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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를 깎으면 내 코가 행복해

스위트라벤더 이야기

by 정벼리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엄연히 각자의 취향은 존재한다. 모름지기 화분에서는 꽃이 피어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모든 다육식물을 수집하려는 듯 수십 개의 다육 화분을 키우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이끼에 푹 빠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끼는 다 비슷하게 생긴 것 아니냐고 물었다가 얼마나 눈총을 받았는지 모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끼의 종류가 2만여 개에 달한다며, 대표적인 이끼의 생김과 그 특징에 대한 일장연설이 덤으로 따라왔었다.


나는 식물의 종류에 그다지 매니악한 취향이 있는 편은 아닌데, 굳이 어떤 류의 식물을 가장 선호하는지를 꼽자면 아무래도 허브류가 아닐까 싶다. 짧은 시간에도 무럭무럭 자라는 풀떼기들의 하잘것없음을 애정하기도 하고, 만지작거릴 때마다 코끝에 스치는 싱그러운 향기들은 언제 마주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은 꽃이나 새순을 똑 꺾어 차를 우리거나 요리에 곁들일 수도 있으니 어여쁘고 장하지 않을 수 없다.


크든 작든 마당을 가졌다면 허브를 키우는 것은 크게 손이 갈 것 없는 일이다. 특유의 향기가 있어서 벌레꼬임도 적은 편이고, 대다수의 허브는 태양빛과 바람이 있는 한 통통한 새순을 끝없이 내밀며 몸집을 불려 가니까. 하지만 당신이 (나처럼) 도시 한복판 틀에 찍어낸 듯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허브를 키우는 일은 녹록지 않은 과제가 된다. 실내에서 자라는 허브는 야생의 것보다 한참 연약하기 마련이고, 제가 좋아하는 환경이 조금만 틀어져도 식집사와의 절교선언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픽 죽어버리기 일쑤이다.




우리가 실내에서 정성을 다해 가꾸어도 허브를 살리기 어려운 이유는 아주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허브류는 집에서 충분한 햇빛을 받기 어렵다. 아무리 해가 잘 드는 남향집이더라도 창문을 통과하는 순간 광량이 팍 줄어들게 된다. 두 번째로 허브는 햇빛만큼 바람을 사랑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데, 사시사철 창문을 열어둘 수도 없거니와 열어둔다 해도 허브가 원하는 만큼의 충분한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는 두 번째와 어느 정도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허브는 과습에 취약하다. 우리가 화분에 식물을 키울 때 주로 사용하는 흙은 상토나 배양토이다. 일반적인 식물들을 키우는데 두루 쓰일 수 있도록 배합된 흙이지만 허브는 보통 그보다 더 배수가 잘 되는 토양이 적합하다. 아주 섬세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과습이 되기 쉽다.


만약 당신이 허브류를 키우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쯤에서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이리라 예상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집 안에서는 좀 어렵겠군요, 하고 포기하거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집 안에서 키울 수 있단 말이냐, 하고 오기를 보이거나.


집안에서도 분명 허브를 키울 수는 있다. 키우는 방법만 잘 터득하면 된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종국에는 두 가지 방법을 중첩적으로 사용하면 더욱 좋다. 오늘은 둘 중 보다 간단한 방법을 우선 소개하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다음 챕터에서 공개하도록 하겠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과 상성이 맞는 허브를 찾는 것이다. 화원에 가서 마음에 드는 허브를 종류별로 두세 개의 포트를 사 온다. 기왕이면 싱싱하고 튼튼해 보이는 아이들로 골라온다. 집에 오자마자 분갈이를 하지 말고, 포트채 그대로 2~3주 키워보자. 사실 어떤 식물이든 집에 데려오자마자 분갈이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걔네들에게도 갑자기 변한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각설하고, 데려온 허브 포트는 일반적인 식물을 키울 때와 똑같이 흙이 마르면 물을 준다. 평상시 잘 열지 않던 창문을 억지로 시간 맞춰 열거나 선풍기를 켜주는 등의 과도한 '노오력'은 삼가도록 한다. 그런 행동은 어차피 지속가능성이 없다.


2~3주가 지나면 데려온 포트 중 절반 정도는 죽거나 시들해졌을 것인데 소생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은 과감히 잎을 잘라내 건조해서 방향제로나 사용한다. 아마 여러 포트 중 한 두 개는 집안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았을 것이다. 바로 그 아이가 당신의 반려 허브가 되어줄 바로 그 아이다. 고작 풀떼기 따위를 위해 생활패턴과 집안 환경을 매번 뒤집어엎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개복치 같은 허브의 취향을 영원히 맞춰주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집에서도 끄떡없이 적응해 살아갈 강인한 생명력을 가려내서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이 속 편하다.


훅 끼치는 너의 향기란, 스위트라벤더


여기,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라벤더를 소개한다. 바람이라고는 한 점도 들지 않는, 열리지도 않는 동향 통유리 창가에서도 살아남은 강한 아이다. 한 번 생명력을 뽐내더니, 그 뒤로는 어디에 옮겨두어도 거뜬하게 살아남는다. 이 아이의 순을 잘라 물꽂이로 뿌리를 내린 촉들도 하나같이 잘 자란다. 풍성하게 자란 라벤더의 머리를 깎는 날이면 집안이 달콤한 허브향으로 가득 찬다. 코부터 시작된 행복이 절로 온몸에 퍼져나간다.


라벤더는 품종이 수십 가지가 된다고 한다. 잉글리시라벤더, 프렌치라벤더, 마리노라벤더, 스페니시라벤더, 라반딘... 처음 라벤더를 사 올 때 잉글리시라벤더와 프렌치라벤더, 그리고 스위트라벤더 세 가지 종류를 들여왔다. 셋 다 이파리 모양과 꽃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중 우리 집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스위트라벤더로, 라벤더 중에서는 생육이 빠른 편에 속하고 다른 종보다 더위와 추위에 두루 강한 특징이 있다. 잎은 오묘한 은녹색을 띤다. 잉글리시라벤더나 프렌치라벤더에 비해 허브 특유의 코를 찌르는 향은 약한 편이지만, 잎을 말려도 그 은은한 향이 오래 지속된다. 몇 년째 봄이면 끈적끈적한 진액이 묻어나는 보랏빛 꽃을 피워내 눈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당신의 집에서도 살아남은 포트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이제 쉽게 픽 죽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생겼다면 그때쯤 예쁜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면 좋다. 이제부터 집 안에서 허브를 키우는 또 다른 방법이 등장할 차례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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