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기린 이야기
1994년 가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엄마의 손에 갈색 작은 포트 화분이 들려 있었다. 지하철 역 앞 노점에서 파는 것을 하나 사 왔다 했다. 가시투성이 줄기에 길쭉하고 동그랗긴 하지만 어딘가 삐죽빼죽 못생긴 잎사귀들이 빽빽하게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잎사귀 사이사이를 뚫고 길쭉 고개를 내민 작은 분홍색 꽃망울들. 꽃기린이었다.
집에서 화분을 키우는 사람은 그전에도, 그 후로도 아빠였지 엄마가 아니었는데... 엄마가 식물 포트를 사들고 온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사 온 꽃기린은 아빠의 손을 거쳐, 깊이는 얕아도 아주 널찍한 항아리 화분에 소담하게 옮겨 심어졌다. 흙 밭 위에 한주먹만 한 가시몸뚱이가 옹송그린 것 마냥 놓여있고, 진짜 안 어울리게 동글동글한 꽃이 퐁퐁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양이 퍽 사랑스럽기도 했다.
꽃기린은 키우기 쉬운 식물이다. 토양에 영양분이 좀 부족해도, 물이 좀 부족하거나 넘쳐도 웬만해서는 끄떡없다. 곁가지도 쑥쑥 내고, 부피감도 훌쩍훌쩍 자라난다. 창가 햇빛 아래 내놓기만 하면 사시사철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꽃을 끝없이 새로 피워낸다.
그래서 엄마의 꽃기린도 한 해, 두 해... 수십 년을 자라, 베란다 화단 구석자리에 감히 손대기 어려운 가시덤불을 이루었다. 오래 묵어서, 가시도 어찌나 억세고 투박한지 모른다. 피었다 진 꽃이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져 있어도 맨손으로는 감히 끄집어낼 엄두가 안 날 정도이다. 그 남다른 자태에, 아빠는 몇 번이나 모종의 조치(?)를 취하려 하였으나, 그때마다 엄마가 눈을 뾰쪽하게 뜨는 바람에 무산되고는 했다.
몇 년 전 겨울, 아빠는 드디어 엄마를 설득했다. 화분을 모두 비워내고, 가장 예쁜 가지 몇 대를 골라내어 새로 삽목 하기로 했다. 다시 처음 모습처럼 예쁘고 귀엽게 심어주겠다 단단히 약속을 했다. 마침 엄마 집에 방문했던 나는 어쩌다 아빠를 거들게 되었다. 우리는 목장갑을 세 개씩 겹쳐 꼈다. 베란다 빈 공간에 분갈이용 매트를 넓게 펼치고,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아빠는 화분을 거꾸로 뒤집었다. 가시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빠는 최대한 여린, 새로 난 가지를 몇 대 골라 소독한 전지가위로 싹둑 잘랐다. 그러더니 나에게 건넸다. 옛날에 너 어릴 적 내가 심었던 것처럼, 그렇게 네가 한번 심어보라면서.
내가 잘라낸 가지를 최대한 옛날처럼 귀염직한 모습으로 새 화분에 삽목 하는 동안, 아빠는 연신 앗, 따가워,를 외치며 엎어낸 꽃기린 본체를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다. 가시에 자꾸 봉지가 찢어져 몇 번 덧대다가, 나중에는 박스 테이프로 찢어진 부분을 둘둘 말아 붙여야 했다.
새로 심어진 꽃기린을 보고 엄마는 언제 반대를 했냐는 듯 활짝 웃었다.
"그때, oo동 새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생각이 다시 나네!"
엄마는 그날 무슨 마음이 살랑거려서 못난이 꽃기린 포트를 사들고 왔을까. 늘 궁금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oo동 집은 엄마 아빠가 처음으로 장만한 내 집이었다. 그 시절 젊은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고 벅찼을까. 퇴근 후 새로 이사한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을 게다.
누더기가 된 봉투를 막 봉하려는 아빠에게 황급히 말했다.
"아빠, 잠깐만. 나도 가지 몇 개 꺾어가서 심을래요."
나는 젊은 엄마의 행복을 한 주먹 담아와서 우리 집에 옮겨 심었다. 엄마의 행복은 정말 질기고도 튼튼해서, 우리 집에서도 몇 년째 죽은 가지 하나 없이 훌쩍훌쩍 잘도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