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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잘 키우고 있답니다. (1)

by 정벼리

육아를 잘하는 사람들은 차분하고 인내심이 뛰어난 편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증명된 바는 없는, 순도 백 퍼센트 개인적 의견이다. 어쨌든 성격 급하고, 즉흥적이고, 반복적인 일상보다는 새로운 이벤트를 좋아하는 나에게 육아란 마치 고통스러운 수행과도 같은 과정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나는 육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주로 같은 일이 반복될 때가 많은데, 그 일들은 내 기분에 따라 미뤄둘 수도 없고, 노상 묵묵히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육아휴직 중에는 내 하루가 끝없는 챗바퀴에 갇힌 듯 답답했다. 시간 맞춰 우유나 이유식을 준비해 주고, 낮잠을 재우고, 산책을 시켜주고, 놀아주는 것들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 아이의 수발을 드는 일은 뭐랄까... 정말 극도로 재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모든 엄마들이 나와 같이, 이토록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그저 감내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던 무렵의 일이다. 보통 어린이집에 입학할 때에는 적응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오도록 하여 30분 정도 놀다가 귀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차츰 체류 시간을 늘려간다. 조금 적응이 되면, 아이가 노는 동안 엄마가 어린이집 바깥에서 10분, 20분, 30분 기다렸다가 들어와 재회(?)하고, 집에 돌아가게 된다. 이 과정을 무사히 지나가고 나면,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 오늘은 집에 가세요. 한두 시간 후에 데리러 오라고 전화드리면, 그때 오세요."


세상에, 어느 천사의 음성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는 없을 거다. 집에 '혼자' 가있으라니! 선생님의 음성이 에코효과가 더해진 듯 꿈결처럼 황홀하게 들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발걸음은 거의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얼마만의 자유인지. 커피숍에 들러 우아하게 브런치를 먹어볼 것인지, 아니면 재빠르게 집으로 뛰어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볼 것인지... 도저히 하나만 고를 수 없을 만큼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들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행복에 겨운 고민에 빠져 발걸음을 재촉할 때 누가 벼리야, 하고 나를 불렀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대학 동기, I였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고, 오며 가며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다. I는 나보다 반년 정도 먼저 아이를 낳았었다. 그러니 이미 육아휴직이 끝났을 텐데, 평일 낮시간에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신기해서, 나는 물었다.


"I야, 이 시간에 웬일이야? 휴가야?"
"아... 나 직장 그만뒀어."
"뭐? 세상에,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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