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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골골 백세

튼튼하고 씩씩한 엄마로 오래오래 아이 곁을 지켜주고 싶다.

by 정벼리

개인의 감춰진 병력들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것이지만, 가만 보면 때로 타고난 건강체질인 사람도 있다. 일 년 열두 달 감기라고는 모르고 살고, 늘 기운이 넘치는 그런 사람들.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나는 어려서부터 툭하면 감기에 걸려 콧물을 달고 살았고, 지금도 요즘 감기가 유행한다더라, 하는 순간 이미 감기에 걸려있는 편이다. 한번 걸리면 잘 낫지도 않아서 아무리 짧아도 3주는 꼬박 앓고, 까딱 부비동염으로라도 번지면 두어 달 항생제를 먹어가며 고생을 하곤 한다. 조금만 피곤해도 구순염이 생기거나 임파선이 부어오른다. 잔병치레만 잦은 것이 아니라 한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큰 병치레도 여러 번이었다. 상시 관리해야 하는 지병도 가지가지다.


젊어서는 건강관리에 크게 애쓰지는 않았다. 자주 아프니까, 나는 원래 쉽게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은 (결과와는 별도로)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 사소하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야채를 많이 먹고, 탄수화물은 줄이려고 노력한다. 식단관리를 위해 점심은 도시락을 챙겨간다. 만년 열등회원이지만 꾸준히 요가원에 나가고, 진짜 러닝을 하는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 만큼 깔짝거리는 수준이지만 일주일에 두세번은 공원 트랙을 달린다. 비타민이랑 유산균도 챙겨 먹는다.


건강한 몸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우습게도 아이를 임신하고부터였다. 아이를 가져야겠다 마음먹었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초음파에 아기집이 또렷하게 보이면서 쿵쿵쿵쿵 심장소리를 듣고 나자 겁이 덜컥 났다. 어떡하지, 진짜 아기다. 세상에 나올 때까지 내가 먹는 것을 받아먹고 자랄 아이. 열 달 무럭무럭 키워 낳아놔도 꼬물거리기만 할 뿐 여전히 혼자서는 먹을 수도 없는,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할 연약한 생명체.


그날부터 매일 한 시간 이상 열심히 산책을 하고, 끼니마다 영양성분을 챙겨가며 밥을 먹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나갔고, 너무 더운 날에는 백화점이라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다행히 크게 아프지 않고 아이를 낳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첫 수유를 하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아기가 너무 작고 소중했다.


갑자기 내가 아파서 일찍 죽을까 봐 겁이 덜컥 났다.

이후로 시간이 10년도 넘게 지났는데, 그 이상한 감정은 여전히 한순간씩 나를 사로잡는다. 아이가 너무 귀여울 때, 밥을 잘 먹을 때, 한 번씩 철딱서니가 없을 때, 허술하기 짝이 없어 끝도 없이 손이 갈 때, 새근새근 잘도 잘 때... 시도 때도 없이 이 아이가 잘 자라서 혼자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날까지 내가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언제든 엄마아, 부르며 달려들어 기댈 수 있도록 튼튼하고 씩씩한 엄마로 있어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 나이 들어서는 골골 백세라도 좋으니, 오래오래 이 예쁜 것이 웃고 울며 살아가는 날들을 지켜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귀찮아 죽겠지만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고 운동복을 입는다. 달리러 나간다. 열심히 딛는 걸음마다 내 작고 소중한 아이와의 하루가 더 늘어나리라 생각하고 뛰어본다. 유병이라도 장수의 꿈을 향해 오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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