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빼고 모두가 주인공인 것 같은 가정의 달.
황금연휴가 지나갔다.
매년 알록달록하게 표시된 기념일이 넘치는 5월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눈치 없이 서로 사이좋게 붙어있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학교장 재량휴일로 5월 1일과 2일을 자체 휴일로 정했다.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은 주말 뒤로 딱 붙어 대체휴일까지 생성하니, 아이는 1일부터 6일까지 꼬박 5일을 내리 놀게 되었다. 돌봄 문제도 있고 해서, 덩달아 우리 부부도 5월 2일 휴가를 썼다.
고학년에 들어섰다고 해도 아직 아이는 아이다.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이날, 아무리 바깥세상이 바글바글하더라도 안 나갈 수가 없다. 심지어 어린이날을 낀 연휴라니. 우리 가족도 진작부터 숙소를 잡아 놓았고, 가는 데마다 길게 줄을 서가며 정신없는 여행을 다녀왔다. 만약 지폐가 아니라 금화를 쓰는 시대였다면, 우리는 정말 말 그대로 황금연휴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황금을 펑펑 쓰며. 연휴 특수라고 가는 데마다 뭐가 이렇게 죄 비싼지.
연휴의 마지막 날, 집에 돌아와 세탁기를 왱왱 돌리는 중에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8일 저녁에 부모님 댁에 모두 모여 어버이날을 기념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대체할 수 없는 일정이 생겼단다. 혹시 가족 모임을 7일 저녁으로 옮길 수 있는지 묻는다. 재빨리 남편과 일정을 상의하여 긍정의 답을 보냈다. 각자 과제를 나누어, 8일로 예정되어 있던 꽃바구니와 식당 예약 스케줄 등을 분주히 변경했다. 양해와 사과의 말을 전화기 너머로 전하느라 진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나 역시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이자 아내이지만, 정작 이 달에 나를 위한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날이고 어버이날이고, 선물을 고르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 예약하느라 매년 분주하다. 엄마아빠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달라고 조를 수 있는 좋은 시절은 이삼십 년 전에 지나가버렸고, 아이에게 어버이날을 챙김 받기에 우리 아이는 아직 철딱서니 없는 어린이일 뿐이다. 물론 아이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왔었다.
"엄마, 어버이날 선물로 뭐 갖고 싶은 것 없어?"
"음... 금은보화!"
나는 진심을 담아 대답했건만, 아이는 깔깔 웃어대다가, 정색을 하며 다시 묻는다.
"킥킥, 장난치지 말고! 진짜 갖고 싶은 걸 말해줘."
나름 진짠데, 이걸 어쩐담. 뭘 말해도 아이의 지갑사정과 내가 진짜 갖고 싶거나 필요한 물건 사이에는 넓고 깊은 거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올해도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별이가 마음을 담아 써준 편지가 제일 좋아."
"편지도 써주고, 선물도 사주고 싶어."
"그럼 식탁에 놓을 수 있는 예쁜 꽃 몇 송이가 좋을 것 같아."
이번 주가 지나간다고 끝은 아니다. 스승의 날이 남아있다. 청탁금지법 때문에 학교 선생님께는 아무런 선물을 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사교육은 또 다르다.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영어학원... 내가 없는 시간 동안 아이의 교육(의 탈을 쓴 사실은 보육)을 맡아주시는 선생님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챙기게 된다. 누가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냥 넘어가자니 괜히 내가 무심한 부모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아마 올해도 나는 또 선물을 포장하고, 아이 손에 쥐어 보낼 것이다.
앨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던데, 그의 시구 중 4월에 빨간 줄을 박박 긋고 5월로 바꿔놓고 싶다.
아이에게 사랑으로 가득 찬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부모님과 맛있는 한끼를 먹으며 평생 나누어주신 것에 감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 나 대신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을 향한 고마움 모두 진심인데, 연달아 붙어있는 기념일은 어쩐지 버겁고 무거운 의무감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5월의 햇살이 속절없이 빛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추억으로 쌓이겠지.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간다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5월의 봄날은 봄내음을 즐기기도 아쉬운걸,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달이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은 살포시 감춰보고, 소중한 우리 엄마아빠를 위해 준비한 꽃바구니를 찾으러 나는 씩씩하게 꽃집 문을 열어젖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