. 다음 날, 어제 카페로 새서 공부를 망쳤으니 오늘은 반드시 도서관으로 향하리라 맘을 굳게 먹었다가도, 굳이 버스에서 한 정거장 먼저 내려 학교 뒤편 숲길을 느릿느릿 돌아가기도 했다. 어떻게든 자리에 착석을 하면 공부를 시작하는데, 그 자리까지 가는 길이 매일 같이 천릿길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시험에 똑 떨어지지 싶었던 어느 날, 나는 학교 근처 꽃집으로 향했다.
"햇빛이 잘 안 드는 실내에서 길러도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이 있을까요?"
"모든 식물은 햇빛이 필요한데... 그래도 굳이 음지에서 잘 버틸 수 있는 아이라면... 얘는 어때요?"
화원 아주머니는 흔한 모양새의 덩굴식물 하나를 권했다. 작고 동그란, 윤기 나는 새빨간 도자기 화분에 심긴 아이비였다. 가격도 기억난다. 원래는 이만 원인데, 만 오천 원만 달라고 해서 값을 치르며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품에 소중히 안고 가서, 도서관 내 자리에 내려놓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구석자리이니, 인공 빛이라도 받으라고 독서실형 책상에 부착된 스탠드를 딸깍 켜주었다. 이리저리 옮겨보다가, 그나마 빛이 가장 잘 비치는 책상 안쪽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아 주었다.
그러니까 내 딴에는 스스로가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등교해서 책상에 앉게 하기 위해, 아이비 화분을 인질 비슷한 유인책으로 삼은 것이었다. 햇빛이라고는 도무지 들지 않는 자리이니, 내가 아침에 가서 스탠드를 켜주지 않으면 비실비실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에어컨과 히터로 사시사철 건조한 곳이니, 자주 살피고 물을 주지 않으면 바삭바삭 말라버릴지도 몰랐다. 아이비를 살리려면 나는 매일, 반드시 등교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비에게 스탠드 등을 켜주려고 아침마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불 켜준 김에 앉아 공부를 했다. 아이비는 구석탱이 자리에서 먹다 남은 정수기 물로 키워도 참 잘도 자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참 웃자라고 있던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쭉쭉 자라는 게 그저 기특했다. 조그마한 화분 하나가 뭐라고... 같이 공부할 친구라도 생긴 듯 그거 하나 들이니 마음이 든든했다.
계절이 몇 번 지나고, 첫 반려식물과 함께 나는 무사히 시험에 합격했다. 지정석 정리를 하러 나간 날, 수십 권의 수험서는 미련 없이 폐지함에 와르르 쏟아 넣었다. 쓰다 만 볼펜도, 백지가 남아있는 연습장도, 아직 쓸만한 독서대도, 무릎담요도 전부 버렸다. 힘들었던 수험 기억을 굳이 집으로 들고 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챙겨간 것은 딱 하나, 웃자란 아이비 화분이었다.
베란다 한가운데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내려놓았다. 아빠는 뭐 이렇게 볼품없는 화분을 챙겨 왔냐고 웃었지만,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내 수험 친구야. 내 거니까 버리지 마."
내 식집사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