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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답이 하나는 아닐 테니

그래도 괜찮아요, 잘 키우고 있답니다. (2)

by 정벼리

* 이 글은 앞 이야기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사실은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아요 / 그래도 괜찮아요, 잘 키우고 있답니다. (1)


"뭐? 세상에, 무슨 일이야?"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라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럴 법도 한 게, I가 다니던 직장은 신의 직장이라고도 불릴 만큼, 높은 연봉과 탄탄한 복지에 고용안정성까지 갖춰진, 정말 좋은 조건의 직장이었다. 졸업 즈음 I가 그 회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많은 동기들이 부러움의 탄식을 쏟은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입사 5~6년 차에 퇴사라니...


놀라움은 나만의 것이고, I는 말갛게 웃으면서 말했다.


“일은 무슨. 복직준비가 다 되었는데, 그냥 내 맘이 좀 그렇더라고.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좋아서... 떼놓고 일하러 가는 게 싫더라. 고민 끝에 그냥 퇴직했어."
"정말 대단한 결정을 했다."
"대단할 것도 없어. 고민은 길었는데, 막상 그만두고 나니 가뿐해. 기한 없이 마음껏 아이 돌보고, 아이랑 같이 놀 수 있으니 이렇게 맘이 편해."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종일 아이 돌보는 거 힘들지 않아? 어린이집은 안 보내?"
"힘들긴. 복직 전에 보내려던 어린이집은 퇴직하면서 순번 포기했어. 굳이 보낼 필요가 없잖아. 난 그냥 애랑 둘이 놀면 재밌고 좋아."


과연, I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행복한 사람만이 내뿜을 수 있는 반짝임이 거기 있었다. 네가 좋다니 잘된 일이다, 축하해, 다음에 아이랑 같이 놀이터에서 보자, 잘 가, 좋은 하루 보내... 우리는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빛이 파사삭 꺼진 얼굴은 나였다. 조금 전까지 자유시간에 벅차 탭댄스를 추던 내 발목은 이제 쇠고랑이라도 매단 듯 천근만근 가라앉았다. 더 높이 떠오르던 태양빛도, 맛깔스러운 브런치도, 커피도, 낮잠도 이제는 그냥 다 별로인 생각이 되어버렸다. 나는 터덕터덕 집으로 돌아가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울적했다. 자괴감이 들었다. 부끄럽기도 했다. 누구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해서 그 좋은 직장도 그만두는데, 고작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생긴 자유시간에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다니. 나는 엄마로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렇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데. 사실 자주 복직일이 언제 오나, 날짜만 세는데. 우리 애가 불쌍했다. 네 엄마가 고작 이런 사람이라, 어떡하니... 그날의 처진 마음은 언제까지고 기억이 날 것 같다.




전통적 의미의 모성애, 희생과 헌신, 아낌없이 주는 사랑과 마주치고, 엄마로서의 나 자신이 초라하게 짜부라들었던 경험은 그 뒤로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냥 인정하게 되었다. 누구나 완벽할 수 없으니, 나도 그렇다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 모자라고 허술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좋은 엄마일 거라고, 합리화 비스무레한 자기 수용의 과정도 거쳤다.


세상 사람 숫자만큼 마음이 있는 건데, 아기 키우는 엄마들의 속마음도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하다. 각자 잘하는 분야, 못하는 분야도 다 다른 것이다. 그리고 '바람직한 엄마 되기'의 정답이 꼭 하나는 아닐 것이다. 겉모양이야 천차만별의 모양새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속에 든 사랑과 정성의 알맹이만 단단하다면야.


그래서 여전히 허당 엄마라도, 이제는 파워 당당하다. 오히려 육아가 이렇게나 적성에 안 맞는데,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거친 세상에 너를 낳아서, 매일매일 삼시세끼 밥도 차려주고, 하루에 한 번 간식도 챙겨주고, 깨끗이 씻기고 입히고, 책까지 읽어가며 재워 줬는데. 나도 나름 할 만큼 했다, 뭐.


... 게다가 네가 오늘도 이렇게 잘 웃고, 사랑스러우니까.

괜찮다. 나는 잘 못하더라도, 너는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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