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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안녕하고 싶다, 목디스크

이걸 숙명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by 정벼리

일찍이 20대에 거북목 판정(!)을 받으며 지속되면 나중에 목디스크로 고생할 것이라는 의사의 조언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조언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음엔 몸이 많이 피곤하거나, 시험을 준비하느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은 후면 간헐적으로 살짝 손이 저린 느낌을 드는 정도였다. 지금과 비교해 보니 별 것 아닌 증상처럼 느껴졌지, 처음에는 이유 없이 손이 저려오다니 피가 안 통하는 큰 병에 걸린 줄 알고 놀랐었다. 손이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난데없이 TV에서만 듣던 거북목이 바로 나라고 이야기해서 꽤 당혹스러웠다. 그맘 때는 살짝 저릴 때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주고, 바른 자세를 취하려 노력하면 금방 증상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몰랐다. 이것이 지병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오래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줄이야.


이른바 손 저림 증상이 더욱 심해진 것에는 두 번의 계기가 있다. 하나는 결국 하루 종일 컴퓨터를 사용하며 책과 서류를 뒤져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어 책상 앞을 떠날 줄 모르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영아기 시절 육아를 하면서 온종일 품에 안은 아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살았던 것이다. 후회는 늘 때늦은 때에 찾아오기 때문에 후회이긴 하지만, 그때 디스크 증상이 이렇게 심해질 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떻게든 몸에 맞는 의자와 책상을 구비하여 바른 목의 정렬을 맞추려 노력했어야 했다. 아이를 돌볼 때에도 덜 끌어안고 살며, 입식 아기침대를 마련하여 눈높이를 맞춰주었어야 했다.


요즈음 문헌자료를 많이 찾아야 하는 일이 생겨서 한동안 책과 서류를 뒤적거렸는데, 평소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책상에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으으, 뒷목을 주무르며 목과 허리를 펴보고, 어딘가 처박혀 있는 독서대도 꺼내 높이를 올려보고 했지만 결국은 손 저림 증상이 심해지고 말았다. 이럴 때는 빨리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라도 받는 것이 상책이다. 고민하다가 회사에서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는 길, 친구들이 모여 있는 메신저 단체방에는 나보다 몇 년 늦게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한참 유치원 이야기, 아이가 말썽 부린 이야기 등으로 대화창이 뿅뿅 생겨나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느라 한낮의 대화에는 좀처럼 참여할 수가 없었는데, 이참에 나도 수다 한 숟갈 얹어볼까 하고 말을 걸었다.


「얘들아, 나 아파서 병원 가 ㅜㅜ」

「뭐? 어디가 아픈데?」

「무슨 일이야?」

「목디스크 증상이 심해졌어. 손이 너무 저려서 병원 가보려고」

「저런 ㅜㅜ 벼리도 목디스크 있었지.」

「하긴 C도 목디스크 생겼댔지?」

「응... 내가 아기 낳고 목디스크 생겨서 한동안 병원 다녔어. 주사 맞고 물리치료 매일 다녔어.」

「그러고 보니 H도 허리디스크 심하다고 하지 않았니.」

「맞아. 그래서 H네 집에 가면 온갖 마사지기가 다 있잖아. H는 바쁜지 말이 없네.」

「너무 걱정 말고 병원 잘 다녀와. 사실 나도 지지난 달에 어깨 뭉쳐서 병원 갔는데, 역 C자 목이라고 당장 자세 안 고치면 디스크 터질 거라고 경고받았어.」


아, 다들 고생하는구나. 이쯤 되면 디스크는 현대인의 숙명이라고 불러야 하나. 어쨌든 나만 이런 건 아니라고 하니 생각보다 위로가 되었다. 그래도 이제 그만 목디스크와는 안녕, 하고 헤어지고 싶다. 당분간 귀찮더라도 치료를 잘 받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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