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장마철이 돌아왔다.
비가 쏟아질 듯 말 듯 흩뿌리다가, 흐리게 갰다가, 다시 흩뿌리다가, 추적추적 내리다가... 점점 장마의 한복판을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은 대체로 싫은데, 의외로 요맘때는 좋아하는 편이다. 한동안 타오르던 공기가 좀 식혀지는 것도 같고. 여름의 꾸리꾸리한 이 날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출발은 역시 비냄새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비 온 뒤 흙에서 올라오는 고소하고도 비릿한 특유의 비냄새를 사랑한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집 밖에 나가기 전에 숨부터 고른다. 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처음 훅 끼쳐오는 비냄새를 최대한 즐기기 위해서다. 사람의 코란 어쩜 이렇게 뭐든 쉽게 적응해 버리는지, 그 좋은 냄새도 서너 숨 동안, 잠시 뿐이다. 몇 번 들이마시고 나면 더 이상 잘 느낄 수가 없다. 축축하지만 차지 않고, 달큼하면서도 너무 달지는 않은. 그 냄새를 맡으면 좋은 기억들이 자동으로 소환된다.
어릴 적 할머니집은 현관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여섯 걸음쯤 가면 광이 하나 있었다. 현관문 앞 처마가 그 광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평상시엔 마당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놀지만, 장마철에 쏟아지는 빗줄기 앞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도 별 수 없다. 비 오는 처마 아래서, 할머니 심심해,를 연신 외치는 손녀딸에게 할머니는 평소 굳게 닫혀 있는 광을 열어주곤 했다. 광에는 온갖 신기한 잡동사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오래된 만화책과 잡지책, 옛날 교과서, 무협소설, 낡은 재봉틀, 언제 적 물건인지 알 수 없는 궤, 멈춰있는 시계, 낮은 앉은뱅이책상... 나는 광에서 오만 물건들을 뒤져가며 재미를 찾고, 현관 앞에 의자 하나를 내어놓고 앉은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연신, 아야, 조심해라이, 낮게 이야기했다.
좀 더 커서는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도 꽤 좋아했었다. 교복 입고 학교 다닐 때, 학교 뒤편 음반가게에 자주 갔었다. 음악에 상당히 진심이었던 주인아저씨는 좁은 가게에도 벽에 플레이어와 헤드셋을 두어 개 매달아 두고 매일 삽입된 CD를 바꾸어두곤 했다. 종종 아저씨의 선곡이 마음에 들면, 저 이거 주세요, 하고 이름 모를 외국 가수의 음반을 구입했다. 그 자리에서 비닐을 벗기고, 휴대용 CD플레이어에 딸깍 꽂은 뒤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러면 비 맞으며 돌아갈 내 심산을 알아챈 아저씨는, 비 들어가면 고장 난다, 가방 단단히 닫고 가라, 하고 잘 가라는 인사를 대신했다. 씩 웃으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가게를 나서, 새 음악과 함께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춤추듯 걸었다. 그땐 그렇게 비를 맞아도 가끔 이어폰만 망가질 뿐, 나는 튼튼하고 멀쩡했다.
누구는 날씨 요정이라는 별명도 얻던데, 나는 자타공인 날씨 대마왕이라 어디만 간다 하면 그렇게 비가 내린다. 남편과 만나고 처음 돌아왔던 내 생일날에도 비가 왔다. 비 내리는 경복궁을 거닐며 굳이 한 우산 아래에 서로 어깨가 젖어가면서도, 우린 장독대 위에 튀는 물방울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하긴 결혼기념일도 요맘때다. 결혼하던 날 비가 올랑말랑 하늘은 계속 간만 보았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 오가는 길에 장맛비가 시작되면 어쩌나 맘 졸이는 나에게 수모님과 미용실 선생님들은,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니 걱정 마요, 하고 앞다투어 말했다. 결혼 후 아이와 간 여행지에서도 비가 참 많이 왔다. 봄가을이면 자주 다니는 캠핑도 절반은 우중 캠핑이었고, 홍콩, 베트남, 몽골, 말레이시아, 이탈리아 할 것 없이 해외만 나가면 비가 내리지 않아 본 적이 없다. 비를 뚫고도 우리 세 가족은 우비를 뒤집어쓰고, 괜찮아, 깔깔, 잘도 논다.
그렇게 비가 오는 날 좋은 일이 많았기 때문인가 보다. 아직도 장맛비만 보면 마음이 설레는 것은 말이다.