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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말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크리핑로즈마리 이야기

by 정벼리

* 이 글은 앞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더 좋습니다.

네 머리를 깎으면 내 코가 행복해 / 스위트라벤더 이야기


집안에서 허브를 키우기 위한 방법 두 가지 중 첫 번째 방법을 이전 글에서 설명했다. 살아남은 허브를 키우라는 다소 황당하고 무책임한 방법이지만, 꽤 진심으로 하는 권유이다. 우리 집 환경에 맞지 않는 종을 어떻게든 키워보겠다고 용을 쓰는 것, 집사도 스트레스지만 자꾸 죽어나가는 식물에게도 못할 짓이다. 집안에서 허브를 키우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살아남은 허브를 알맞은 방법의 분갈이를 통해 튼튼하게 키우는 것이다.


살아남아 상성이 맞음이 증명된 허브 포트는 비로소 반려식물이 될 자격을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식물이 반려식물의 반열에 오른 후에는, 모름지기 식집사라면 새 식구의 특성과 취향에 맞는 안락한 보금자리를 꾸며줄 책임을 갖는다. 어떻게 하면 반려허브의 마음에 흡족한 보금자리를 꾸며줄 수 있을까.




우리 집 크리핑로즈마리는 참 뚝심 있게도 옆으로만 자라난다. 뭐 어쩔 수 없다. 이름부터가 크리핑(creeping)이니 꾸물꾸물 기어가며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크리핑로즈마리 또한 실내에서 허브 키우기 1단계 시험을 거쳐 당당히 제 힘으로(?) 반려식물의 지위를 가지게 된 녀석이다.


집에 로즈마리 화분 하나 들여야겠다 생각한 것은 남해 다랭이마을에 방문했을 때였다. 척박한 땅을 좁은 계단식으로 일구었던 옛사람들의 구슬땀보다, 논과 바다가 이어지며 펼쳐내는 이색적인 풍경보다 내 오감을 사로잡았던 것은 지천에 널린 야생 로즈마리였다. 처음에는 그 거대한 식물이 로즈마리라고 감히 연결 짓지도 못했다. 이 나무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토록 아찔한 향을 풍기는지 감탄을 거듭하는 나에게 누군가 이거 로즈마리잖아요,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로즈마리? 바람 불면 향기를 퍼뜨리는 그 풀떼기가 이렇게 거대한 나무로 자라난다고? 굵고 튼튼한 목대와, 태양을 향해 쭉쭉 뻗은 잔가지들, 그리고 바닷바람을 타고 흩뿌려지는 날카로운 내음이라니.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긴 시간, 나는 집안에서 로즈마리를 키워보겠다는 일념 하에 숱하게 많은 로즈마리를 희생시킨 학살자가 되었다. 로즈마리도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는데,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직립하여 자라는 커먼로즈마리를 사 와서 시들시들 말려 죽이기를 계속 반복했다. 일곱 번째나 여덟 번째 정도 로즈마리를 저 세상을 보낸 뒤에서야 비로소 포기를 선언했다. 커먼로즈마리는 우리 집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아이였고, 그간의 과정은 그저 내 욕심의 처참한 말로였다.


이상과 현실을 적절히 타협시켜 키우기 시작한 것이 크리핑로즈마리다. 구불구불 포복하며 자라는 습성 덕에 광량이 다소 부족한 실내에서도 온몸에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어서 직립형 종보다 실내에서 키우기 적합한 품종이다.


꾸불꾸불 옆으로만 기는 너는 로즈마리냐 덩굴식물이냐


몇 주가 지나도록 죽지 않고 살아남은 로즈마리에게 안락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고자 나는 몇 가지 특수한 준비물을 마련했다. 크리핑로즈마리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조건들은 단순하다.


햇빛과 바람, 그리고 과습방지.


이 조건들은 대부분의 개복치 같은 허브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화분을 집안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두되, 환기를 시킬 때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햇빛과 바람은 위치 선정 시에 고려하면 될 단순한 문제일뿐더러, 살아남은 포트는 이미 몇 주간 그 정도의 환경이면 살만하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니 너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통풍과 배수에 신경을 써서 과습을 예방하는 것이다. 포트 채로 잘 살아남은 허브가 분갈이 후 과습으로 한순간에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아주 흔하다.


과습 예방을 위해 우선 화분을 잘 골라야 한다. 창가에 내놓고 끝없이 바깥바람에 노출시켜 줄 것이 아니라면 유약 발린 도자기나 플라스틱과 같이 통풍이 되지 않는 소재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통 유약을 바르지 않은 토분을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과습을 방지하고 뿌리를 숨 쉬게 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허브류를 위해서는 보다 통풍이 유리한 소재의 화분을 추천하고 싶다. 부직포로 만들어진 그로우백이나 코코넛야자로 만들어진 생분해 화분을 사용하면 토분보다도 손쉽게 과습을 예방할 수 있다. 화분벽에 구멍이 있는 슬릿형 화분을 사용해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는 있는데, 아무래도 통풍을 위해 뚫어놓은 틈을 통해 흙이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어 화분 주변을 깔끔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통풍만큼 중요한 것은 배수이다. 일반 상토나 배양토를 그대로 사용하기보다 배수성을 높여줄 재료를 섞어 쓰는 것을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펄라이트나 가장 작은 사이즈의 난석이 좋다. 혹자는 입자가 굵은 마사토를 상토에 섞어 쓰라고 하기도 하는데, 마사토는 부피에 비해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계속해서 화분을 물을 주다 보면 그 무게에 흙이 다져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해서 소형 화분에는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것은 훈탄 또는 바이오차를 상토에 20% 정도 섞어 쓰는 것이다. 배수성과 통기성이 좋아질뿐더러, 토양의 ph를 허브류가 좋아하는 약알칼리성으로 유지시켜 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숯이라 무게도 가볍고, 유익한 미생물 증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정도의 노력이라면 반려식물의 지위를 갖게 된 허브류의 새 보금자리로 꽤나 안락한 공간이 마련되었다고 자부해도 좋겠다. 우리 집 크리핑로즈마리도 첫 보금자리는 코코넛 화분에 바이오차를 20% 섞은 상토를 부어 마련해 주었다. 과습도 없고 튼튼하게 잘 자라나 어느덧 뿌리가 코코넛 화분을 가득 채웠다. 두 번째 분갈이에 이르러 코코넛 화분에 심긴 그대로 토분에 옮겨 심어주었다. 분갈이 몸살도 없이 잘 적응해서 몇 년째 구불구불 옆으로 기어가며 향내를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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