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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서 온 남국의 미스테리

몬스테라 이야기

by 정벼리

* 이 글은 앞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더 좋습니다.

종묘농약사 가는 길 / 브레이니아 이야기


종묘농약사는 미리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처럼 정말 시장 초입에 있었다. 아주 오래된 가게처럼 보였다. 간판의 글자색은 바래어 회색인 듯 흰색인 듯 색이 다 빠져 있었다. 가게 입구 매대는 합판을 대충 이어 붙여 뚝딱뚝딱 만들어놓은 것 같았고, 그 위에 모종 포트가 대충 올려져 있었다. 가게 안쪽 공간은 꽤나 좁았다. 입구에 사장님 자리인 듯 철제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양 옆과 뒤 벽마다 선반이 달려 농기구와 각종 비료, 영양제, 농약 따위가 놓여 있었다. 나는 입구에 선 채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OOO 농약 좀 사러 왔는데요."
"어데다 칠 낀데요."
"집에 관엽식물 화분에 뿌리파리가 계속 생겨서요."


아저씨는 선반 위에서 작은 하늘색 약통을 하나 꺼내 내밀며 말했다.


"1리터 물에 한두 방울만 타서 주이소."
"물 주는 것처럼 그냥 주면 되나요? 양은 얼마나 줘야 할지... 제가 이걸 처음 써봐서요."
"물 말랐을 때 걍 주이소."
"아, 네... 얼마예요?"
"만 원."


아저씨는 참도 무뚝뚝했다. 조금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그냥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건넸다. 아저씨가 카드를 긁는 동안 신분증을 꺼내 손에 쥔 채 대기했다. 미리 찾아보기로는 농약을 구매할 때에는 신분증도 확인하고, 구매자의 연락처도 남기도록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카드와 영수증을 내게 내밀며, 내 신분증을 흘끗 보고 말했다.


"뭐할라꼬?"
"농약 사면 필요하다고 들어서..."
"됐다. 가이소."
"아, 네..."


나는 꾸벅 인사하고 카드와 신분증을 지갑에 다시 넣으며 가게를 돌아 나왔다. 나온 걸음 그대로 바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하필 가게 바로 앞 횡단보도는 내가 돌아서자마자 빨간 불로 막 바뀐 참이었다. 햇빛은 잔인할 만큼 뜨겁게 내리 꽂히고 있었다.


나는 슬금슬금 종묘농약사 가게 차양막 그늘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쪽에 엉거주춤 햇빛을 피해 서있으려니 매대에 놓인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상추나 또...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길러서 먹을 수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채소 모종이 포트판에 주르륵 모여 있었고, 저쪽으로는 스킨답서스, 스파트필름 같은 관엽식물이 몇 개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눈을 잡아끌었다.


길쭉한 대 끝에 넓죽한 잎, 아직 어려서 이파리 끝이 갈라지다 말아 구멍만 뽕 뚫린 채인 저 식물의 이름은 무엇일까. 가끔 인터넷에서 멋들어진 인테리어나 요즘 인기라는 카페 사진 같은 데서 종종 보이던 식물이었다.


"사장님, 얘 이름이 뭐예요?"
"몬스테라."
"얘가 크면 잎 끝이 쭉쭉 찢어지는 그 식물이죠?"
"하모. 하나 들고 갈래요?"
"금방 죽고 그러진 않아요?"
"안 죽는다. 물만 주모 쭉쭉 잘 큰다. 나중 되면 무쟈게 커져가지고, 공중뿌리 얽히믄 기가 멕히지."


아까까지 무뚝뚝하던 양반이, 몬스테라를 설명하면서부턴 갑자기 친근해지고, 말이 술술 나오는 것 같았다. 포트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망설이는 나에게 아저씨는 마지막 한 방을 덧붙였다.


"이기 따악 갖다 노면 마 방 분위기가 미슷-테리하다니까."


저항 없이 웃음이 터졌다. 무려 '미슷-테리'한 분위기라니 안 사갈 수가 있나. 값을 치르는 나에게 사장님은 묻지 않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것이 열대지방 남국에서 온 식물이니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키우고, 사선으로 자라날 테니 나중에 지지대도 세워주면 좋고, 뿌리가 꽉 차기 전에 분갈이를 해주라고. 그리고 나중에 공중뿌리가 자라면 얼기설기 저들끼리 서로 얽어 클 수 있도록 모양을 잡아주면 끝내주게 멋질 거라고 말이다.


IMG_1812.jpeg 남국의 미슷-테리 3호, 몬스테라


과연 전통시장에서 사 온 남국의 미스테리는 끝내주게 잘 자랐다. 다만 공중뿌리가 저들끼리 얼기설기 얽혀 자라게 모양을 잡아주라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큼직하게 자란다 싶으면 주체할 수 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몸을 틀었고, 공중뿌리는 끝도 없이 뻗어나가서 이건 뭐 자리를 잡고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공중뿌리가 나올 때마다 가지 채로 잘라 물꽂이를 해서 새 화분으로 번식을 해가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새로운 미스테리 화분들이 6호까지 생겨났다. 1호와 3호는 곁에 두고 키우는 중이고, 나머지는 몇 년 전 O가 나에게 브레이니아 가지 하나를 건넬 때처럼, 나도 여기저기 나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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