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꼭 내 몸에 걸쳐 완성할 필요는 없잖아?
어휴, 추워. 올해도 황급히 가을옷을 꺼냈다. 분명 며칠 전까지 반팔에 반바지가 찰떡이었는데, 뜨거운 태양빛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부터 가을은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가버리는 기분이다. 퍽 아쉬운 일이다. 사시사철 날씨 따라 계절 패션이 제각기지만, 그래도 역시 예쁜 옷은 간절기에 몰려있는데. 그 많은 가을 패션들을 한 바퀴 채 돌려보기도 전에 계절이 끝나버릴 만큼, 요즘의 간절기는 찰나에 스쳐간다.
클래식한 트렌치코트, 귀여운 청자켓, 여성스러운 롱 플레어 스커트, 종아리 중간까지 내려오는 펜슬 스커트, 짧은 테니스 스커트, 톡톡한 니트 카디건, 여유 있는 핏의 코듀로이 팬츠, 폭이 널따란 체크무늬 스카프, 반양말과 함께 신은 메리제인 슈즈, 베레모... 교복 입던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그 많은 예쁜 옷들은 대부분 간절기 아이템들이다.
그렇지만 슬픔은 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생겨난다.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이렇게 저렇게 입어야지 꿈꾸었던 수많은 잇템들은 어른이 된 내가 몸에 걸치는 순간, 어째 추구미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애매한 어색함이 깃들어버렸다. 다 커버렸지만, 키는 크다 말아서 그런가. 십수 년을 추구미와 현실미의 격차를 체감하며 한탄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로 내 옷장에는 단정한 슬랙스와 블라우스, 자켓만이 주르륵 걸리게 되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세상에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사람 없다.
그랬던 내가 어느 날부터는 언제든 추구미를 현실에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 말고 딸아이에게 입혀서. 아이는 클수록 아빠를 닮아갔다. 딸은 아빠 닮는다는 속설이 이래서 존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남편은 나와 달리 팔다리가 길쭉한 체형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뭘 입혀도 옷태가 좋았다. 게다가 다행히도(?) 아이는 사주는 대로, 꺼내주는 대로 덥석 덥석 입을 뿐 옷에 대해 별 고집이 없었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된 때부터 나는 차근차근 나의 로망을 딸아이를 통해 실현시켜 갔다. 작은 즐거움이었다.
작년에 고이 접어 넣어두었던 가을옷을 꺼내며, 귀찮다고 몸서리치는 아이를 붙잡아놓고 한 벌 한 벌 입혀보았다. 아이는 매년 쑤욱 자라기 마련이라, 옷장에 걸기 전에 작아지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요새 부쩍 큰 것 같다는 느낌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꽤 많은 옷이 소매가 짧뚱해지고, 발목이 뎅강 드러났다. 아이고, 아까워라. 몇 번 입지도 못했는데 청자켓도, 블라우스도 바지도 전부 짧아졌네. 새로 사야겠다. 한탄하는 나에게 아이가 입이 댓발 나온 채로 말했다.
"엄마, 나 그런 옷 불편해서 싫어. 안 사도 돼. 겉옷은 검정 후드자켓이면 충분해."
"응? 저건 캠핑 갈 때 막 입던 옷이잖아. 저거 한 벌로 어떻게 계절을 나?"
"아니야. 정말 안 입을 거니까 사지 마. 그리고 치마도 싫어. 그냥 조거팬츠 같은 편한 바지나 사줘."
"알았어. 그럼 엄마가 귀여운 걸로 골라볼게."
"귀여운 거 말고 그냥 까만색이나 회색이 좋아. 아니다, 옷 사러 같이 가. 내가 고를래."
아, 패션의 영역에서도 드디어 아이에게 자아가 생겨 버렸다. 지난 계절 동안 훌쩍 큰 것은 키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 너도 이제 10대인데 언제까지 엄마의 뮤즈로 지낼 수는 없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어째 영 섭섭했다. 섭섭함은 애써 감춰두고 빙긋 웃으며 네가 원하는 옷으로 사주마 약속했다.
얼레벌레 옷장 정리를 마치고 작아진 옷을 개어 따로 정리했다. 하나같이 곱고 어여쁜데. 이걸 입었을 때 얼마나 예뻤는데. 방심한 사이 속마음이 그만 얼굴에 드러나버렸다. 아이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툭 던졌다.
"미안해, 엄마. 그치만 이제 편한 옷이 좋더라고."
"아니야. 네가 입는 건데 당연히 네가 원하는 옷 입는 게 맞지. 전혀 미안할 일 아니야."
그럼, 생각과 취향이 생기는 것은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다. 언제 이렇게 부쩍 컸나 몰라. 지난 십 년간 엄마의 완벽한 뮤즈가 되어줘서 고맙다. 아주 많이 즐겁고 행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